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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steuryouth Feb 25. 2020

잘 살아도 괜찮다

전주가 시작된다. 킥 한 번, 킥 두 번. 이어서 기타 줄을 긁는다. 그리고 시작되는 기타 리프. Oasis의 supersonic이다. 10년 전부터 고민 거리가 생기면 항상 supersonic을 틀었다. 드럼 전주가 시작되면 고민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고, 기타 리프가 시작되면 생각한다. 지난 10년 간 크고 작은 일들을 고민할 때 내 귓가엔 항상 supersonic이 울렸다. 가사는 신경 쓰지 않았다. 줄곧 내 마음을 울린 음악들은 가사가 아닌 멜로디로 내 마음을 울렸다. supersonic 또한 내가 감동 받은 이유가 기타 리프와 멜로디다. 맑은 리암의 목소리가 얹어진 멜로디는 작은 세계에 갇혀 있는 나를 큰 곳으로 이끄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무언가를 고민할 때에는 주저 없이 supersonic을 재생했다. 음악을 듣는 동안 큰 세계에 있는 내가 고민을 해결할 거라고 믿었다. 실제로 그랬다. 성공했던, 실패했던 어쨌든 고민은 해결했다.


인생의 대소사를 해결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의지할 만한 것을 곁에 두는 것이다. 음악이든, 영화든, 책이든, 사람이든, 뭐든 곁에 두는 것이 좋다. 의지할 만하다는 건 내 기운을 돋아준다는 것이고 동시에 용기를 준다는 것이다. 그 용기를 받으면 한 발 내딛는 것은 훨씬 쉬워진다. 용기를 받아 과감해지면 성패에 연연하지 않고 결심할 수 있다. 그러면 고민은 해결된다.


혼자서 모든 걸 감당하고 견디는 사람들이 있다. 도움 받기 싫어서, 의지하기 싫어서, 그럴 수 밖에 없어서. 여러 이유가 있고 그들은 혼자 견딘다. 쉽지 않은 일이다. 하다 못해 하소연할 무언가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그들은 대개 혼자 끙끙 앓는다. 그런 사람들을 마주할 때면 가슴이 저려온다. 내가 도와줄 수 있다면 참 좋을 것이다. 그러나 보통 내가 도울 수 없는 일들이다. 도와주지 못해서 가슴이 저려오는 것이다. 그들은 대개 표정에서 힘든 게 티 나지만 아닌 척한다. 그걸 알고도 해줄 수 있는 게 마땅히 없다. 하다 못해 좋은 음악, 좋은 영화라도 하나 추천해주고 싶지만 그들이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볼 기분이 아니란 것을 알기에 그 마저도 할 수 없다. 그저 혼자 끙끙 앓는 것은 지켜볼 뿐이다.


<미생>에서 장그래가 인턴과 계약직 2년을 버틸 수 있었던 건 좋은 사람들 때문이다. 오차장, 김대리, 그 외 동기들과 많은 직원들이 그를 도와줬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오차장은 장그래에게 버티고 이기라고 말한다. 버티고 이기는 것은 혼자서도 가능한 일이지만 의지할 만한 것이 있다면 훨씬 수월하다. 장그래에게는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


앞서 말했듯이 음악이든, 영화든, 책이든, 뭐든 의지가 될 수 있다. Supersonic을 듣는 나도, 어떤 책의 한 구절을 반복해 읽는 누구도, 하루종일 한 영화만 틀어놓는 누군가도 모두 그것에 의지하는 것이다.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어차피 삶이라는 건 혼자서 지탱할 수 없는 것이다. 주체는 나지만 나라는 존재를 만드는 것은 나와 내 주변의 수많은 것들이다. 그렇기에 무언가에 손을 내미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미생>에서 장그래는 오과장이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에 감동 받아 집에서 눈물을 흘린다. 평생 바둑을 두며 혼자 싸웠던 그가 의지할 만한 사람이 생겼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매일 밤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며 마음을 달래는 당신도, 공원 벤치에 앉아 한숨을 내쉬는 당신도, 이불을 뒤집어쓰고 하루종일 누워 있는 당신도 모두 잘 살아도 괜찮은 사람들이다. 걱정 말라. 당신에게도 분명 의지할 만한 것이 있다. 그리고 역시 우리 또한 누군게에게 의지할 만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도움 받고, 도움 주는 걸 망설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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