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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왓챠 WATCHA Oct 30. 2019

들소처럼 달려가는 비상구,
<헤이와이어>

헤이와이어 (2011)



좀 부끄러운 이야기인데, 난 비폭력주의자가 아니다. 난 이성적인 토론과 합리적 판단이 중요하다 믿고, 사형제도에 반대하며, 누구도 필요 이상의 처벌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마음 깊은 곳에선 다른 목소리도 울려 퍼진다. 


다 모르겠고 
싹 다 꺼졌으면 좋겠다.


내가 가식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성과 합리, 인도주의를 말하는 나도, 시끄럽고 죄다 때려부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나도 모두 내 모습이니까. 다만 전자가 여러모로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서, 불쑥불쑥 고개를 들려고 하는 후자의 충동을 살살 달래며 평화롭게 살려고 노력할 뿐이다.



세상이 온통 때려부수는 스포츠로 가득한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이리라. 폭력과 파괴본능을 상상계에만 묶어 두기 위해서, 욕구를 대리만족 시켜줄 무언가를 찾는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거겠지. 


사람들은 건장한 육체가 격돌하는 축구와 럭비에 열광하고, 옥타곤 철창 안에서 서로를 묵사발을 내는 이종격투기에 열광하고, 자동차들이 트랙 위에서 박살이 나는 나스카 레이싱에 열광한다. 


물론 모든 스포츠에는 나름의 룰이 있고 정교한 기술들이 있지만, 결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환호하는 건 타격음과 파열음 아니던가? (아, 야구는 예외다. 뭐 신나게 때리지도 부수지도 못할 거면서, 맨날 지는 팀이 또 지는 걸 굳이 보겠다고 야구장을 찾는 야구 팬들은 훨씬 더 이상하게 비틀린 사람들이다. 내가 롯데 팬이었어서 잘 안다.)


(롯데야구를 끊은 뒤) 나는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게 쌓일 때면 액션 영화를 꺼내서 보는 것으로 파괴본능을 달랜다. 그리고 그런 용도라면 최대한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작품이 좋다. 이를테면 류승완의 <짝패>는 훌륭한 액션 영화이고 너무나 사랑하는 작품이지만, 보고 있노라면 날로 극심해지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과 부동산 공화국에 대한 걱정에 빠지는 걸 피할 수 없다. 


지구 온난화 걱정을 하게 되는 <매드맥스> 시리즈나, 팽창하는 중화주의의 그림자를 걱정하게 되는 <엽문> 시리즈, 기계 수트를 입고 날아다니는 이재용을 영웅으로 추앙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사고실험을 하게 되는 <아이언맨> 시리즈도 적절치 않다. 음, 역시 이럴 땐 <헤이와이어>만한 게 없다.



겉으로만 보면 <헤이와이어>는 진지한 에스피오나지 스릴러처럼 보인다. 감독은 스티븐 소더버그고, 출연하는 배우들 면면도 A급이다. 마이클 더글라스, 이완 맥그리거, 안토니오 반데라스, 마이클 파스벤더, 채닝 테이텀, 마티유 카소비츠… 


더러운 스파이 공작을 민간업체에게 외주를 맡기는 정보기구에 대한 비판과, 국가가 쳐 놓은 함정에 빠진 개인이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이 담긴 시놉시스도 묵직하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면, <헤이와이어>는 그런 작품이 아니다. 이 작품의 유일한 목적은, 이종격투기 선수이자 연기 경력이 일천한 생짜 신인인 지나 카라노가 위에서 언급한 할리우드 A급 거물들을 죽어라 두들겨 패는 모습을 전시하는 것이다.


격투 장면이니 지나 카라노도 어지간히 얻어 맞기는 하지만, 모든 격투의 끝에 쓰러진 파스벤더 앞에, 테이텀 앞에, 맥그리거 앞에 당당히 서 있는 건 언제나 다부진 체격과 살기 어린 눈빛의 지나 카라노다. 



모든 플롯은 오로지 지나 카라노가 사람을 팰 만한 핑계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만 설계되었는데, 그 덕에 영화를 보고 나오면 내용은 하나도 기억 안 나는데 지옥에서 올라온 저승사자 같은 기세로 사람을 때리려 달려오는 지나 카라노만 기억에 남는 것이다! 아, 나도 저렇게 한 마리 들소 같은 기세로 돌진할 수 있다면!


영화를 통해 새로운 관점을 배우고 감상의 지평을 넓히는 건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난 누구나 한편 정도 이렇게 아무 고민 없이 볼 수 있는 비상구 같은 작품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도 생각한다. 24시간 평화롭게만 살기엔 세상은 너무도 복잡하고 무례한데, 그렇다고 켜켜이 쌓인 스트레스와 파괴본능을 남들에게 발산할 수도 없는 일이니까. 


오늘 하루에 쌓인 분노와 울분을 모니터를 보며 털어내야, 내일 또 다시 일어나 저 짐승 같은 세상 속에서 인간의 도리를 지키며 살 것 아닌가.



헤이와이어, 지금 보러 갈까요?



이승한 / 칼럼니스트


열 두살부터 스물 세살까지 영화감독이 되길 희망했던 실패한 감독지망생입니다. 스물 넷부터 서른 여섯까지는 TV와 영화를 빌미로 하고 싶은 말을 떠들고 있죠. 자기 영화를 왓챠에 걸었으면 좋았으련만, 남의 영화를 본 소감을 왓챠 브런치에 걸게 된 뒤틀린 인생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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