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수학여행을 가기 위해 5시 30분에 일어났습니다. 작년 한산도에서 학교를 다닐 때도 수학여행을 갔는데(그 학교는 매년 전교생이 다 함께 수학여행을 갑니다) 그때는 새벽에 출발하지 않았거든요. 일찍 출발하는 일이 불편하지 않느냐고 물으니 원래 수학여행 출발시간은 새벽이라며, 작년 출발이 비정상이었다고 합니다. 부드럽게 물결치던 내 마음이 ‘비정상’이라는 말에서 높은 파도를 칩니다. 정상·비정상의 기준이 상대적이고 가변적이며 지극히 주관적인데도 비정상이 되는 순간 어쩔 수 없이 얻어맞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저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제 생각이 비정상으로 느낄 때가 많았습니다. 저더러 대놓고 틀렸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었죠. 마찬가지로 제가 폭력적일 때도 물론 있었어요. ‘내 생각이 분명 정상인데, 저 사람은 왜 비정상이지?’라는 생각으로 말이죠.
글을 쓰면서 많은 생각을 했지만 그중에서도 비정상적인 제 생각이 참 좋았습니다. 사람들이 잘 보지 못하는 틈새의 눈으로 글을 쓰면 짧은 생각마저 귀해진다고 할까요? 제가 글쓰기를 좋아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어요. 글을 쓰는 동안 비정상에서 출발한 우둘투둘한 생각이 다듬어지고, 다듬어진 생각이 다시 걸러져 보석처럼 반짝거려 좋았습니다. 제가 재봉틀 앞에서 재밌어할 때가 자르고 남은 조각 천을 이을 때인데 이 책을 쓰는 동안 조각난(비정상적인) 생각을 예쁘게 꿰매는 재미가 좋더라고요. 더러는 ‘다들 그렇게 생각해. 내 생각이 특별하거나 비정상이 아니야.’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글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했더라도 글을 쓰면서 흔한 생각도 정제되어 알맹이만 남아 온전히 내 것이 되니 저는 좋은 사람이 되는 듯 행복했습니다.
이 책은 당신에게 읽히기 위한 목적으로 썼지만 그보다 저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비정상적으로 모난 생각을 스스로 인정하고 위안하는 글쓰기였음을 말이에요. 간혹 잘난 척한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어요. 잘난 척도 자신감을 갖는 과정이었습니다. 유명한 그림책 제목처럼 틀려도 괜찮으니까요. 손을 드는 용기, 두근거리는 심장을 겨우 진정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순간은 답이 뭐든 그 자체로 소중하니까요. 생각을 다듬어 글을 완성하고, ‘브런치’에 올려 독자와 공감하는 동안 저는 이전보다 확실히 손들기가 편해졌습니다(아직도 심장은 두근거리지만 귀까지 빨개지지는 않아요).
이 책을 통해 당신도 자신을 토닥일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습니다. 제 글이 당신의 치유에 도움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어요. 반대로 글을 읽으면서 저와 다른 생각이 샘솟는다면 그 또한 원석의 발견이니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평소 손들고 발표하는 일, 내 의견을 표현하는 일이 버거운 성격이라면 글을 읽으면서 당신만의 생각을 다듬고 추출하면 좋겠습니다. 제 글을 통해 당신도 말할 용기가 생긴다면(저와 완전히 다른 생각이라도 저는 들을 준비가 되어있으니) 첫 번째 청중으로 저를 택해주세요. 당신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을게요.
적어도 이 책을 읽고 나면 당신의 생각이 부끄럽지는 않게 될 것이라고 믿어요. ‘내가 비정상인가?’라는 자조도, ‘네가 틀렸어.’라는 지적도 먼지처럼 날아가고 ‘나는 생각이 달라. 그래도 괜찮고 오히려 멋있어.’하는 자신감을 얻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조각 천으로 이어 새로 탄생한 옷감은 독창성, 희소성으로 더 매력적이듯 거름망을 통과한 생각을 다시 이어 만든 당신만의 생각 또한 귀하고 아름다우니까요.
