형광등이 다 닳았다. 3일째 빛 없이 사는 중이다. 아까 퇴근하고 새 형광등을 사서 교체했지만 여전히 불은 들어오지 않는다.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다. 집주인은 답장이 느리거나 보내지 않는다. 그가 전구는 멀쩡하니 램프를 바꾸라는데 대체 형광등에 무엇이 전구이고 무엇이 램프인지 모르겠다. 사진을 보내며 무엇이 무엇인지 물었으나 답이 없다. 아마 주말 내내 빛 없이 지낼 것 같다.
원체 어두운 걸 좋아하지 않는 터라 매우 답답하다. 핸드폰 빛에 의지해 지내는 것은 심각하게 불편하다. 어찌 더 졸린 것 같기도 하다. 불량인 형광등을 사온 것인지, 안정기가 문제인 것인지 알 수 없다. 게다가 좁아터진 집이 꼴에 천장이 높아서 형광등도 높이 달려 있다. 교체하려 움직이는 데 상당한 에너지가 소모된다. 만약 안정기를 교체해야 하는 것이라면 집주인이 와서 도와줘야 할 것이다. 내 키로는 도무지 할 수가 없다. 답답하다.
대체 왜 프랑스는 한 번에 되는 게 없는지 의문이다. 한 번에 되는 것이 없다. 프랑스에 온 이후로 단번에 성공한 일이라면 지금 일하는 마트에 취직하게 된 것 정도가 있다. 그것도 한인 마트에, 한국인 매니저가 면접관이었으니 프랑스에서 겪은 일이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매우 한국식이었기 때문에. 은행 계좌를 개설하는 것도, 인터넷을 설치하는 것도, 난방을 이용하는 것도 어째 한 번에 되는 일이 없다. 이것이 정녕 프랑스란 말인가.
애초에 프랑스에 눌러 살 생각으로 온 것이 아니었지만 지내다 보니 더 확실해졌다. 오기 전에도 지인들에게 나는 딱 1년만 살다 올 거라고 했더니 그건 가봐야 알지 않겠냐, 마음에 들어 눌러 살게 될 수도 있지 않느냐 하는 말들을 들으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지만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이 더 확고해졌다. 여기는 나와 맞지 않는다. 나는 비자가 만료되는 내년 6월에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고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한 번에 해결되는 게 없는 일, 불안정한 치안, 불편한 행정 업무, 내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까지 합하면 나는 이곳에 살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파리를 너무나 사랑한 탓에 파리에 왔다. 그리고 모든 환상이 다 깨진 채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역시나 여행과 사는 것은 매우 다르다. 그것을 알기에 충분히 긴장을 하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버겁다. 애당초 타향살이가 나와 맞을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딱 1년만 살고 돌아가자고 다짐했다. 그렇기에 1년만 살고 돌아가려 한다. 이 모든 불편함을 감수할 만한 매력을 나는 느끼지 못한다.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제쳐두고 떠나온 이곳에서 호되게 당하는 중이다. 간극을 적당히 예상하고 긴장했지만 모자랐던 것 같다. 그 간극은 적당하지 않았다. 상당히 크다. 어쨌거나 느낀 것은 매우 많다. 그것이 나를 한 단계 나아갈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일하던 중 여행 온 한국분께서 여기에 사는 거냐고 물어보셨던 적이 있다. 그렇다고 대답하니 좋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런 줄 알고 왔는데 안 그렇더라구요.” 라고 말하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