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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피스]Yema의 1970년대 회중시계

전성기 시절의 예마를 보면서 드는 생각

by 워치노트

시계 강대국을 꼽으라면 어떤 나라를 떠올릴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나라는 스위스일 거다. 시계학교 보스텝부터 주요 시계 브랜드까지 대부분 스위스에 본거지를 두고 있으니 이견이 나올 수 없다. 클락을 모을 정도로 매니아라면 시계 복원으로 유명한 영국을 떠올릴 거다. 랑에 운트 죄네를 품은 독일도 빼놓을 수 없다. 쿼츠 파동의 주역인 일본은 어떨까. 이젠 주요 부품 생산국인 중국을 이야기해야 할까.


하지만 시계의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한때는 프랑스도"라는 말이 입에서 멤돌거다. 이젠 먼 얘기지만, 1600년대엔 스위스 대신 프랑스가 시계 강국으로 꼽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너무 옛날이라고 치부하기엔, 시계만큼 브랜드의 정통성과 역사가 파급력을 지니는 분야가 몇 없다는 걸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시계 핸즈는 메인스프링의 동력만으로 움직이지만, 시계 브랜드는 기술과 자본, 마케팅, 그리고 역사의 가속력으로 성장한다. 프랑스 왕궁에서 시계를 납품하던 매뉴팩쳐가 브랜드로 재탄생해 역사를 이어간다면 그 힘은 엄청날 거다. 현재 프랑스가 얼마나 위대한 유산을 잃어버렸는지, 그리고 왜 프랑스 브랜드들이 원피스처럼 자국의 시계 역사를 되찾고 이어가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지 생각해봐야 하는 이유다.


프랑스는 1600년대 영국과 함께 시계 강대국의 자리를 지켰다. 이 시기 사람들은 광장에 기계식 시계를 둘 정도로 정교한 기계 기술을 갖췄다. 물론 일반 사람들에게까지 시계가 보급됐다는 뜻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해시계를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반면 이 시기 스위스 시계의 기술력은 바닥에 가까웠다. 1500년대 제네바엔 마땅한 시계 기술자가 없어 생피에르 교회의 시계가 고장나도 손을 쓸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1685년 루이 14세가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낭트 칙령을 폐지하면서 개신교 신자들은 프랑스를 떠났고, 이 중엔 시계 기술자들도 섞여 있었다. 당시 프랑스의 시계 기술자들 중 상당수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됐던 인근국 제네바에 정착했다. 이를 기점으로 프랑스 시계 산업은 빠르게 무너졌고, 스위스는 프랑스를 제치고 영국과 함께 시계 강국으로 떠올랐다.


이후 프랑스 시계의 역사를 이어갈 브랜드들이 등장했다. 까르띠에가 대표적이다. 브레게의 경우 스위스에 본사를 두고 있지만 가끔 프랑스 브랜드로 보는 글들이 보인다. 현대에 와선 사각형 배젤로 인기를 끈 벨앤로스, 그리고 오늘 이야기할 예마를 꼽을 수 있다.


1948년에 세워졌다고 알려진 예마는 1960년대 300미터 방수 기능을 갖춘 다이버 시계 '슈퍼맨' 등을 출시하며 시계 매니아들의 눈길을 끌었다. 1970년대엔 프랑스 공군에 시계를 납품하고, 1980년대엔 우주 비행과 북극 탐사에 사용된 시계를 제작했다. 이후 복잡한 경영 사정을 거치며 조금씩 매니아들의 기억에서 잊혀지는 듯 했지만, 최근 슈퍼맨을 복각하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예마가 내세운 '인하우스 무브먼트'가 타사 무브먼트를 조금 고친 것에 불과한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며 논란에 휩싸였다. 일부 매니아들은 몇몇 기계식 시계 브랜드의 허위 마케팅과 미디어의 충분치 못한 검증이 민낯을 보였다고 평했다. 커뮤니티에 따르면 이후 예마는 '자사 무버먼트는 에타2824로부터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제품은 맞습니다. 하지만 카피가 아닌 저희 자체적으로 디자인한 무브먼트입니다'라고 해명했지만, 일각에선 흔히 말하는 '자체 무브먼트'라고 보기 어려운 점은 매한가지가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KakaoTalk_20211207_223354035_01.jpg 1975년경 제작된 Yema 시계. 사진=올드스쿨 워치

