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어린이, 규범 속에 힘들게 살아가는 외국인

by 물지우개

아직도 기억하는 30년도 넘은 유치원이 있다. 지금이야 워낙 일찍부터 어린이집에 가지만 나는 7살이 되어서 처음 유치원이라는 사회에 진출했다. 믿기 힘들겠지만 나는 7살 때 겪은 몇 가지 장면을 뚜렷하게 기억한다.

칫솔을 걸던 나무 궤짝이다. 남자아이는 파란색, 여자아이는 분홍색 칫솔이 가지런하게 정리된 칫솔걸이를 기억한다. 당시 집에서 쓰던 내 칫솔이 무슨 색이었는지는 기억할 수 없지만 민들레 반 교실 문 옆에 열쇠함 같던 나무궤짝 칫솔걸이는 분명히 기억한다. 궤짝 안에는 얇은 못을 줄줄이 박아 칫솔을 걸 수 있게 했고 파랑 칫솔이 위에 두 줄, 분홍 칫솔은 아래 두 줄이었다. 궤짝의 문을 열 때마다 매달린 칫솔들은 손 흔들듯 똑같이 달랑거렸다. 솔만 봐도 누가 양치질을 열심히 하는지 알 수 있었는데 내 칫솔은 다른 칫솔보다 더 벌어져 있었다. 집에서는 대충 해도 유치원에서는 칭찬받는 아이가 되고 싶어 나는 유치원 화장실 거울을 보며 열심히 문질렀다. 나는 그 촌스러운 분홍색이 좋았다. 유치원을 졸업하고 분홍 칫솔은 우리 집으로 왔는데 엄마가 버리자고 해도 나는 벌어질 대로 벌어진 분홍 칫솔을 쓰겠다고 고집했다. 궤짝 속에서 나를 향해 줄 지어 손 흔들던 그 칫솔들은 이제 뿔뿔이 흩어졌지만 변함없이 친구들의 이빨을 닦고 있을 거라 믿었다. 언젠가 그 궤짝 속에서 다시 모일 날을 기다리면서.

실제 내 생일은 8월이지만 주민등록상으로는 10월이다. 아버지도 그 이유를 말하지 않는 걸 보면 먹고살기 바빠서 제 때 출생신고를 못한 것 같다. 주민등록 초본을 봐도 5살 이전에 우리 집은 자주 이사를 다녔으니. 해를 넘기지 않아 그나마 다행일까? 태어난 날을 내가 기억하는 것도 아닌데 끝까지 모른 척하지'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내가 기억하는 장면은 민들레 반 10월 생일잔치다. 생일 주인공은 7~8명 정도였다. 선생님은 색지로 꽃 모양을 만들어 가운데 이름을 적고 벽에 무지개 모양으로 붙였다. 내 이름은 꽃 중에서도 가운데 였는데 내가 주인공인 듯 나는 흐뭇해 했다. 우리 엄마는 벽돌색 투피스를 입고 뒤에 앉아 있었다. 케이크는 평소 볼 수 없는 사이즈로 아주 컸고, 초코맛이었다. 제사상처럼 수박도 있고 음료수도 쌓였다. 나는 빨간색 한복을 입었는데 선생님은 부직포와 빨대로 만든 목걸이를 나에게 걸어 주고는 꼭 안았다. 선생님한테서 아주 좋은 냄새가 났다. 생일 이벤트의 마지막은 짝이 나와서 축하인사를 하고 뽀뽀를 하는 것이었는데 나는 내 짝이 누구인지 몰라 계속 누군지 생각했다. 내 차례가 되자 선생님은 당연한 듯 지혁이를 불렀다. 지혁이는 뚱뚱하고 못생겨서 싫었는데 실실 웃으며 나오는 모습은 지가 생일인 듯 의기양양해 보여 더 싫었다. 그래도 싫은 티는 낼 수 없어 나는 가만히 서있었다. 지혁이는 나를 보고 “생일 축하해.”라고 말하고는 내 뺨에 입을 갖다 댔다. 나는 참을 수 없어 눈을 꼭 감았다. 선생님과 아이들, 엄마들이 소리를 질렀다. 선생님은 심지어 사진도 찍었다. 지혁이 입이 내 볼에 오래 붙어 있어서 나는 결국 지혁이를 밀어냈다. 나는 침 묻은 내 왼쪽 볼을 빨간 한복 소매로 계속 닦았다. 그 뽀뽀 사진을 볼 때마다 엄마는 재밌는 듯 “야, 이거 봐봐. 이 애 생각나니?”라고 했고 그럴 때마다 나는 저 사진을 언제 없애버릴까 고민했다. 그 아이의 침은 끔찍했다.

