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내지 마(Never let me go)'를 읽고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책모임 두 시간 내내 여덟 명은 입을 모아 이해할 수 없다 했다. 인간이란, 영혼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도 오갔지만 어떻게 이 정도까지 인물들이 무기력할 수 있는가, 포기할 수 있는가에 대해 공분했다. 억울한 죽음을 눈 앞에 두고도 누구도 제지하지 않건만 도망치거나 힘을 모아 혁명을 일으키기는 커녕 한 마디 말도 꺼내지 못하는 인물들이 당황스러웠다. 불의에 항거하는 DNA를 가진 녹두 장군의 후손이기 때문일까. 하지만 책은 친절하지 않다. 독자가 불편한 지점에 설명을 붙이지 않는다. 정해진 설정은 설정일 뿐 작가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어갈 뿐이다. 빨려 들어가듯 흡입력 있게 읽고 풀리지 않는 찝찝한 마음에 다시 한 번 읽고, 한동안 머리 속에서 곱씹다 마지막으로 또 읽었다. 세 번 읽었지만 모두 다르다. 그리고 모두 재미있다.
어려서부터 아이들은 학교에서 함께 자란다. 부모 없이 학교에서 열여섯 살까지 다양한 교육을 받는다. 소지품은 적은 범위 내에서 허용되며 주기적으로 건강 검진을 받고 시나 글, 그림 등의 작품을 출품한다. 아주 어린 시절 장기의 기증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자신들의 삶의 이유를 잠재적으로 인지하고 있다. 자세한 설명은 암묵적으로 주어지지 않지만 아이들은 아이들이므로 아이다운 유년 시절의 삶을 산다. 본격적으로 기증자로서의 삶을 인지하는 건 열여섯 살 이후 2년의 시간을 보내는 코티지에서다. 헤일셤이라는 훌륭한 교육시설이 아닌 전국의 다른 시설에서 온 기증을 위해 태어난 복제인간들과 함께 생활하며 닥쳐올 시간을 예감한다. 코티지에서의 2년 후에는 장기 기증을 한 복제인간을 돕는 간병인 생활을 하다 기증을 시작한다. 건강이 허락한다면 4번까지 기증을 한 후 삶을 마감한다. 이것이 작가가 설정한 세계관이다. 인물들이 이 세계관을 이해하기까지는 거의 평생이 걸린다. 자신들의 상황에 대해 서로 속 시원히 이야기하지 않으며 입밖으로 꺼내 말하기를 꺼린다. 어렴풋이 짐작할 뿐 제대로 알지 못하기에 그 상황을 바꾸거나 벗어날 엄두조차 내지 않는다.
그럼에도 책은 수채화처럼 세밀하고 섬세하며 아름답다. 특히 총 3부 중 1부인 헤일셤에서의 어린 시절은 인물들의 작은 감정 하나까지 촘촘하게 그려진다. 열 둘, 열 셋의 날카롭고 날선 예민함이 얼마나 서정적으로 묘사되는지 상황 상황이 그대로 눈 앞에 그려지고 순간의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 사이 기저에 깔린 ‘들었으되 듣지 못하’는 미스터리한 요소들은 언뜻 그림자를 비추며 긴장감을 자아낸다. 상대와 분위기를 주의 깊게 관찰하고 말하기보다 들으며 상황을 관망하는 주인공 캐시는 성장 소설 같은 아기자기한 서사에 숨겨진 비밀을 밝혀내는 긴장감을 끌고 가는데 탁월한 역할을 한다. 또 다른 주인공인 토미는 캐시와 함께 사건을 파헤치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관찰보다는 직관과 통찰력이 있는 캐릭터다. 중요한 말과 상황을 잡아내 그 안에 숨어있는 것을 알아본다. 반면 루스는 행동보다는 말이 먼저다. 나서서 분위기를 이끌고 관계 속에서 우위를 점하며 다혈질이다. 셋은 친구와 연인으로 얽히는 관계를 이어간다.
