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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왓챠 WATCHA Apr 14. 2020

절망이 희망이 된 우한에서의 나날

후난성 전투(2017)



영화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부터 재밌다. ‘중국공산당에 대한 역겨울 정도의 아부’, ‘중국 빨갱이 찬양 선전 영화’라는 댓글을 쏟아내면서 노골적으로 평점 테러를 가했다. 한 편에서는 ‘국뽕을 한 사발 들이킨 영화’라면서 사실 유무에 대해서는 평가를 유보하는 반응들도 있다. 왜? 중국 역사를 잘 모르기 때문에.


흥미로운 모습이다. <국제시장>, <인천상륙작전>부터 <암살>, <밀정> 심지어 <명량>까지 ‘국뽕을 한 사발 들이킨 영화’라면 우리나라 영화가 선도적일텐데, 또한 <라이언일병구하기>부터 <퓨리> 심지어 <어벤저스>까지 마치 세계대전을 자신들이 모조리 해결하고 심지어 외계인의 침공가지 막아대는 헐리우드 영화 또한 못지않을 텐데 유별나게 흥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더구나 G2로 올라선지 오래이고 수많은 학자들이 미국의 몰락을 예견하며 대변동을 준비하라고 충고함에도 불구하고 1950년대에나 나올 법한 ‘빨갱이’ 같은 단어가 아무렇게나 쓰여지는 현실을 도대체 어떻게 해석 해야 할까.


혁명은 끝나지 않았다.

쑨원의 유언이다. 1911년 신해혁명을 일으켜서 청나라를 타도한 후 동아시아 최초의 민주공화국 중화민국을 세운 인물. 얼마 후 위안스카이와 여러 군벌의 배반으로 중화민국이 무너졌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중국 최남단 광저우에서 세력을 회복했고 레닌의 지원을 받아 강력한 군사력을 갖추었다. 이 때 쑨원의 국민당은 중국공산당을 받아들여 1차 국공합작을 성공한다. 자, 이제 북벌이다! 베이징까지 진격하여 군벌정권을 박살내고 혁명을 재건해야 한다.


하지만 이즈음 쑨원은 쓰러졌고 기어코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지도자의 부재.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명의 열기는 뜨거웠기 때문에 국공합작군은 군대를 크게 2개로 나누어서 북상을 시작한다. 연전연승, 파죽지세. 혁명을 소망하는 중국 인민들의 적극적 호응과 결합하면서 다시금 희망이 불타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장제스가 이끌던 군대는 상하이를 점령한 후 난징에 정착했고 중국공산당이 포함된 무리는 우한에 머물렀다.


우한이 어떤 곳인가. 신해혁명의 발상지. 이 곳에서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는 것이다! 중국의 절반을 장악하며 희망에 들뜬 상황. 하지만 오랫동안 염려해온 그 문제가 기어코 터진 것이다. 국민당과 공산당. 민족주의와 공산주의. 둘의 갈등이 본격화 된 것이다. 

누가 먼저였다고 따진다는 것은 소모적인 논쟁일 뿐. 중요한 사실은 낌새를 챈 장제스가 과감하게 선수를 쳤다는 사실이다. 상하이에서는 자본가와 토호들과 결탁하여 공산주의 지도자들이 이끄는 노동자 그룹을 처단하였고 당내 공산당 지도자를 숙청하는 가운데 우한정부를 부정하고 난징에 정부를 수립한 것이다. 공산당 뿐 아니라 국민당의 여러 지도자들을 배제시킨 명백한 쿠데타였다.


장제스는 혁명을 배반했다!

영화 <후난성 전투>는 이 지점에서부터 시작한다. 정열적인 공산주의 지도자들은 상하이에서 처절하게 배신당했고 이제 선택을 해야만 한다. 어떤 선택? 초대 중국공산당 서기장 천두슈는 국민당에 유화적이었다. 리리싼은 지나치게 급했고 취추바이는 도시에서의 폭동 말고는 대안이 없었고 왕밍은 소련에서 배운 것 밖에 할 줄 아는 것이 없었다. 이제 갓 태어난 중국공산당의 지도자들은 장제스의 기혹한 시험을 감당할 준비가 되지 못했다. 아마 이 때 완전히 무너녔다면 중국은, 동아시아는 또 다른 역사의 길을 걷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저우언라이와 마오쩌둥.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하지만 튼실했고 장제스마저도 신뢰했던 저우언라이. 그리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종잡기조차 어려웠던 공산당의 얼간이 마오쩌둥이 기어코 길을 낸다.

우리가 쑨원의 혁명을 계승한 것이다! 

장제스는 혁명을 배신했다. 인민을 배신했고 권력자들과 결탁했고 국공합작의 이상을 부인했기 때문이다. 쑨원의 아내 쑹칭링 또한 공산당의 편에 선다. 혁명을 이루어내기 위해 무장 봉기에 나서야 한다. 그간 애매했던 국민당 내의 지도자들은 선택을 해야 한다. 계속 국민당에 머물지 아니면 우리 공산당과 함께 할지! 


1927년 8월 난창봉기를 시작으로 12월 광저우봉기까지 중국공산당은 고독한 홀로서기를 시도한다. 하지만 중과부적. 당장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더라도 그 이상을 감당할 물자도, 군세도 없다.


남은 곳은 단 하나! 장시성 징강산. 마오쩌둥이 세운 소비에트가 대안이다. 각고의 전투 끝에 끝내 살아남은 주더의 부대가 징강산에 합류했고 비로소 ‘홍군’이라 불리는 중국인민해방군이 창설된 것이다. 따라서 영화는 패배의 연속으로 이야기가 이어지지만 끝내 희망적으로 마무리가 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것이다.


우한 폐렴? 정말 중국인들에게 무례한 혐오 발언

오늘날 우한이 포함된 후베이성, 그리고 후난성, 장시성은 중국 혁명의 성지와 같은 곳이다. 영화는 인민해방군 창설 90주년을 기념으로 만들어진 작품. 흥미롭게도 중국인민해방군 군가는 우리나라 광주 출신 정율성이 만들었다. 희망을 찾고자 중국에서 활동했던 인물들은 김구와 김원봉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이제는 조금 수그러들긴 했지만 여전히 비하적인 목적으로 가지고 우한폐렴 운운하는 사람들이 있다. 중국의 역사를 생각한다면 참으로 모역적인 언사일 것이다. 참고로 하얼빈에 가면 정율성 기념관이 있다. 전형적인 중국식 군가인데 이 또한 정율성을 둘러싼 한인 사회주의자의 역사를 모른다면 제대로 된 감흥을 누릴 수가 없다. 반대로 얘기한다면 역사를 배울 때 누릴 수 있는 것이 참 많다는 사실! 



후난성 전투, 지금 볼까요?


심용환 / 역사학자, 작가


역사N교육연구소 소장이자 성공회대 외래교수입니다. <단박에 한국사>, <헌법의 상상력> 등 깊이와 재미를 고루 갖춘 작품을 쏟아내고 있죠. <KBS 역사저널 그날>, <MBC 타박타박 세계사>, <굿모닝FM 김제동입니다> 등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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