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드와 미카애
런던에서 제일 힙한 동네 해크니에서 여자 제이미와 남자 제이미의 30번째 합동 생일 파티를 한다고 했다.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동네에서 태어난 두 제이미는 대학 진학을 위해 함께 런던으로 이사하게 된 절친한 고향 친구들이었다. 해크니는 이 둘의 힙스터 친구들을 모두 불러 모아 DJ 앞에서 춤추기에 가장 적절한 장소였다. 둘 중, 여자 제이미에게 초대받은 나는 이 날 그동안 하나둘씩 모아 왔던 빈티지샵에서 산 갖가지 멋쟁이 옷들을 뽐내기로 한다. 모두 한 번에.
제이미들이 통째로 빌렸다는 저녁 9시 해크니의 작은 펍에는 이미 10명 정도의 사람들이 도착해 있었다. 안에서는 bonobo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밖에서는 5명의, 중절모와 부츠로 멋을 낸 곱슬머리의 흑인 여성과 스팽글 장식이 달린 재킷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입지 않은 백인 남성이 나란히 팔짱을 낀 채 웃으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엠마, 데미안과 내가 함께 펍에 도착한 것을 보고 바에서 다른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던 윌이 긴 다리로 겅중겅중 다가와서, 물을 마시기 위해 다리를 찢는 기린처럼, 우리의 뺨에 차례로 키스하기 위해 친절히 상체를 낮췄다.
"안녕 고져스들 오 마이갓, 준희 너 진짜 멋지다!"
윌을 시작으로 나는 이 밤 옷이 너무 멋지다는 말을, 30명도 넘는 사람들에게 듣게 된다. 영국인들의 인사치레겠지라며 처음엔 고맙다며 웃어넘겼지만 10명쯤이 같은 말을 했을 때에는 나도 3번째 진 앤 토닉의 힘을 빌어 ‘나도 알아, 너 보는 눈이 있구나’ 라며 쿨한 척을 할 수 있게 됐다.
진토닉을 너무 많이 마신 탓인지, 빈티지 로라 애슐리 치마허리가 꽉 끼는 탓인지, 화장실에 벌써 세 번쯤 갔다가 나오는데, 복도에서 성중립화장실 차례를 기다리던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의 잠깐 커졌다가 작아진 눈은 파란색이었다.
"들어갈 거니?"
내가 저절로 닫히고 있는 문이 쾅 닫히기 전에 멈추고 물었다.
"아 그러려고 했는데… 와우 너 옷 너무 멋지다. 안녕 난 테드야"
테드가 포옹을 하려고 다가왔다. 나는 '이런 일은 너무 아무렇지 않지'라는 식으로 가볍게 뺨을 갖다 대며 인사했다.
"반가워 난 준희. 난 여자 제이미 친구야. 넌 누구 친구니?"
"아… 오늘 누구 생일이구나. 어쩐지 우리 빼고 다 아는 사람 같았어. 사실은 밖에서 안이 너무 재밌어 보여서 친구들이랑 지나가다가 들어왔어."
초대받지 않은 사람은 들어올 수 없었지만 나는 솔직하게 대답한 것이 마음에 들어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아 그래? 다행히 누가 문 앞에서 쫓아내진 않았나 보네.(웃음). 들키지 않게 잘 놀다가 가. 안녕"
"고마워 저기, "
지나치는 나를 테드가 불러 세웠다.
"준희라고 했지? 나도 이거 너무 이상한 거 아는데, 실례가 아니라면 네 번호를 물어봐도 될까?
네 스타일이 너무 맘에 들어서."
나는 '이런 문장은 전혀 준비되지 않았는데'라고 생각하며 뒤돌아서 눈을 껌벅 감았다 떴다.
"그래서 줬어?
엠마와 제이미가 동그란 눈을 더 동그랗게 뜨고 어깨를 한층 부풀렸다.
"영국 사람들은 실례를 이렇게 젠틀하게 한다니까."
나는 안달이 난 그들의 귀여운 모습을 조금 더 길게 보고 싶어서 '익스큐즈미'를 과장되게 영국억양으로 말하고 진토닉을 홀짝이며 눈알을 굴렸다.
"준희!"
