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by 물지우개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이었을까 나는 거울을 보며 생각했다. 내 속에는 누가 들어있을까. 내 몸속에 들어있는 영혼은 뭘까. 도대체 나는 뭐길래 나는 이렇게 움직이고 말하고 거울을 보고 생각하는 것일까.

소설을 읽으며 내 눈이 두 개, 아니 두 종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질을 보는 일반적인 눈과 그 안에 들어있는 무형의 무언가를 보는 눈.

원래 우리는 투명인간처럼 세상을 둥둥 떠다니는 아메바 같은 존재인데 투명하면 도무지 서로를 사랑할 방법이 없으니 외모라는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부피와 무게가 있는 덩어리로 태어나서 오랜 시간 살다 보니 그 안을 들여다보는 눈이 점점 퇴화되었고, 그 안에 뭔가가 들어있는 사실조차 까먹고, 결국 껍데기가 삶의 전부가 된 것은 아닌지. (그래서 행복의 전제조건은 건강이다)

외모를 보는 작가의 시선이 신선했다. 못생겨도 내 눈에는 예쁘다가 아니라 끔찍이 못생겨서 좋았다는 말이 놀랍기는 했다. 그러나 ‘오늘부터 나는 너를 미워할 거야’ 같은 뒤집어진 애정표현처럼 사랑의 시작이 외모라는 작가의 기준이 식상한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화자처럼 사랑한다. 나는 남편의,


얼굴보다 영혼이 더 잘생겼다 믿고 있고, 처음 본 순간처럼 계속 반하리라. 이기적이지만,


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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