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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steuryouth Feb 25. 2020

뒤돌면 잊기 마련이다

직장인의 책상에는 곳곳에 포스트잇이 붙여져 있다. 모니터와 파티션, 책장 등 모든 곳에 붙여져 있다. 중요한 것들이 적혀 있다. 이 포스트잇들은 짧게는 1-2시간에서 길게는 한 달 넘게 까지 붙여져 있다. 언젠가는 소명을 다해 떨어질 이 포스트잇들은 주인의 시선을 기다린다. 당신이 내 몸에 중요한 것을 적어 두었으니 얼른 확인하고 떼길 바라는 마음이다


스쳐간 생각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스쳐가는 순간 메모해야 한다. 시간이 지나서 떠올리려 하면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니 번뜩이는 생각은 항상 적어 두어야 한다. 내 곁엔 수첩과 펜이 항상 있었다. 대학교 1학년 때에는 작은 수첩을 백팩에 매달고 다니기도 했고 에코백 안에는 노트와 필통, 책과 스마트폰 충전기가 기본으로 들어 있었다. 틈 날 때마다 꺼내서 끄적였다. 


언제부턴가 메모하는 습관을 잃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그랬던 것 같다. 수첩을 들고 다니다가 스마트폰의 메모장을 활용하면서 수첩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기억해야 할 건 언제든지 스마트폰의 메모장을 켜서 써두면 되니까 말이다. 그러다 보니 문제점이 하나 생겼다. 스마트폰은 늘 내 몸의 어딘가에 있으니 조금만 있다가 적어 두어야지 하고 잊어버린다. 그렇게 날려버린 생각이 몇 개인지 셀 수 없다. 가능하다면 나에게서 멀어져 간 그 기억을 다 주워 담아서 노트에 적어두고 싶다. 왜 적어 두어야지 하고 떠나 보낸 생각은 다시 기억나지 않는 걸까.


번뜩이는 생각 뿐만 아니라 중요한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대개 중요한 것들은 적어 두지만 웬만한 것은 머리로 기억하는 편이었는데 이젠 그 마저도 적어 두어야 할 것 같다. 종종 잊을 때가 있다. 이를테면 무언가를 주문해달라는 마트 동료의 부탁이나 변경된 스케줄 같은 것들. 머리로만 기억해두어도 무리가 없던 것들이 이제는 적어 두어야 할 것들로 변했다. 아직 스물 여덟이니 나이가 들어간다는 생각은 영 맞지 않다. 머리에 욱여 넣는 것들이 많아져 과부하가 걸린 것이라고 생각하겠다. 안 그랬다간 곧 기억력 유지법 같은 걸 수련해야 할지도 모른다.


메모라는 건 중요하다. 기억해야 할만한 것들을 적어두기 때문이다.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을 적어둔 메모는 기억력을 대신해준다. 머리에 떠오르는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없다. 흘려보낼 것들은 굳이 적어두지 않고 머리에 남긴다. 머리에 남겨두면 언젠가 사라지기 마련이다. 기억해야 할 것들은 메모를 해두어 오래도록 남겨둔다. 


가끔 지난 메모를 뒤적거리다 보면 지금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도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기억하기 싫겠지만 그 마저도 기억이다. 당시의 내가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적어둔 것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은 때에 따라 달라지지만 결국 중요하다는 사실 하나는 같다. 


메모해야 마땅한 것들은 반드시 메모해야 한다. 안 그러면 곧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적어두지 않아서 떠나 보낸 수많은 중요한 것들이 있다. 그것을 다시 기억해내려 하면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메모해야 한다. 살면서 기억해야 할 소중한 순간은 많지만 뒤돌면 잊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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