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The Guernsey Literary and
북클럽에서 북클럽 책을 읽었다. 누군가는 읽기 어려웠다 했고, 누군가는 인물들을 이해할 수 없다 했고, 누군가는 표지가 이상하다고 했고, 누군가는 정말 재미있었다고 했다. 책 속 북클럽 이름이 특이하고 멋지다며 우리 북클럽의 이름을 고민해보기도 했다. 우리가 이야기한 책의 제목은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The Guernsey Literary and Potato Peel Pie Society )’이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여러 사람의 편지글로만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다. 편지는 읽는 상대를 정해놓고 쓰는 글이기 때문에 글쓴이의 생각이 여과 없이 모두 들어가지는 않는다. 받는 이에 맞춰 쓴 편지글들이 모인 이 소설은 가가 나에게, 가가 다에게, 가가 라에게, 가가 마에게, 다시 나가 가에게, 다가 가에게, 라가 가에게, 마가 가에게로 끊임없이 이어진다. 여러 사람이 주고받는 편지를 통해 다양한 관점들이 조합되며 종국에 인물들은 입체적으로 합체되는데 이 과정이 굉장히 흥미롭다. 인물 가의 시점에서의 상황과 마음을 알 수는 없지만 나, 다, 라의 서술을 통해 가가 완성되는 식이다. ‘내가 이때 뭐 때문에 이렇게 했다’가 아닌 ‘가는 그때 그런 적이 있었죠’, ‘가는 무엇 때문에 그랬어요. 정말 용감하다고 생각했어요’, ‘가는 사실 이랬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행동했어요’, ‘가는 그런 사람이랍니다’라고 여러 사람의 편지에 서술되는 것이다. 객관적이고 다면적인 접근이다. 이 점이 내가 이 소설을 ‘정말 재미있다’고 평가한 이유이며 서간체 소설의 재발견이라 엄지를 든 이유다. 반면 편지글의 서술은 우리 북클럽 사람들 대부분이 읽기 힘들다, 끝까지 읽지 못했다, 고 한 이유이기도 하다. 많은 등장인물과 그들이 보내는 편지가 순서 없이 이어져 인물별 진행 상황을 공책에 빼곡히 정리한 분도 계셨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인물은 작가인 줄리엣이다. 2차 대전 직후의 황폐한 영국에서 전쟁동안 쓴 칼럼을 엮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홍보에 열심히인 34살 여성이다. 바쁜 활동에 지쳐갈 때쯤 프랑스령에 가까운 영국 남단의 작은 건지 섬으로부터 편지를 한통 받는다. 편지를 보낸 이는 도시라는 농부로, 줄리엣이 처분한 찰스 램의 책 면지에 적힌 줄리엣의 주소를 보고 편지를 쓴 것이다. 섬에는 서점이 없어 작가의 다른 책을 구하기 위해 서점을 소개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도시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줄리엣은 도시가 활동하는 북클럽과 건지 섬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다. 책의 1부는 런던에 있는 줄리엣이 도시를 비롯한 건지 섬사람들과 쉼 없이 편지를 주고받는 내용이다. 2부에서는 건지 섬으로 찾아간 줄리엣이 편지 속 인물들과 직접 만나 독일군 치하 5년 간 건지 섬의 이야기를 거슬러 올라간다. 건지 섬과 사람들의 이야기는 엘리자베스라는 인물로 모아지고 평행우주처럼 줄리엣은 엘리자베스를 이해하고 감화하게 된다.