엠마와 여자 제이미가 동시에 소리쳤다. 나는 다급하게 둘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반대편으로 돌았다.
"쉿!!! 걔 아직 저기 있어. 진정 좀 해!"
"줬네 줬어! 너 줬어! 줬어!"
빨간 머리의 제이미가 신이 나서 까르르 웃었다. 연갈색 머리의 엠마가 데미안에게 이 사실을 말해주러 바 쪽으로 달려간다. 잠시 후 데미안의 갈색 눈동자가 나를 향해 두배로 커진다. 제이미에게 생일자인 네가 재밌다니 난 그걸로 충분하다고 너스레를 떨면서도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릴까 봐 나는 저 DJ가 비트가 더 높은 음악을 틀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새벽 1시까지 남은 10명쯤 되는 사람들이, 두 명의 제이미 중 살아남은 쪽을 따라 가까운 클럽으로 나섰다. 나는 멋지다는 말에 잔뜩 취한 채로 런던의 더 많은 이들에게 오늘 밤 ‘멋진 나’를 보여주기 위해 클럽으로 뒤따라갔다. 클럽 안이 너무 어두워서 사람들이 '멋진 나'를 잘 볼 수 있을까. 그것이 그때 내가 가진 최대치의 근심이었다.
제이미와 마틴은 맨 뒷자리에서 눈을 반쯤 감고 리듬을 타고 있었다. 머리는 한쪽으로 젖히고 무게 중심이 뒤통수에 있는 듯 머리를 뒤로 끄덕였다. 엠마, 윌, 샬롯, 데미안도 파티마 야마하의 노래가 나오자 환호성을 지르며 앞쪽으로 더 나갔다. 어두운 클럽 안은 하얀 연기와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고 이따금씩 핑크빛 사이키 조명이 땀이 흐르는 우리의 몸을 좌우로 여러 번 훑는 것 같았다. 그때 누군가 뒤에서 내 어깨를 톡톡 가볍게 치며 말을 걸었다.
(클럽음악)
"너 ……아……다."
내 귀를 가리켰다가 손사래를 치며 내가 대답했다.
"뭐라고? 안 들려!"
키가 크고, 처음 보는 사람이 전보다 크게 외친 후 자신의 귀를 가까이 가져와 준다.
"너! 너무! 멋지다고!"
(클럽 음악)
'뭐야. 오늘 미쳤나 봐'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이런 일이 언제나 일어난다는 듯이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고마워! 네! 셔츠도! 귀엽다!."
다음 말을 하려고 얼굴을 돌리려다가 자신의 얼굴이 내 얼굴에 부딪힐 뻔 한 걸 깨닫고 그는 웃었다. 키가 크고, 처음 보는, 방금 키스할 뻔한 사람의 웃음이 하얗게 음소거로 새어 나왔다.
두 손을 고깔로 만들어 내 귀에 대고서는 덧 붙인다.
"여기! 너무! 덥지! 않니?! 잠깐! 밖으로! 나갈까?!"
무거운 문을 열고 나가 벤치에서 땀을 식히는 다른 사람들과 떨어진 벤치를 찾아 자리를 잡은 그는 자신을 '미카애'라고 소개했다. 스웨덴에서 왔다고, 스웨덴 식으로 K가 들어간다고 말하면서 땀에 젖은 금발 머리를 하얗고 긴 손가락으로 정수리 뒤로 넘길 때, 그는 눈을 살짝 감았다. 에메랄드 색 눈동자가 긴 속눈썹뒤로 사라졌다 나타났다.
그는 자신이 세상 최악의 댄서이지만 오늘이 친한 친구 생일이어서 정말 큰 맘먹고 나왔고, 너무 일찍 클럽으로 온 탓에 벌써 지쳐버렸다고 했다. 지쳐서 집에 가기 전에 내 번호를 꼭 물어보고 싶었다고, 다음에 밝은 곳에서 커피 한잔할 수 있겠냐고 덧붙였다. 이게 자신이 먹을 수 있는 최대치의 큰 마음이라고 했다. 그 대답을 거절하기에는 그 눈은 너무도 에메랄드 색이었고 내가 마신 진토닉은 이미 셀 수 없는 지경이 이르렀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