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 하(2012)
“무슨 일 하세요?” “아 설명하기 힘들어요..”
쭈뼛거리며 둘러대는 그녀에게도 원대한 포부가 있었다. 유명한 현대 무용가가 되어 세계를 접수하고 그사이 출판 업계의 큰손이 된 절친이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내서 다 읽진 않더라도 집집마다 하나씩은 있는 책 속의 주인공이 되리라는. 하지만 그 꿈은 현재 깨지는 중이다.
그래서 몸담고 있던 무용단에서 한 번도 메인이 되지 못하다가 결국 주요 공연에서도 밀려난 ‘전직' 견습 무용수의 대답은 ‘설명하기 힘들어요.’가 되고 만다. 그나마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그래도 잘 지내요.’를 덧붙여봤자 처지가 나아지지는 않는다는 걸 알지만 어쩌겠는가. ‘저는 산산이 부서지고 있고 집도 없고 돈도 없고 아무 데서도 절 찾지 않아요.’라고 대답할 수는 없지 않은가.
붙잡고 있던 유일한 동반자였던 가장 친한 친구마저 자신의 삶을 찾아 멀어지고 혼자 살 집을 구할 만큼의 경제적 여유도 없는 프란시스는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더부살이를 한다. 브루클린, 차이나타운,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 파리, 뉴욕 포킵시, 워싱턴 하이츠. 영화는 그녀의 거주지를 따라 챕터를 구분하며 정착하지 못하는 삶의 불안정성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어딘지 모를 밝은 기운이 있다. 영화를 채운 음악들도 깜찍하고 사랑스러운데 그중에서도 가장 희망찬 순간은 그녀가 부잣집 예술가들과 함께 살게 되면서 자신의 인생도 달라질지 모른다는 라는 희망을 품고 재기발랄하게 거리를 활보하는 장면이다. 청량하고 경쾌한 데이비드 보위의 Modern Love는 그 활기를 완성시킨다.
레오 까락스 감독의 [나쁜 피. 1986]에서 드니 라방이 질주하는 장면을 오마주한 장면. 나쁜 피에서 주인공의 고독한 내면과 반대되는 음악으로 그 복잡한 심경을 강조했던 것과 달리 이 영화에서는 조금 더 직선적이고 밝은 분위기로 주인공의 심경을 보여준다. 물론 그 작은 활력마저 이내 사라지고 말지만.
“그렇게 카드로 쓰다가 빚덩이에 오를 거예요"
현실에 허덕이던 프란시스는 무용단원이 아닌 무용단의 관리직을 제안받고 결국 그것이 꿈꿔왔던 삶에서 많이 멀어질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수락한다. 새로운 삶을 받아들이고 담담하게 자신의 일을 하는 프란시스의 모습을 보며 왈칵 그녀를 안아주고 싶었다. 그녀에게 그렇게나 감정 이입이 되었던 것은 언젠가의 나, 내 주변인들의 상황과 너무 닮아있어서인지도 모른다.
현실에 안주하고 싶지는 않지만 성취하고자 했던 것들이 점점 손에서 멀어지는 것을 보면서 스스로의 재능을 의심하게 되고 그래도 이게 끝은 아닐 거야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걸어가려 하지만 그때마다 판결문처럼 명확하게 결정지어져 눈앞에 떨어지는 현실. 눈 한 번 질끈 감아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좌절과 소외감 속에서 그런 자신의 현실을 감추려 이상한 방식으로 포장해버리는 처연함.
반짝거리던 재능을 채 꽃 피우지 못하고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던 나와 우리의 슬픈 수긍의 순간들이 생각나서였을 것이다. 프란시스를, 나를, 꿈을 이루지 못한 모두를, 안아주고 싶었다. 좌절된 꿈에 대한 동정 어린 공감과 그래도 이루지 못한 꿈에 함몰되지 않고 다른 길을 찾은 용기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섞인 복잡한 마음으로.
인생에 극적인 반전을 맞이하지 못한 그녀는 세계적인 무용수는 못 됐지만 이제는 더부살이를 끝내고 자신의 정착지를 찾아 우편함에 자신의 이름을 넣을 수는 있게 되었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내내 품었던 의문 -미국에 하 씨가 있나? 한국계 미국인인 건가? 아니면 상, 하편이 있는 거야? 도대체 왜 프란시스 하야?-이 풀리는 마지막 장면! 완성된 이름을 걸어놓지 않아도 ‘괜찮다’며 삶의 부서진 부분들을 어루만지는 메시지는 열 마디의 말보다 더 강하게 마음을 때린다.
이어 흐르는 엔딩 곡은 다시, 데이빗 보위의 Modern Love다.
4년 전 오늘 우리 곁을 떠난 데이비드 보위는 프란시스와는 정반대의 삶을 산 사람이다. ‘안주하는 순간 당신은 죽은 것이다.’라고 말하며 변신과 확장을 일생의 과업처럼 안고 살았고 그래서 한 인물이 맞나 싶을 정도의 다양한 모습을 세상에 남겼다. 프란시스가 동경했던 예술적 삶의 끝판왕, 성공한 예술가이다. 누구나 동경하지만 아무나 살 수 없는 삶을 살았던 데이비드 보위가 프란시스를 만난다면 뭐라고 충고할까? Modern Love의 가사처럼 try, try 하라고 속 편히 충고할 수 있을까? 글쎄. 인생이 그렇게 호락호락하면 좋으련만.
어쨌든 스물일곱 프란시스의 선택으로 서른일곱, 마흔일곱까지 행복했을지는 모르지만 가장 희망찬 순간 울려 퍼졌던 노래가 영화 말미에 다시 흐름으로서 그녀가 그 순간만은 행복했다고 말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꿈이 깨진다고 모든 것이 끝나는 건 아니니까. 깨진 꿈을 밟고 다시 서면, 삶의 다른 각도에서 다른 꿈을 꿀 수도 있을 테니까.
장혜진 / 초원서점 전 주인장
한때 음악 서점을 운영했던 사람입니다. 음악과 영화 이야기를 이리저리 섞어서 해보려고 합니다. 둘 중 뭐라도 당신에게 재미가 있다면 좋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