전쟁이라는 시절은 고립된 섬이라는 물리적 공간의 폐쇄성과 엘리자베스라는 특이하고 매력적인 인물로 동화처럼 따스하게 변한다. 여느 지역에서와 달리 섬의 독일군들은 조금은 무르고 빈틈 있고 인간적이다. 섬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쇼핑을 다니고 축제를 한다. 섬사람들을 봐주기도 하고 도와주기도 한다. 엘리자베스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자유로운 성격으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는데 스스럼이 없다. 자신이 곤궁에 빠질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을 구하고 도우려 한다. 엘리자베스를 중심으로 우연히 만들어진 북클럽 사람들은 가족보다 끈끈하고 서로를 아낀다. 상대의 허물을 나무라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인다. 우리가 꿈꾸는 공동체의 모습이다. 배곯고 억압받는 시절은 아름답고 그리운 시간이 된다. 우리 북클럽에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이 많았다. 당장 먹을 게 없는 상황에서, 부양할 자식이 있는 상황에서 책을 읽고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밀고할 수도 있는데 누군가를 지켜줄 결심도 어렵다는 것이다. 일견 동의하면서도 그렇기에 더욱더 누군가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을지, 책은 매개이자 기회일 뿐이 아니었을지 생각해 본다. 외롭고 힘들기 때문에 더 연대하고 믿고 서로를 감싸줘야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었을 테니. 심정적으로는 이해하지만 현실성은 역시 떨어진다. 그러니 문학이다.
읽는 내내 제주도와 건지 섬이 겹쳐졌다. 척박하고 곤궁한 섬이라는 환경과 전쟁으로 피폐해진 상황은 내륙보다 견디기 힘들었음이 분명하다. 도시가 돼지를 키우는 모습이 제주도 농가에서 흑돼지를 키우는 모습과 겹쳤다. 일제 강점기에 깊은 숲으로 도망쳐 들어가 살았던 도민들의 이야기도 떠올랐다. 같은 마을 사람들끼리 서로를 고발하고 죽음과 죽음이 이어지던 4.3 사건도 생각났다. 전쟁이 불러오는 현실을 끔찍하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잔혹하고 인간의 바닥이 어딘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비참하다. 제주도도 건지 섬도 지금은 아름다운 자연환경으로 관광지가 되었다. 영국의 영향력이 적게 미치는 탓에 건지 섬은 조세 피난처로 각광받고 있다고도 한다. 아픈 역사는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만 존재한다. 그래도 건지 섬은 이 책으로 인해 그 시절이 동화처럼 기록되고 기억되고 있다는 점에서 부럽다. 우리 제주도에도 시절을 제대로 그려내면서도 예쁜 이야기 하나 있었으면 바라본다. 아픈 시절에 슬픈 이야기만 있는 게 아니라 서로를 아껴주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들만의 해피엔딩도 있었다는 동화 같은 사랑 이야기. 많은 사람들이 읽고 기억해 주는 이야기. 결국 살아남는 건 이야기니까.
우리 북클럽도 섬에 있다. 우리 섬의 옛날 이름은 ‘자연도(紫燕島)’, 보랏빛 제비섬이다. 이 섬에는 무슨 이야기가 깃들어 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면적은 78.1㎢, 인구는 6만 3100명(2003)이다. 프랑스의 노르망디와 영국의 남단 사이에 있는 영국해협에 있으며 그 중 여러 개 섬의 집합체인 채널 제도에 속해 있다. 주도(主都)는 세인트피터포트이다. 영국 왕실 소유의 자치령이나 자체 입법 기관을 가지고 있으며, 영국 본토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았다. 프랑스 해안에서 불과 48㎞ 떨어진 곳에 위치하여 지리적으로 프랑스와 가까우며 주민의 생활양식도 프랑스풍이 짙다. 언어는 노르만 프랑스어와 영어를 사용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5년간 독일군에 의해 점령당하기도 하였으며, 당시 섬 전체가 영국을 점령하기 위한 교두보로 활용되는 등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다. 기후는 온화하여 연중 변화가 적고 토마토·포도 등의 재배와 젖소 사육이 활발하다. 일조시간이 길어 관광객이 많으며, 부근에 중세 때 이 제도를 지배했던 사람들의 유적 코르네트성(城)과 프랑스의 문호 빅토르 위고가 망명해서 살았던 집이 있으며, 세인트피터포트항(港)과 세인트샘슨항이 있다. (두산백과)
1883년 건지 섬을 방문한 르누아르는 5주간 섬의 풍광을 그렸다. 그의 그림 15점을 바탕으로 한 투어가 인기일만큼 아름답다.
https://artforguernsey.com/exhibitions/the-renoir-wal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