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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steuryouth Mar 23. 2020

변수

역시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기가 막힌 1년 계획을 세워 프랑스에 왔지만 삐걱대더니 지금은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빠르게 확산되는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귀국 전 계획이 전부 망가졌다. 더 이상 이 유럽 땅에 있을 이유가 남아 있지 않다. 애초 계획보다 빠르게 귀국할 예정이다. 역시 인생에는 변수가 차고 넘친다.


지난 월요일부터 프랑스는 전역에 외출금지령을 내렸다. 정부에서 제공하는 서류를 작성하지 않고는 돌아다닐 수 없다. 경찰이 검문하여 서류가 없는 사람들에게 벌금을 부과한다. 매일 새로운 서류를 작성해서 신분증과 함께 들고 다녀야 하며 인쇄를 할 수 없는 사람들은 직접 손으로 양식을 다 써서 들고 다녀야 한다. 이렇게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첫 째는 말을 듣지 않는 프랑스인들이다. 외출금지령이 내려지기 전에 슈퍼마켓, 약국 등 필요한 곳을 제외한 모든 상점 폐쇄령이 내려졌는데, 다음 날 날씨가 좋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공원에 나가는 등 외출을 하는 바람에 상점 폐쇄령이 무의미해졌다. 둘 째로 부족한 의료진과 의료 시설이다. 현재 고열이나 호흡 곤란 증상이 나지 않는 의심증상자는 자가격리를 권고 받는다. 누가 전염됐는지 쉽게 알 길이 없고 의료진이 부족하니 심각한 증상이 아니라면 집에서 잘 먹고 잘 쉬라는 뜻이다. 상황이 심상치 않다.


교환학생으로 입국한 많은 학생들이 한국으로 돌아가고 있다. 상점은 문을 열지 않고 외출금지령까지 내려진 마당에 외국에 머무를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나 역시 그렇다. 이달까지 근무를 하고 여행을 한 뒤 6월 쯤 한국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런던에서 공부하는 여자친구도 한국으로 일찍 들어가고 여행 마저 힘들어진 상황에서 내가 여기에 있을 이유는 없다. 심지어 칸 영화제 마저 연기될 상황이라 더욱 그렇다. 최대한 빨리 정리하고 들어가려 한다. 빨리 들어가려 하니 여러 행정 업무가 발목을 잡는다. 대단한 나라다.


변수까지 감안하여 완벽한 계획을 한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변수는 등장하기 마련이다. 나 또한 이곳에 1년 살면서 젊은 프랑스인들도 못 겪어본 한 달 간의 대규모 파업도 겪었고 지금 코로나 사태를 겪고 있다. 이건 내 계획에 없던 일이다. 전혀 상상치도 못한 일이었다. 그 변수는 내 계획에 센 충격을 주어 흔들리게 만들었다. 넷플릭스 시리즈 <종이의 집>을 보면 변수까지 완벽하게 대처법을 마련하지만 결국 새로운 변수가 발견되어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흘러가는 것을 보게 된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변수를 마주하는 순간의 당황은 때론 실수로 이끌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그 마저도 대처하여 자리를 잡는다. 


여태껏 수많은 변수를 마주하며 살아왔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없다. 언제나 그랬듯이 oasis의 supersonic을 재생한다. 나를 큰 세계로 이끌어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그 안에 해법이 있다. 그 해법을 따르면 된다. 삶이란 변수들의 집합체다. 그것들을 하나씩 헤쳐 나가면 그 끝엔 내가 원하는 행복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잡으려 이리저리 발버둥 치는 것이다. 지금의 나 역시 당황하지 않고 지나가는 것이라 생각하다 보면 언젠가 좋은 날이 올 것이다. 한 달 간의 대규모 파업도, 코로나 사태도 당장의 내 계획을 망치기는 했지만 언젠가 좋은 거름으로 쓰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위기는 좋은 거름으로 쓰이게 된다. 역사가 그렇게 반복되어 왔다. 자 여러분, 모두 조금만 더 건강하게 참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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