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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왓챠 WATCHA Dec 30. 2019

취향의 변화...<올리버>

올리버(1968)



사람의 취향은 잘 안 변하는 것 같지만 강산이 변하듯 서서히 변형된다. 오십 중반을 향해가는 이 나이에 취향이 변하게 된 요인이 어떤 게 있는지 생각해보니 환경과 체력과 부와 지위는 큰 요인은 아니었던 것 같다. 적어도 나에게 가장 큰 요인은 ‘나이’인 것 같다. 나이가 들면 꼰대가 되듯 무언가 변하는 게 확실히 있다. 오늘은 어릴 적 본 영화의 두 배우를 통해 취향의 변화를 이야기해보고 싶다.


뮤지컬 영화 ‘올리버’(1968)에서 나오는 두 배우 마크 레스터와 잭 와일드, 둘의 콤비를 내가 먼저 본 영화는 오히려 나중 영화인 ‘작은 사랑의 멜로디’(1971)인데 영화보다 먼저 책으로 봤다. 내 청소년기 경험한 첫 연애소설이었다. 그래서 영화의 여주인공 트레이시 하이드처럼 검은 타이즈 상의를 입은 여학생에게 훅하고 빠졌던 기억이 새록새록.

다시 ‘올리버’로 돌아가 마크 레스터는 그야말로 귀엽고 여린 소년인데 잭 와일드는 뭔가 반항기 넘쳐 보이는 개구쟁이다. 당연하다는 말이 맞진 않지만 어쨌든 자연스럽게 두 사람 중의 취향 선택은 마크 레스터이다. 두 영화 모두에서 주인공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 다시 영화를 추억해보면 취향 선택은 잭 와일드가 되어 있다.


몇 가지 이유를 살펴보자면 첫째 잭 와일드가 주인공이 아닐 뿐이지 객관적으로 연기도 노래도 더 잘 한다. 주인공은 판타지가 들어가 있어서 그냥 미소년 하나로 많은 것이 해소된다. 하지만 조연은 정말 잘 해야 하며 심지어 주인공을 더 빛나게 해주어야 한다.


둘째 잭 와일드가 주인공보다 잘 생긴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매력이 있다. 이것은 마크와 잭의 비교에서 진가가 드러난다기보다 나의 감정이 투영된 부분이 크다. 두 사람만 두고 비교할 때 나는 마크보다 잭에 가까운 얼굴인 것이다. 물론 한 천 명 두고 비교하면 순위를 끝에서 찾는 게 더 빠를 것이다.

어릴 적엔 순수해서인지 생각이 짧아서인지 나를 주인공 마크와 대입시키는 게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나이 들어 자신의 모습에 냉정할 수 있는 순간부터 나는 잭을 응원하는 사람이다. “걔가 얼굴은 좀 부족하지만 사실 더 실력이 있다니까!” 아, 말을 뱉어 보니 사실 아직도 냉정한 현실을 보지 못하고 있음을 자각하게 된다. 나는 얼굴도 부족하고 게다가 실력도 별로 없잖아. 얻다 대고 지금 잭이랑 맞먹자는 것인가. 아직도 나의 정체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허허.


이 작품처럼 영국 작가 찰스 디킨스의 작품 올리버 트위스트(1838)를 원작으로 한 영화는 몇 편 있는데 뮤지컬로는 이 작품이 돋보인다. 고아들의 집단 숙소 벽면에 “God is Love”라고 적힌 것이나, 시답지 않은 죽을 먹이면서 일용할 양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를 시키는 것은 허기진 이 시대의 종교상과 다르지 않아 씁쓸하다.


그러나 그 무리 안에서 밝게 노래하고 “I do anything for you”라고 서로를 위해 노래해주는 장면에서 모든 시름이 사라지고 “그래 사는 것이 그런 것이지. 뭐 특별한 게 있나. 옆 사람 웃음 짓게 하면서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지.”라고 중얼거리게 된다. 사실 내 중얼거림은 아주 어릴 적부터 있어왔으며 덕분인지 중학교 때부터 별명이 ‘할아버지’였다.

앞서 말한 영화 ‘작은 사랑의 멜로디’는 ‘First of May’와 같은 비지스의 초기 음악을 OST로 담고 있으므로 발라드 풍의 비지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보석과 같은 영화가 될 것이다. 그러고 보면 비지스는 참 취향이 돌변한 그룹이다. 그렇게 서정적인 노래를 부르던 사람들이 돌연 디스코 음악으로 장르를 바꾸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갑자기 변하면 사람이 멀쩡할 수가 없는데 그들은 아마도 인간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영화 맨 인 블랙을 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는 망상이 생긴다.


취향 얘기로 두 배우 비교하다 이젠 비지스 음악의 전후 비교로 넘어갔다. 이왕 말 나온 김에 더 나아가자.


예전엔 미국 영화가 좋더라. 내가 딴 생각 못하게 영화로 빨아들여 그 줄거리에 졸졸 따라다니게 하는 것이 딱 좋더라. 그런데 나이가 들다보니 유럽 영화가 좋더라. 마치 그림의 여백처럼 생각할 시간을 주니 아주 마음에 들더라.


영화 진행에서 느슨함이 생길 때 하품을 하는지 아니면 생각을 하는지로 그의 연령대를 알 수 있겠다는 내 생각에 동의하시는지? 동의하신다면 당신은 지금 어디에 속하시는지? 나이 들었다고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지어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믿을 수 있는 젊은 구석, 정신연령이 있지 않은가. 음하하.

 


올리버, 지금 보러 갈까요?


최의헌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에서 개인의원과 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강의나 글은 다소 유쾌할 수 있으나 진료실에서는 겁나 딱딱하다고 하니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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