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1. 생명
Body (악기의 몸통)
여성의 몸이다. 가늘고 긴 목을 따라가면 몸통, 가슴과 잘록한 허리, 엉덩이가 나온다. 작은 머리에는 머리카락이 예쁘게 말려 있는데 심장에서 전신으로 퍼지는 혈관 같은 줄 4개가 여기서 출발한다. 가슴, 허리, 엉덩이에 해당하는 나무는 비어 있어 활이 문질러 깨우는 피의 파동을 증폭한다. 몸을 울리는 혈액의 질주 소리는 나무에 그대로 벤다.
Neck (지판)
왼 손가락 끝의 냉정한 열로 뜨거워지는 곳이다. 굳은살 때문에 손가락의 열이 전달할 수 없어 보이지만 목이 뜨거워지는 이유는 사실 체온 때문이 아니다. 찬 손가락의 쉴 새 없는 운동에너지로 목을 감싸는 공기와 현 자체가 데워져 뜨거워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칼날같이 뾰족하게 들을 수 있는 귀와 손 끝이 두툼해질 정도로 두드리는 수백만 번의 연습이 필요하다.
Bridge (몸통 아래쪽의 줄걸이 대)
현을 타고 흐르는 소리가 반드시 건어야 하는 다리다. 현은 브릿지를 건너야 혈관 속의 피(소리)가 생명력 있게 뛸 수 있다. 다리가 기울어지지 않고 꼿꼿하게 수직으로 서있는지 연주자는 연주 전에 확인해야 한다. 이 생동감의 다리를 건너지 않으면 혈관은 탄력을 잃어 피, 즉 소리는 죽는다. 아치형의 다리 높이는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아 팽팽한 현을 긴장감 있게 당긴다.
Part2. 인생, 삶
Bowing (활 쓰기)
광야에서 죽을 때까지 달리는 꿈을 가진 흰 말의 머리카락이 필요하다. 영하 40도의 추위에도 푸르른 자존심을 유지하는 소나무의 끈적끈적한 지조가 필요하다. 말총에 송진을 발라 줄을 문지르는 행위는 심장이 멈춘 사람에게 행하는 심폐소생술과 같다. 엄지를 제외한 오른 손가락 4개가 30도 왼쪽으로 기울어 활대를 지그시 누르는 행위는 가슴에서 정확한 위치를 누르는 압박에 해당한다. 활과 현은 정확히 직각을 유지해야 좋은 소리가 나는데 이는 현과 브릿지가 정확한 높이의 직각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와 비슷하다. 흐르는 시간에서 죽을 때까지 달리는 소리에너지에 작곡자의 의도와 연주자의 지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활과 현이 90도로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해야 한다.
Detache (각 활, 음표마다 올려 긋기나 내려 긋기로 연주)
활을 올리는지 내리는지 눈치 못 채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손목 스냅이 한발 먼저 마중 나와야 한다. 광야가 끝나지 않도록 미리 잇거나 시간이 끊기지 않도록 연결하는 것과 비슷하다. 오르는 활보다 0.1초 먼저 손목은 올라가야 하고 내리는 활보다 0.1초 먼저 내리는 스냅을 써야 한다. 이음새나 미세한 틈도 허용하지 않아야만 소리는 내달릴 수 있다.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이 매끄럽게 인생의 틈새를 메우려면 준비성이 필요한 것처럼.
Legato (한 번 활 긋기에 여러 음표 연주)
욕심이 많다. 가지고 싶은 음이 많은 활이다. 음표마다 가질 수 있는 활 길이를 미리 계산해서 배분해야 음표가 싸우지 않는다. 전사하지 않는다. 가질 수 있는 음표가 하나든 여러 개든 한 번에 긋는 활 길이는 정해져 있으므로 사실 공평하다. 직업이 하나든 여러 개든, 결혼을 했든 안 했든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이 모두 한번뿐인 것처럼.
Part3. 사랑법
Tremolo (한 음을 짧고 빠르게 각 활로 연주)
심장의 두근거림이 필요한 순간이다. 평범한 심박동이 아니라 터질듯한 심장의 달음질이다. 트레몰로는 극한 감정을 표현한다. 빠른 손목의 스냅에다 오른손가락들의 압박을 더해야 한다. 최고의 흥분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여러 연주자들의 통일된 움직임도 필요 없다. 오케스트라에서 트레몰로를 연주할 때는 연주자가 흥분해도 된다. 내 심장의 두근거리는 소리가 상대방에게도 크게 들릴 만큼.
