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롯한 나로 있을 여유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고

by 고라니


차별 差別

둘 이상의 대상을 각각 등급이나 수준 따위의 차이를 두어서 구별함.



차별이 있으려면 판단하는 나를 포함해 적어도 셋 이상의 대상이 존재해야 한다. 최소한의 단위인 사회에서 차별은 시작된다. 홀로 있어서는 차별이 생기지 않는다. 인간은 홀로 살아갈 수 없으므로 태생적으로 차별은 사는 동안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상태다. 단지 우리는 평등을 지향하기에 차별에 반감을 가진다.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위치한 곳에 따라 의도치 않게 차별에 가담하기도 한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이러한 우리에게 하나씩 짚어가며 묻는다. 당신 정말 모르고 있었나요,라고.



차별이 없다는 생각은 어쩌면 내가 차별하는 사람이 아니길 바란다는 간절한 희망일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히려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이 역설적으로 차별을 하고 있을 가능성은 높다.(p.26)




여성, 장애인, 다문화, 소수자. 낯설지 않다. 차별은 멀리서 일어나는 어렵고 대단한 일이 아니다. 일상적으로 살아가며 마주치는 에피소드다. 조금만 신경 써 주위를 둘러보면 발견할 수 있지만 내가 겪기 전에는 관심 갖지 않고 넘기곤 한다. 놀라운 사실은 차별을 크게 느끼지 않고 지내는 나는 상상 이상으로 보호받는 아고라에 존재하고 있으며, 차별의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위치에 있다는 가능성이다.




공공의 공간에서 거절당한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사람을 소수자로 만드는 중요한 성질 가운데 하나다. '소수'라는 건 수의 많고 적음으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여성처럼 숫자로는 많아도 어쩐지 공공의 장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p.137)




책에서도 언급된 영화 ‘서프러제트’는 영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을 벌인 여성들의 이야기다. 배경은 20세기 초, 공장에서 일하던 여성들은 남성 노동자 임금의 3분의 1도 받지 못하며 하루 14시간을 휴일도 없이 일했다. 임금은 법적 권리가 있는 남편이나 남성 가족에게 지급되었다. 여성 공장 노동자들의 평균 수명은 20대 초반이었다. 참정권 운동을 하던 여성들은 경찰에게 공공연히 폭행을 당했고,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아무도 그녀들의 말을 전하지 않았다. 서프러제트는 다소 과격하게 참정권 운동을 벌인 여성들이다. 이슈가 되기 위해,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기 위해 의원들의 집을 습격하고 건물을 부순다. 그럼에도 언론은, 여론은 그녀들을 묵살했다.


여성에 노동자라는 축을 더하니 세상의 반을 차지하는 그녀들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되었다. 글쎄, 과연 20세기 초 여성들만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모두 노동자다. 그 시작에 전태일 열사가 있었다. 전태일 열사가 서프러제트였다. 박정희 대통령에게 그가 보낸 편지를 보면 마음이 욱신하다. 평화시장 2만여 명 노동자의 90%가 평균 연령 18세의 여성들이며 40%는 15세의 어린이들이었다. 그들의 요구는 1일 10-12시간간으로 작업시간을 단축할 것과 1개월에 휴일 2일을 달라는 것이었다. 서프러제트의 요구와 거의 비슷한 조건이다.


차별을 인지하는 순간 보이고 알게 된다. 한번 눈을 뜨면 더 이상 감기는 힘들다. 나의 상황에 감사하고 감사하는 상황에 미안함까지 느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한 상태의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아닐지, 그렇기에 이 책의 담담하고 쉬운 서술이 많은 이들의 마음에 가 닿고 있는 게 아닐지 생각한다.



이 책에서 나는 이 어울림의 공포와 싸우는 한 가지 방안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소속되기 위해 '완벽한' 사람이 되려 노력하거나 그런 사람인 척 가장하는 대신, 모두가 있는 그대로 어울리는 사람으로 환영받는 세상을 상상하자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최소한 내가 배척당할까 봐 두려워 다른 누군가를 비웃고 놀리고 짓밟는 일이 없도록, 넉넉하게 모두를 품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를 꿈꾼다.(p.209)



그저 존재하는 개인과 개인을 그대로 인정하고 싶다. 환영과 연대, 배척과 공포까지가 어렵다면 시작은 서로를 향한 인정이지 않을까.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듯이 그들도 그 모습 그대로 존재함을 바라봐 줄 수 있는 여유를 가지길 바란다. 일상에서 만나는 차별 또한 편견 없이 바라보고 자연스럽게 인정하고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기 바란다. 대단한 사회운동이나 변혁이 아니다. 모두가 그렇게 여유를 가지고 나를 인정하고 각각을 바라봐줄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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