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이야기 따위를 또 꺼낸다

by 물지우개

친구야, 잘 지내니?개학하니 어때?

나야 늘 그렇지 뭐. 개학의 약발은 정확히 삼일이더라.


첫날은 놀라웠고, 둘째 날도 좋았고, 셋째 날은 흐트러져도 괜찮았는데 넷째 날이 되니 1학기 때 익숙하고 편안한 모습 그대로더라고. 끊임없이 옆 친구와 이야기를 하고, 물통 주둥이나 필통 귀퉁이를 빨고, 만화책을 보더라고. 내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나보다 더 큰 목소리로 자기 말을 하고, 그래 어디 한번 해보라고 발표 기회를 주면 목소리가 기어들어가 들리지도 않았어. 나를 보지 말고 친구를 향해 자기 생각을 큰 소리로 말하라고 했지만 아이는 내 얼굴에 답이 적힌 듯 나만 보며 모기소리만 하게 말을 했어. 당연히 짝마저도 듣기는커녕 더 신나게 떠들더라고.



쉬는 시간은 또 어떻고. 공부를 마치지도 않았는데, 수업 마치는 종소리는 어찌나 잘 듣는지. 나 들으라는 듯 책을 탁 덮고 총알같이 복도로 뛰어나가잖아. 복도에서 뛰면 다칠 수 있다는 내 말은 아파트 방송처럼 귀찮은 소음인가 봐. 진짜 부딪혀서 다치잖아? 세상에서 제일 억울한 사람인 듯 어찌나 크게 우는지. “선생님이 다친다고, 부딪힌다고 뛰지 말라고 그랬잖아!”라고 답답한 듯 호소하면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자기가 무지 아픈 게 중요하다고, 나를 아프게 한 그 아이를 불러다가 자기 앞에 무릎이라고 꿇게 하라는 듯 눈물을 펑펑 쏟는다고. 신기하게도 그런 애들에게 공부 시작 종은 안 들린데. 수업에 늦게 들어온 아이에게 종소리 못 들었냐고 하니 오히려 종 안쳤어요!라고 따지더라고.



장난감이라도 있으면 쉬는 시간이 평화로울까 싶어 1학기 때 블록을 두 박스 샀어. 큰 착오였지. 서로 많이 가지려고 싸우고 그러다 화가 나면 던지지 뭐야. 그 와중에 블록을 딱지인 냥 세게 쳐서 뒤집기 놀이를 하는데 치는 순간 파편이 되어 블록이 날아가더라고. 수업 시작종이 울리니 아이들은 블록과는 더 이상 상관없다는 듯 그대로 둔 채 자리에 앉는 모습에 나는 구입을 후회했다. 내가 잘못했구나. 도대체 왜 샀을까.



개학하고 다시 블록을 꺼냈지. 후회한 장면을 까먹은 건 나였어. 아이들은 변함없이 블록으로 딱지를 쳤고 날아가 부서졌어. 그 장면을 보는 순간 1학기 때 구입을 뼈저리게 후회하던 내 모습이 갑자기 떠오르더라고. 아... 내가 잊고 있었구나. 잊고 싶었구나.



아이들은 여전히 필통이 없거나, 연필이 없거나, 지우개가 많이 없었어. 연필이 없으면 내가 주워 모아 둔 연필 바구니에 가서 가져오거나 짝에게 “지우개 좀 빌려줄래?”라고 말하는 걸 까먹었더라고. 수업시간 종종 “연필 없어요.”, “지우개 없어요.”라고 말했어. 아, 이제 생각해보니 까먹는 게 아니라 쓰기가 싫어서 핑계를 댔을 수도 있겠다 싶어.



나도 처음에는 평화롭게 해결하려고 했지. 곱게 말했다니까. 만화책 넣고 교과서 꺼내라, 물이 쏟아질 수 있으니 물통은 가방에 넣자, 물통으로 책상 두드리면 수업에 방해가 되잖니, 연필을 꺼내라, 친구한테 지우개 빌려달라고 말해봐, 수다는 작은 소리로 하고 발표는 큰 소리로 해라, 블록은 치지 말고 만들어 봐,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복도에서 하지 말고 밖에 나가서 해, 10칸 공책이 없으면 아무 공책 꺼내서 써봐, 친구 몸에 닿지 않게 줄을 서야 해, 복도에서 뛰지 마, 수업 시작 종이 치면 자리에 앉아 교과서를 꺼내야지,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하는 청문회같은 잔소리를 내가 하고 있더라고.



