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 의해 태어난 요리, <주관식당>

by wasteuryouth


언젠가부터 쓰는 게 쉽지 않았다. 책상에 앉아 모니터를 한참 쳐다봐도 쓸 만한 것들이 떠오르지 않았다. 내 이야기가 아닌 것들을 쓰려다 보니 무엇을 써야 하나 고민만 하다 노트북을 덮기 일쑤였다. 내 이야기가 아니면 쓸 수 없다는 것은 언젠가 분명한 한계를 마주한다는 뜻이기도 할 텐데, 나는 앞으로 어떻게 남은 인생을 쓰면서 살 수 있는 건가 싶었다.


넷플릭스의 신규 컨텐츠 <주관식당>이 공개됐다. 코미디언 문상훈과 요리사 최강록이 호스트로 식당을 운영하며 게스트의 요구에 맞는 요리를 낸다. 게스트의 요구는 온통 애매한 것들만 있다. 1화에 출연한 가수 장기하는 감자탕이지만 소주보단 와인이 생각나는 감자탕을 주문했고 2화에 출연한 배우 정해인은 야채보다 고기가 맛있다는 편견을 깨달라는 주문을 했다.


최강록은 게스트의 주문 메뉴를 읽고 난 후의 본인의 생각을 글로 정리한다. 상상하는 요리를 그려보기도 한다. 게스트의 요구에 경청하고 치열하게 고민한다. 결국 게스트가 만족하는 요리를 낸다. 상대의 말에 집중하고 요리로 풀어내며 게스트가 먹는 내내 요리에 관한 말을 덧붙인다.


주의를 기울여 듣고 치열하게 고민한다. 작품을 완성하고 작품과 얽힌 설명을 얹어준다. 글쓰기에 아주 적합한 행태다. 말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말을 듣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영감을 얻는 일이다. 영감을 얻지 않으면 아무것도 쓸 수 없다. 최강록의 요리의 영감은 게스트의 엉뚱하고 애매한 주문에서 나왔다.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래야 실낱 같은 영감을 얻어 크게 만들 수 있다.


<주관식당>을 보다 보니 내가 타인의 말을 주의 깊게 들은 것이 언제인가 싶었다. 물론 이래저래 마음이 어지럽고 복잡해 남의 말을 듣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핑계가 되었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한참이나 된 듯하다. 책이나 영화나 드라마에서 영감을 얻기도 하지만 가장 쉽게 체화되는 것은 바로 옆에서 듣는 말이다. 말의 힘은 강하다. 말 한 마디는 누구에게 기쁨 혹은 행복을 주기도 하고 슬픔 또는 화를 주기도 한다. 더 나아가 좋은 영감이 되기도 한다. 나는 한동안 그걸 놓치고 살았다.


말에 기생해 말을 만들어내던, 그걸 조금 더 다듬기 위해 꼴딱 밤을 새우던 날들이 스쳐간다. 언젠가 친구의 이야기를 글로 가공해 쓰는 것을 좋아한다고 쓴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새까맣게 잊고 살았다. 말의 힘에 빌붙어 쓴 글이 한 트럭은 될 텐데 완전히 잊어버렸다.


2화 중 최강록이 말한다. 물질적인 사기보다 정신적인 사기가 더 나쁘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 말을 조심히 하게 됐다고, 그러다 보니 말하기 전에 생각을 많이 해야 하며 그로 인해 말을 더듬게 된 것 같다고. 그 말을 들은 정해인이 말한다, “말의 힘을 아시는 거죠.”


오늘은 또 무얼 써야 하나 하고 앉았다가 말의 힘에 대해 작게 생각해본다. 내 글쓰기 대부분의 영감이 되었던 누군가의 말을 잊고 산 세월이 야속하다. 그나저나 <주관식당>에 등장하는 문상훈 씨의 웰컴노트가 아주 달짝지근한 게 마음에 든다. 문상훈 씨도 남의 말을 참 잘 듣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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