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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왓챠 WATCHA Nov 12. 2019

'주크박스'가 떠오르는 영화들

문라이트(2016), 타락천사(1995)...



1. <문라이트>의 주크박스

금목걸이를 한 건장한 청년이 레스토랑으로 들어선다. 조금 긴장한 듯 몸에 힘이 들어간 채 서 있는 남자는 눈으로 누군가를 찾는다. 드디어 찾는 이를 발견한 청년의 얼굴에는 복잡한 표정이 스쳐간다.


바쁘게 몸을 움직이던 상대방도 청년의 존재를 알아차린다. 의자에 앉은 청년을 바라보며 믿지 못하겠다는 듯 반가움의 미소를 머금는 그의 얼굴이 환해진다.



손님으로 들어온 청년의 이름은 사이론. 그를 맞이한 청년의 이름은 케빈. 두 사람은 소년기의 친구이다. 커다랗고 넓은 세상에서 작디작은 두 소년은 언뜻 언뜻 스치는 시간 속에서 친구가 되었고 서로의 의지가 되었으며 존재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시간은 운명과 손을 잡고 두 소년의 사이를 갈라놓았고 긴 긴 시간이 지난 후 마주 앉은 두 청년은 오래 전 함께 했던 그들의 시간과 공백의 시간과 지금의 순간의 간극을 메우려는 듯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케빈이 문득 생각난 듯이 주크박스 앞으로 다가선다. 그가 선택한 곡은 바바라 루이스의 ‘hello stranger'. 반가움을 가득 담은 듯한 음성은 노래한다. 마치 사이론에게 말을 건네듯 노래한다.


안녕, 낯선 사람. 다시 만나니 반갑네요.
이게 얼마 만인가요.
정말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
안부를 물으러 들러주니 기뻐요.


영화 <문라이트>의 주크박스에서 무심하게 흐르는 'hello stranger'는 그렇게 사이론과 케빈의 마음을 대변하며 우리의 마음속으로 스며든다.



2. <타락천사>의 주크박스

여자는 바에 홀로 앉아 눈물을 흘리며 주크박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고 있다. 남자가 그녀에게 남긴 곡은 주크박스 1818번, 망기타, 그를 잊어요.


가흔이라는 이름의 여자는 기억을 잃은 살인청부업자 황지명에게 임무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만 황지명을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지명은 사적인 감정은 일을 하는 데 지장을 줄 뿐이라 생각하며 가흔을 멀리 하고 그녀와의 동업을 끝내려 한다.


지명은 마음을 굳히고 바의 사장에게 주크박스 1818번을 남긴다. 그녀, 가흔이 찾아오면 들려주라는 말과 함께. 그렇게 가흔은 자신에게 남겨진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흘린다.


그 사람을 잊는다는 것은 모든 것을 잊는다는 것.
어떻게 그 사람을 잊을 수 있을까요.
마음 속 깊이 새겨져 영원히 기억 할 텐데.


영화 <타락천사>의 주크박스에서는 관숙이의 ‘망기타’가 애절하게 흐르면서 가흔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3. <형사에겐 디저트가 없다>의 주크박스

성공한 커리어우먼 클레어. 세 남자와 교제 중인데 이제 슬슬 결혼해서 한 사람에게 정착하고 싶다. 생각 끝에 세 남자를 초대해 만찬을 즐기고 있는데 그만 실수로 주방에서 애인 한 명을 죽이게 된다.


너무 놀라고 겁을 먹은 클레어는 사건을 은폐하려다 다른 남자들까지 모두 살해하게 되는데 설상가상 인근에서 벌어진 강도 사건 때문에 형사들이 그녀의 집까지 찾아오게 된다.


생일축하를 해준다며 사람들을 잔뜩 몰고 온 여동생과 갑자기 나타난 남자친구까지 클레어를 가만 놓아두지 않고, 가까스로 모두를 돌려보낸 클레어 앞에 이번엔 강도 둘이 나타난다. 다시 형사들이 클레어의 집을 찾아오고 클레어는 강도들과 협상을 하고는 급한 김에 주크 박스 안으로 둘을 들여보낸다.


클레어에게서는 더 이상 찾아낼 것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심드렁한 얼굴로 집을 둘러보던 형사는 주크박스를 발견하고는 버튼을 누른다. 그 모습을 본 클레어 뿐 아니라 주크박스 안의 강도들 그리고 관객들까지 조마조마한 상황이 펼쳐지는데 기지를 발휘한 주크박스 안의 강도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그들이 부른 노래는 'only you'.


당신뿐이야. 이 세상을 올바르게 만들 수 있는 건.
당신뿐이야. 어둠을 밝게 만들 수 있는 건.
당신은 내 꿈이야. 하나밖에 없는 꿈.
당신은 내 운명이야. 내 손을 잡고 있을 때 알 수 있어.


들키면 안 되는 긴장된 순간에 둘은 그렇게 only you를 부르기 시작한다. 온 마음을 다해 모든 감정을 실어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최고의 노래를 부르는 그 모습에 그만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부르고는 있지만 다소 수준이 떨어지는 노래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형사는 고개를 갸우뚱하지만 큰 의심 없이 돌아가고 주크박스 안의 두 사람은 가슴을 쓸어내린다.


영화 <형사에겐 디저트가 없다>의 주크박스는 그렇게 서스펜스와 코미디가 뒤섞인 재치 있는 블랙코미디의 최고의 장면을 만들어내고야 만다.



당신의 주크박스는 지금 어떤 노래를 들려주고 있을까.



문라이트, 지금 보러 갈까요?


신지혜 / CBS 아나운서 <신지혜의 영화음악> 제작 및 진행


<영화와 오브제>는 영화에 등장하는 다양한 오브제로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려 합니다. 글을 읽는 분들의 마음에 작고 맑은 감상을 불러일으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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