Double stop (2개의 음을 동시에 연주)
두 소리가 평행하다 멀어지다가 가까워짐을 보여준다. 연주자의 날카로운 귀가 더 필요한 순간이다. 평행과 원근의 조절은 연습에 의한 감각적인 움직임이다. 미묘한 감각적 움직임마저 스스로 알아채지 못하면 두 소리는 바로 무너진다. 두 사람이 만들어 가는 사랑은 처음부터 완벽할 수 없다. 밀고 당기며 평행을 유지하는 연습이 충분해야 결국 닮아간다. 조화는 서로 어울린다기보다 일치에 가깝다.
Staccato (활을 두드리듯 연주)
음표가 소리를 탐색하는 행위이다. 소리가 처음부터 문을 활짝 열어 반기는 것이 아니라 음표가 들어가도 괜찮겠냐고 경쾌하게 물어보는 행동이다. 이때 너무 진지하거나 무거우면 안 된다. 노크하는 음표의 표정이 밝아야 한다. 음표가 집안에 들어가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안도감을 주기 위해서다. 소리의 문이 조금씩 열리고 음표와 소리가 손을 잡으면 그때부터는 살짝 진지해져도 좋다. 활을 좀 더 눌러 힘 있게 문질러도 좋다.
Spiccato (활 중앙을 가볍게 튕겨서 연주)
스타카토가 선을 보는 것이라면 스피카토는 소개팅이다. 주선자도 없고 결혼이 급하지 않다. 사랑을 기다리는 두 사람의 가벼운 만남일 뿐이다. 음표는 더 발랄하게 소리를 두드린다. 두드리는 소리는 작지만 속도는 빠르다. ‘우리 한번 만나요’ 보다는 ‘나랑 같이 놀아요’에 가깝다. 활의 가운데가 가장 탄력적이다. 유연함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니 오른 손가락의 압박이 아닌 스냅이 더 필요하다. 두 사람(활과 줄)의 가볍고 즐거운 데이트다.
Pizzicato (활이 아닌 손가락으로 튕겨서 연주)
평범하지 않는 복고적 사랑법. 촌스럽지만 담백한 울림이다. 몸통에 난 구멍 바로 위의 현이 아니라 지판에 가까운 현을 쓸 듯 튕겨야 울린다. 태곳적 현악기는 소리의 긴 울림만으로 긴 음표를 표현했다. ‘찰현’이라는 발달된 사랑 속에서도 튕겨주는 독특한 맛이 있어야 사랑은 나태해지지 않는다. 피치카토에서는 쉴 새 없이 달리던 말(활)도 잠시 쉴 수 있고 나른한 연주자도 잠을 깨는 미소가 번진다. 퉁명스럽지만 기름기 빠진 음표와 소리의 만남은 듣는 사람도 알록달록해진다.
Vibrato (지판에서 현을 누르는 왼 손가락을 흔들어 음을 떨게 하는 방법)
흐느낌이다. 슬픔의 잔잔한 표현이다. 기뻐도 슬프고, 행복해도 슬프고, 즐거워도 슬프다. 슬픔은 밝은 감정 저변에 깔리는 베이스다. 슬픔이 없다면 기쁨도 행복도 즐거움도 빛날 수 없다. 흐느끼는 사람만이 사랑을 안다.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흐르는 눈물을 겪어 보지 않았다면 사랑이라 말할 수 없다. 연주자는 지판을 누르는 손가락을 흔들거나 팔꿈치를 흔들어 음표에 슬픔에 더한다. 긴 음은 슬픔도 길게, 짧은 음은 짧은 흐느낌을 담는다. 심지어 스타카토, 스피카토, 피치카토 같은 가볍고 경쾌한 사랑에도 비브라토를 넣는다. 흐느끼는 슬픔은 현악기, 바이올린이 숙명적으로 걸어가야 하는 길이다.
Con sordino (약음기를 브릿지에 끼워 소리를 줄이는 방법)
숨겨야 하는 사랑이다. 드러낼 수 없는 소리이다. 숨어서 지켜보는 감정이다. 때가 아니거나 옳지 않아 몸을 낮추어야 하는 타이밍이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는 소리이다. 언젠가는 트레몰로가 될 수 있는 사랑이다. 브릿지에 끼운 검은 물체, 약음기는 넘치는 소리를 흡수한다. 활로는 조절할 수 없는 넘치는 사랑을 약음기가 쓸어 담는다. 약음기는 그 소리를 모으지 않고 공중분해한다. 독이 되는 과분한 감정을 해소할 수 있는 탈출구다. 비워야 채울 수 있듯 현재 가진 쓸데없는 소리(사랑)를 과감히 버린다. 숨어서 지켜보는 지금의 모습이 먼 훗날 큰 사랑의 기폭제가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