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지나갔다. 잘 알려져 있는 듯이 프랑스의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다. 그런 탓에 프랑스의 상점 대부분이 문을 열지 않고 파리 시내에는 관광객 뿐이다. 좀처럼 크리스마스를 특별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나는 여느 때와 다름 없이 보냈다. 여자친구와 몇몇 친구들에게 크리스마스 인사를 보내긴 했지만 으레 하는 일이었다. 무신론자로서 크리스마스에 유난 떨지 않는 것이 일종의 예의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너무 오버한 것 같다. 아무튼, 올해도 별 탈 없이 크리스마스가 지나갔다.
그래도 나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먼 프랑스에서 혼자 보내기도 하고 일까지 하니 뭐라도 쥐어 줘야 할 것 같았다. 물론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았기 때문에 아무 것도 살 수 없었다. 모레 쯤 사는 것도 의미가 있을까. 아니, 그냥 뭐 하나 사고 싶은 거다
지난 달 영국에서 엄마의 생신 선물을 샀다. 여자친구가 한국에 갈 때 가져가기로 해서 엄마가 선물을 받은 건 며칠 전이었다. 사는 김에 아빠 것도 같이 사서 보냈다. 너 쓸 돈도 부족한데 선물은 뭐하러 보내냐는 엄마의 말에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했다. 엄마, 아빠는 고맙다고, 잘 입겠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그 동안 부모님으로부터 받았던 크리스마스 선물에 대해 생각했다.
특별하게 기억나는 것은 여섯 살의 일이다. 퇴근을 하고 집에 오신 아빠는 보일러실에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가져다 두었다며 얼른 가서 확인해보라고 하셨다. 신이 난 나는 얼른 보일러실로 뛰어가 선물을 찾아 들고 나왔다. 장난감이었다. 당시 아빠는 나에게 장난감을 잘 사주셨는데, 나는 장난감 선물이 제일 좋았다. 크리스마스에 받은 장난감 선물 역시 아주 좋아했다. 그 외에 홈플러스에서 산 ‘핫 휠’ 시리즈, 플레이 스테이션, 돈 등 많은 선물을 받았다.
고맙다며 잘 입겠다는 엄마의 말에 내가 엄마, 아빠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드렸는지 생각했다. 아무리 머리 속을 헤집어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번에 드린 것이 처음인가. 그렇다면 나는 지난 27년을 잘 산 것 같지 않다. 그 동안 크리스마스를 핑계 삼아 받았던 선물들이 모두 스쳐 지나갔다. 내가 어릴 적엔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고 엄마, 아빠는 그 선물을 사주는 것이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알 수야 없지만 엄마, 아빠는 계산할 때 머리 속으로 온갖 재정 상태를 떠올리지 않았을까. 우리 엄마, 아빠는 그 동안 몇 번의 돈 계산을 엎었을까. 그 뭣도 아닌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주려고 얼마나 머리가 아팠을까.
엄마, 아빠와 떨어져 살다 보니 미안한 것들이 자꾸 하나씩 떠오른다. 인간은 가까이 있을 때는 무엇이 고맙고, 무엇이 미안한지 알지 못한다. 가까이 있기 때문에 생각을 깊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멀리 떨어져 있어야 타인을 깊게 생각할 수 있다. 당장 옆에 있지 않으니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면 누군가에 대한 온갖 고마움과 미안함이 떠오른다. 얼추 따져보면 미안함이 훨씬 크다. 대개 그렇다. 인간은 후회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이걸 유행하는 말로 바꾸면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다.’정도가 되겠다.
그나저나 우리 엄마, 아빠는 선물이 진짜로 마음에 들었는지 모르겠다. 예산 안에서 심각하게 고민한 거니까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여러분 모두 Joyeux Noë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