신기하게 그 당시도 공개수업을 했다. 엄마들은 모두 예쁜 옷을 입고 예쁜 척을 해도 우리 엄마가 제일 젊고 예뻤다. 엄마는 보라색 투피스를 입었는데 동화책 속에 보라색 드레스를 입은 공주 같았다. 선생님은 친구들 모두에게 한 번씩 질문을 했다. 내 앞 순서 친구들이 대답하는 것을 보며 ‘내 차례가 되면 나는 크게 답해야지’라고 생각했다. 선생님의 질문은 “**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요?”나, “**이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요?”, “**이의 머릿속에는 무엇이 들어있나요?”였다. 친구들은 “인형이요.”나 “나는 곤충 잡을 생각을 하고 있어요.”라고 했다. “엄마요.”라고 하는 아이를 보며 나는 속으로 비웃었다. 저런 볼품없는 대답을 할 바에는 안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고 선생님은 예상대로 “현정이 머릿속에는 무엇이 들어있나요?”라고 물었다. 나는 공주 같은 우리 엄마의 잔뜩 기대한 얼굴을 보니 얼른 엄마 품에 안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를 안으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엄마 찌찌를 만지고 싶었다. 말랑말랑하고 보들보들한 엄마 찌찌 살을 내 손바닥과 손가락 끝으로 비비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했고 편안했다. 얼른 달려가서 보라 공주의 엄마 냄새를 맡으리라. “저는요.... 내 머릿속에는.... 엄마 찌찌가 있어요.” 선생님, 친구들 모두 크게 웃었고 엄마는 얼굴이 새빨개졌다. 내 생각을 크게 말했을 뿐인데 왜 웃지? 엄마가 손으로 얼굴을 가리자 나는 부끄러웠고 ‘친구들은 엄마 찌찌를 만지지 않는구나’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생일잔치가 끝나도 친구 몇몇은 “너 아직도 엄마 찌찌 만진다며?”라고 놀렸다. 나는 “아니거든!”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엄마는 두고두고 그 일을 회자했다. “그 순간 내가 얼마나 부끄러웠는 줄 아니? 근데 집에 와서 생각하니까 솔직해서 너무 귀여운 거 있지.”라며 나를 위로했다. 부끄러운 줄 알아도 나는 엄마 찌찌를 제법 오래 만졌다. 당연히 절대 말하지 않았다.

캠프파이어를 했다. 유치원 마당에서 모닥불에 불을 붙이고 우리는 동그라미를 만들어 노래도 부르고 춤을 췄다. 밤에 유치원에 있다는 사실과 불이 내 앞에서 이글거리는 장면에 나는 흥분했다. 캠프파이어가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엄청 신나는 글자라고 새겼다. 캠프의 마지막은 유치원에서 친구들과 1박이었다. 같이 놀던 오빠와 엄마는 “잘 자, 내일 만나!”라며 손을 흔들었다. 나는 죽을 것 같았다. 엄마와 떨어져 자는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엄마 찌찌와 냄새 없이는 절대 잘 수 없다. 큰일이다. 나는 악을 쓰고 울었다. “싫어, 나 집에 갈 거야. 엄마랑 집에 갈 거라고!” 엄마는 타이르다가 화를 냈다. 오빠는 “재밌겠는데, 너는 왜 그러냐?”라고 거들었고 엄마는 또 부끄러워했다. 내 악다구니를 견디지 못한 유치원 원장 선생님의 남동생(유치원 버스 기사님이었다) 아저씨는 나를 엄마한테 빼앗듯 어깨에 걸쳤다. 엄마는 그분께 꾸벅 인사를 하고 도망쳤고 나는 그 길로 민들레 반 교실에 버려졌다. 아이들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교실에 차례차례 누워있었고 맨 뒤에 등장한 나는 구석 밖에 자리가 없었다. 캄캄한 교실에서 누워있는 친구들 사이에서 울 수 없어 나는 그냥 눈을 감았다. 엄마가 없어도 아침이 온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유치원 졸업식 날 선생님은 나에게 송사를 읽게 했다. 당연하지. 나는 글을 큰 소리로 읽는 아이였으니까. 송사를 연습할 때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이 부분에서는 약간 슬픈 듯 읽는 게 좋아. 눈물이 진짜 나면 더 좋고.” 그 말을 듣고 나는 졸업식 날 가질 내 느낌을 기쁨에서 슬픔으로 정했다. 학교에 가지 않는다면 나는 참을 수 없을 것 같지만, 나는 졸업식날 기꺼이 슬프기로 다짐했다. 유치원에 더 이상 오지 못한다는 사실은 아주 조금 섭섭한 게 아니다. 나는 슬픔의 눈물을 흘려야 한다. 송사를 읽으며 나는 우는 척을 했다. 목소리를 일부러 살짝 떨었고 속도를 천천히 했다. ‘지금 사람들은 다 내가 운다고 생각하겠지?’ 내 연기에 나는 감동했다.

낡은 칫솔을 고집하고, 뽀뽀하는 친구를 밀어내고, 엄마 찌찌를 너무 사랑해서 엄마 없이는 잘 수 없고, 감정까지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하는 아이를 나는 좋아할 수 있을까. 이해할 수 있을까. 작가 ‘은유’가 <다가오는 말들> 서문에서 그랬다. “단언컨대 아이들은 미숙한 게 아니라 예민할 뿐이고, 어른들의 규범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외국인일 뿐이다.”라고. 7살 외국인이 규범 속의 어른이 된 지금, 나는 예민하고 힘든 외국인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