이같은 '예마 논란'이 한창일 때 1975년쯤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예마의 회중시계를 샀다. 어디까지 오리지널 파트를 사용했는지 확인하긴 어려워 망설였지만, 1948년에 세워졌다던 브랜드가 굳이 1970년대에 회중시계를 만들었다는 게 키치해 마음이 끌렸다. 한때 사람들을 매료시킨 '전성기 시절 예마'를 맛보고 싶은 생각도 컸다. 판매자에 따르면 무브먼트와 글래스는 교체됐다. 구글링을 해보니 핸즈와 다이얼, 케이스 등은 모두 제치로 추정된다.


설명했듯 손목시계가 주류로 자리잡은 1970년대에 만들어진 포켓워치라는 게 가장 눈길을 끌었다. 예마의 주장을 그대로 믿더라도 브랜드 설립 연도는 1948년으로 이미 손목시계가 보급된 이후다. 손목시계가 보급된 시절에 태어난 브랜드가 회중시계를 제작했다는 게 과할 정도로 자신감 넘쳐보였고, 한편으론 어떻게든 정통성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동 방식은 손으로 태엽을 감아야 움직이는 매뉴얼 와인딩 방식이다. 배터리로 움직이는 쿼츠 시계가 기계식 시계들을 무너뜨린 '쿼츠파동'이 한창이었던 때에 클래식한 수동 방식을 적용한 것이다. 그 와중에 무브먼트는 에타를 사용했다. 키치해서 샀다는 이야기를 괜히 한 게 아니다. 여러 사람들의 손을 거친 빈티지 시계의 특성상 무브먼트에 오리지널 파트가 얼마나 쓰였는지 파악하긴 힘들지만, 이 시절 예마가 에타 무브먼트를 사용했다고 하니 일단 기분은 내줬다는 데에 만족해야 할 것 같다.


세컨 다이얼 위엔 Antichoc가 써있는데 예마가 1950년대에 충격을 방지할 수 있는 시계를 만들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나름의 기술력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브랜드 로고 아래엔 자성방지를 의미하는 Antimagnetic이 쓰였다. 그 시절 자성방지 기술이 지금까지 충분한 능력을 보여줄진 모르겠지만 현재까지 사용하면서 별다른 불편함은 못느끼고 있다.


사실 별다른 기능은 없지만, 약 50년이 지난 지금 봐도 우아한 숫자 인덱스나 질리지 않는 은은한 색 배합은 디자인 면에서 상당히 주목할만 하다. 큰 기대 없이 구매해선지 아쉬운 점을 꼽자면 시침이 제대로 꽂혀있지 않다는 정도.


일반적으로 기계식 시계는 기능과 디자인, 브랜드 또는 모델의 스토리 등을 중심으로 가치를 평가받는다. '시테크'의 시대엔 리셀 가격도 빼놓을 수 없다. 아직 알아가야 할 게 많은 처지라 이런 총체적인 요소를 바탕으로 브랜드 예마에 대해 평을 하긴 어려울 것 같다. 다만 이 회중시계에 한해 이야기하자면, 브랜드의 역사 측면에서 예마의 가장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아 가끔은 시계가 안쓰러워 보일 때가 있다. 특히 태엽을 감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성실하게 초침을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더 그렇다. 상당히 낮은 가격에 사고 팔리는 시계지만, 예마의 전성기 시절 시계엔 이런 얄궂은 재미가 있다.


+ Wilson Pickett의 I was too nice를 들으며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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