안 보였으면 했어. 잔소리하는 아이가 내 눈에 안 보이길 바라고 있더라고. 나는 내 눈에 사랑의 마법가루가 아니라 선택적으로 아이가 안 보이는 마법가루를 뿌리고 싶더라고. 정말 간절하게 최면이 걸렸으면 했지. 그래, 눈은 참겠는데 귀가 못 참는 거야. 수업 중 툭툭 끼어들거나 지들끼리 웃는 소리, 수업 중 일어나는 소리, 복도 뛰는 소리, 물통 두드리는 소리, 블록이 부서지는 소리, 의자를 덜거덕 흔드는 소리, 지우개 없다고, 친구가 괴롭힌다고 짜증 내는 소리는 어떻게 안되더라고. 귀마개? 수업 중에 귀 막고 수업하다가 신문에 나려고?



넷째 날 나는 드디어 소리를 질렀어. 화가 났어. 바로 그 아이만 쉬는 시간 따로 불렀지. 설득-호소-협박의 3단계를 차근차근 밟았어. 협박의 단계에 이르자 나는 소리를 지르고 있더라고. 3단계를 거치면서 평정심을 잃은 거지. 하긴 진작부터 잃고 있었는지도 모르지. 설득의 단계에서는 문제행동이 주는 피해를 구구절절 설명해. 사실 먹히지 않지. 호소의 단계에서는 내가 인내의 로봇에 아니라고 고백해. 언젠가는 터진다고 말이지. 협박의 백미는 엄마야. 너와 내가 이 문제를 해결 못하면 엄마를 부를 수밖에 없다고. 나는 엄마에게 도와달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수업 중이라도 전화를 할 수밖에 없다. 내 전화를 받은 엄마는 올 수밖에 없다고 말이지.



좀 달라졌냐고? 다섯째 날인 어제까지는 다행히 약간 먹혔어. 문제 행동은 그대로인데 내가 가까이 가서 눈에 힘을 주니 움찔하더라고. 움찔해줘서 고맙더라고. 속으로는 그랬어. 사실 있잖아. 나는 너보다 더 간절히 네 엄마에게 전화하기 싫어. 정말 그러고 싶지 않아. 그런 일이 없길 바란다고. 마치 협박은 나한테 한 듯 아이가 문제행동을 멈추니 내가 어찌나 안심하는지.



그런데 말이야. 넷째 날부터 슬프더라. 여덟 살과 대치해야 하는 내가 서럽고, 여덟 살에게 화나는 내가 화나고, 여덟 살과 놀지 못하는 내가 한심하더라. 내 감정은 아직인데 여덟 살은 금방 해맑아 서운하고, 십오 년을 해도 여덟 살을 설득하지 아니 꾀는 방법을 모르는 내가 답답하더라. 앞으로 이십 년간 여덟 살을 참고 견뎌야 밥 먹고 사니 불쌍하더라. 나는 마흔 살인데.





내 마음 잘 알만한 옆 반 선생님들에게 하소연했어. 다들 나보다 나이가 많거든. 동료애에 기대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될 것 같더라고. 위로가 됐냐고? 모르겠어. 나는 그냥 “샘, 웃겨요. 식사나 맛있게 해요.”라고 가볍게 넘기거나 “나는 맨날 그러는데 새삼스럽게... 됐어요..”를 바랐을 뿐인데 나를 약간 불쌍하게 보거나 너무 진지하게 읽으니 불편하더라. 나만 드러내서 부끄러웠어. 내가 이래서 인간관계가 어려워. 나를 어디까지 까야하는지 아님 숨겨야 하는지 계산을 못해.



넌 어때? 잘 돼가? 그냥 그렇게 살고 있다고? 학교 이야기 따위 꺼내지 말라고? 그럴 줄 알았어. 주말에 학교 생각하는 거 반칙이라고? 네 말이 맞다. 내가 아직 좀 그래. 그건 그렇고 우리 언제 만날래? 보자,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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