동이 트기 시작하네요. 채비를 마친 딸이 신발을 신습니다. 친구들 대부분은 캐리어를 끌고 가는데 자기는 아무리 생각해도 끌기가 싫다며 뚱뚱한 배낭을 메네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죠. 제가 “네가 비정상인데?”하니 딸은 정색하며 배낭이 가진 장점에 대해 열거합니다.
캐리어를 끄는 어린이들 사이에서 꿋꿋이 배낭을 멘 딸의 뒷모습을 보며 저는 오늘도 어떤 생각을 꿰매서 어떤 글이 나올지 살짝 기대가 됩니다.
에필로그
첫 책을 내고 나서 제가 다짐한 게 있었습니다. 이 책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어서는 안 된다는 비장한 각오였어요. 복직을 하고 틈틈이 글을 쓰려고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생각해 둔 콘텐츠가 있어서 몇 꼭지 쓰기도 했지만 이어나가기 너무 버겁기도 했죠. 여름방학이 되어서야 열정적으로 첫 책을 썼던 그 시절의 에너지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솔직히 ‘안 쓰면 안 된다’는 각오로 글을 썼습니다. 가장 무서운 벌은 타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실망이니까요. 첫 책을 집필하던 그때처럼 8월 말까지 완료를 목표로 잡고 방학 내내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글을 썼습니다. 흐름을 잃으면 각오가 무너질까 봐 여행 중에도 글쓰기를 쉬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직 제 글쓰기 스타일이 없습니다. 다양한 재료를 끌어와서 다양한 요리법으로 도전하는 방법밖에 없었죠. 산만하다고 느꼈을 수도 있어요. 덜 된 작가가 성장하는 중이라고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 책을 내보니 글은 아무리 써도 어렵고 힘든 고행임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어제 글보다 오늘 쓴 글이 조금 낫더라고요. 아이를 키우면 그런 경우 있잖아요. 나는 내 자식을 매일 보니 크는지 안 크는지 모르겠는데 가끔 만나는 사람은 너무 많이 커서 내 아인지 모르겠다고 하는 경우 말이에요. 제 글도 아주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고 믿어요. 저는 성장이 멈추거나 퇴보하지 않도록 죽을 때까지 글을 쓸 생각입니다.
아주 먼 훗날 제가 [섬에서 놀면 안 될까요] 나 [생각이 짧아서 꿰매는 중]을 다시 보게 된다면 낯 뜨거운 부끄러움을 과연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사실 지금도 처녀작은 충분히 부끄럽습니다). 그러지 않으려면 매일 쳐다보고 읽어야겠죠? 사실 아니어도 괜찮아요. 아이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보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고 싶을 만큼 너무 사랑스럽듯 그 시절, 어린 작가의 책도 그렇게 볼 수 있으리라 믿어요. 아니, 사랑스럽게 볼 수 있을 만큼 제가 많이 늙은, 성숙한 작가가 되어 있으면 좋겠어요.
이 책을 쓰는데 특별히 감사한 분이 있습니다. ‘브런치’에서 제 글을 읽고 ‘좋아요’로 공감을 표현해 주시고 댓글도 달아주신 분입니다. 매일 오는 새 글 알림 소리가 귀찮으셨을 텐데 기꺼이 구독해 주신 구독자님께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제가 글을 쓰고, 글로 회복하고, 글이 성장하는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직접 뵐 수 없어 이렇게 밖에는 고마운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지만 저도 구독자님의 글을 응원하고 인연의 끈을 놓지 않겠습니다.
어느새 책이 나왔습니다. 다시 출발점에 선 기분이에요. 초고속 카메라로 촬영하면 변화가 드라마틱하듯 느린 속도로 생각을 더 꿰매 보겠습니다. 다시 저만의 옷감 짜기를 시작하며 책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