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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steuryouth Apr 06. 2020

마무리

10개월 동안 살던 집을 나왔다.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 됐다. 집도 나왔고, 전기, 인터넷, 집보험도 해지했다. 이제 계좌와 핸드폰만 해지하면 한국으로 간다. 10개월 간의 타향살이가 끝이 난다. 얻은 것도 많지만 아쉬움이 더 큰 타향살이였다. 첫 째로, 6월에 도착해서 적응을 하느라 낮이 긴 여름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 것이 아쉽고 둘 째로 지난 12월부터 한 달 반 정도의 대규모 파업을 겪느라 고생한 것이 아쉽고, 셋 째로 코로나로 인해 모든 여행을 취소한 것이 아쉽다. 특히 칸 영화제를 즐기지 못하는 것이 가장 아쉽다. 언제나 인생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지금의 상황은 유난히 아쉽다. 살면서 이런 기회가 두 번 다시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최대한 많이 즐기고 가려 했으나 그러지 못하게 됐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아쉬움 뿐이다.


파리에 살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건 파리 생활 이후의 삶이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나서의 삶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큰 노력을 쏟았다. 10개월이나 살며 고민했지만 명쾌한 답을 얻지 못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 했으니 고작 10개월 살고 답을 얻기도 참 민망했지만 적당한 갈피 정도는 바랐던 게 사실이다. 돌아가기 전까지 시간이 조금 남았으니 마저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일전에 만났던 어떤 한국인은 나에게 파리를 제대로 모른다고 말했다. 그야 당연한 일이다. 고작 10개월 살아서 어찌 다 알 수 있을까. 나에게 이곳저곳 식당을 소개해주면서 골목길의 파리를 느껴보라 했다. 뭐, 나도 그러고 싶었지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이미 프랑스에도 코로나의 영향이 퍼져 있던 상태였다. 외출금지령이 내려진 마당에 무슨 수로 파리를 느낄 수가 있을까. 결국 나는 파리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로 귀국하게 됐다. 두고두고 후회할 일이다.


고작 10개월 살았다고 파리지앵이라 부르는 건 어이 없는 일이다. 수년을 살아도 파리지앵이라 부르기 모자란데, 10개월은 무리가 있다. 게다가 파리지앵은 되고 싶지 않다. 나쁜 것들을 많이 봤기 때문에 파리지앵이라 불리고 싶지 않다. 나는 그저 한국인이고, 한국인이라 불리는 게 가장 좋다. 외국인으로 살았던 10개월은 한국인으로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된 계기가 되었다. 파리지앵을 헐뜯고 싶은 마음은 아니다. 한국도 여러모로 안 좋은 면이 많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으로, 외국인으로 살다 보니 그 자신감이 생긴 것은 분명하다. 특히 나는 여전히 대창과 소주 없이는 살 수 없다. 


우여곡절이 참 많은 파리 생활이었다. 오자 마자 한국인에게 뒤통수를 맞은 것부터 시작해 입주한 집에는 바퀴벌레가 출몰해서 매일 바퀴벌레들과 씨름한 것, 여러 행정 처리들, 대규모 파업, 코로나 사태까지 심심하지 않은 생활이었다. 특히 대규모 파업과 지금의 코로나 상태는 프랑스에서 수십 년을 살아도 겪기 힘든 일이라는 것에 내 워킹 홀리데이가 얼마나 다이나믹 했는지를 알 수 있다. 


원대한 꿈을 가지고 파리에 왔다. 마무리를 짓는 시점에서 돌아보니 반도 못 이룬 것 같다. 나머지 꿈은 한국에서 이루어야 한다. 역시나 꿈은 많지만 게으른 나는 다시 한 번 무너졌다.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무사히 10개월 살아낸 게 조금 장하기도 하다. 많이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스물 일곱에 다 제쳐두고 외국으로 훌쩍 떠나는 것은 한국에서 그리 쉽지 않은 일이 아닌가. 무작정 떠나온 것에 스스로 감사함을 느낀다. 어쨌거나 이곳에서의 생활은 나를 조금 더 성장하게 만든 것 같다.


타향살이를 늘 꿈꿔왔다. 레이디버드처럼 지긋지긋한 동네를 떠나 새로운 곳에서 살고 싶었다. 그렇게 사랑하는 파리에 왔고, 기뻐하고, 슬퍼했다. 레이디버드처럼 가족이 그리웠다. 레이디버드처럼 조금 더 어른이 되었다. 이제 고향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그리운 내 고향, 그리운 내 가족, 그리운 내 사람들 모두 얼른 보고 싶다. 타향살이는 일종의 강한 자극이다. 그리움을 증폭시킨다. 그 그리움 가슴에 모두 품어 돌아가 온 마음을 베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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