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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steuryouth Feb 04. 2020

백종원 레시피

요리를 하기 전, 포털 검색창에 백종원 레시피를 검색한다. 난생 처음 해보는 요리라면 더욱 그렇다. 처음인지라 갈피를 잡지 못할 때 백종원 레시피는 어마어마한 도움이 된다. 그 어떤 요리든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재료로 손쉽게 만들 수 있다. 간단해서 의심스럽기는 하나, 다 만들고 나서 먹어보면 제법이다. 백종원 레시피는 요리 초보자를 그럴싸하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나는 백종원 레시피의 열렬한 팬이었다.


사실 많은 블로거들이 조회수를 위해 모든 음식 레시피에 ‘백종원’이라는 단어를 가져다 붙인 것이 아닌가 의심하기도 한다. 그래도 믿는다.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강력한 요건 중 하나는 재료라고 할 수 있다. 쉽게 접할 수 있는 재료로만 이루어진 레시피라면 그게 실제로 백종원이 고안한 레시피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다. 우리 모두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활약한 백종원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 그는 늘 간단한 재료들로 뚝딱 요리를 만들어 우리를 군침 돌게 만들었다. 그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면 간단한 재료와 모양새가 제법 그럴싸한 사진은 100%에 육박하는 신뢰를 준다.


집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재료와 종이컵을 이용한 계량, 쉬운 레시피를 활용해 음식을 만들고 나면 마치 큰 일을 해낸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오, 떡국 만드는 게 그리 어렵지 않네.’라는 생각을 한다. 따지고 보면 내가 한 일이라고는 제일 쉬운 레시피를 검색해서 최소한의 재료로 최소한의 노력을 들여 음식을 만든 게 전부다. 그것 뿐인데 제법 모양새가 갖추어지면 엄청난 일을 해낸 것 마냥 속으로 호들갑을 떤다. 인간이라는 건 대개 그렇다. 최소한의 노력으로 운 좋게 적당한 성취를 얻고 나면 큰 일을 한 것처럼 의기양양하다. 하지만 그 의기양양은 얼마 못 간다. 언젠가는 큰 노력을 쏟아야 하는 날이 오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노력만을 쏟으며 살다가 큰 노력을 쏟아야 하는 일을 마주하게 되면 이건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거나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것이 있다고 자위한다.


2014년 방영한 드라마 <미생>의 1화에서 장그래(임시완 분)는 ‘난 열심히 하지 않아서 세상에 나온 것이다. 열심히 하지 않아서 세상에 버려진 것뿐이다.’라고 말한다. 그 이후 장그래는 알다시피 엄청난 노력을 한다. 노력에도 자격이 있다며 낙하산으로 들어온 그래에게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오과장(이성민 분)은 노력하는 장그래의 모습을 보게 된다. 장그래는 노력하는 자체로도 완생이라 말할 수 있다.


이제부터는 일종의 다짐이다. 이제 더 이상 퉁치고 마는 인생을 이어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적당히 한다는 게 어렵다는 걸 깨닫게 되고 부지런한 것은 더 어렵고 대단한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되기 마련이다. 세상에서 제일 쉬운 일은 게으른 하루를 보내고 자기 전에 누워 후회하는 것이다. 몇 자라도 적지 못하고 잠드는 밤이 무서워서 한숨을 내쉬는 날은 더 이상 마주하고 싶지 않다. 누워서 영화를 보다가 잠들어버려 에어팟을 착용한 귀가 아침에 아픈 것도 지겹다. 이 모든 게으른 날들로부터 벗어날 것이다.


Attention: 포털 검색창에 ‘백종원 레시피’를 검색하지 마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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