기본 설정과 인물들의 성격에 비해 이야기는 동화 같다. 세상과 격리되어 자라는 아이들은 계속해서 동화 같은 소문을 만들고 듣고 믿는다. 몸은 커 어른인 척 하면서도 실낱 같은 희망이 보이면 말도 안돼는 이야기를 곧이 곧대로 믿는다. 죽음이 다다른 순간에도 믿을 수 없는 예쁜 전설이 등장하고 주인공들은 의심 없이 믿고 이를 쫓는다. 정점에 있는 것이 바로 사랑의 유예기간이다. 헤일셤이라는 학교 출신의 연인이 진정한 사랑을 증명할 수 있다면 기증을 하지 않고 둘이 살 수 있는 3년의 유예기간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기증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3년, 딱 3년을 더 살 수 있다는 이야기에 주인공들은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준비하고 노력한다. 이들은 복제인간인 자신들이 영혼이 있다는 것을 아름다운 그림으로 증명할 수 있다면 사랑 또한 증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영혼이 있어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복제인간을 영혼이 없는 존재라 여기고 징그럽고 저급하며 인간 이하로 취급한다. 헤일셤을 제외한 시설들은 모두 동물을 키우는 사육장과 같다고 묘사한다. 헤일셤에서 자란다한들 기증의 의무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 마치 동물복지농장에서 음악을 틀어주고 좋은 사료를 먹이고 방목해 소나 돼지, 닭을 키워도 도축해 먹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우리가 사육해 잡아먹는 가축들에게 영혼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면 괴롭기 때문이다. 하지만 복제인간은 인간의 외양을 갖추고 인간과 똑같이 생각하고 느낀다. 이들에게 진짜 영혼이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 자신이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복제인간이라는 다소 SF적인 요소를 차치하고 본다면 복제인간과 자본주의 세상에서 일반 소시민은 큰 차이를 찾아보기 힘들다. 출생부터 가질 수 있는 재화의 범위와 이에 따른 보이지 않는 계급의 테두리 안에서 우리는 평생을 살아간다.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가지고 싶다고 다 가질 수 없다. 마치 노력하면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환상을 계속 주입하지만 이상일 뿐 어느 정도 정해진 트랙 안에서 평생을 산다. 복제인간들이 기증이라는 삶의 순응하는 것처럼 우리네 소시민들은 투명하게 세금을 내고 이자를 내고 아이를 낳는 삶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어떻게 이렇게 무기력하게 정해진대로 살 수 있냐는 외침은 결국 우리 자신에게 향한다.
우리에게 사랑은 존재하는 걸까? 나 자신보다 주변을 통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루스가 토미와 캐시의 사랑을 느낀 것처럼 사랑은 숨길 수 없이 모두에게 보여지고 느껴진다. 눈빛에서, 말 한마디에서, 그 사람의 감정과 표정을 읽고 내가 먼저 해주지 못한 것을 말하는 것에서 본인들은 깨닫지 못해도 증명되는 것이다. 영혼은 마음이다. 주인을 위해 차에 뛰어드는 개에게 영혼이 없다고 믿지 않는다. 영혼도 사랑도, 복제인간이라서 동물이라서 있고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이지만 마음이 없다면 영혼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헤일셤이라는 좋은 환경을 만들고 아이들을 돌본 에밀리 교장과 마담은 반쪽짜리 인간이라 느껴진다. 복제인간에게도 영혼이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노력하고 후원을 받아 학교를 운영했지만 정작 본인들은 아이들을 보며 매순간 혐오감에 몸서리치고 아이들을 마주치면 경직된다. 결국 기증자가 되지만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어주었으니 얼마나 감사하냐고 묻는 이들은 가식적이다 못해 희극적이기까지 하다. 헤일셤에서 일하던 사람들보다도 복제인간 아이들에게 애정 하나 가지지 않고 훌륭한 일을 하는 자신에게 만족했던 것은 아닌지. 아이들은 자신들에 대해 제대로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삶을 마감하지만 이 두 사람은 너무하다 싶을만큼 말이 많다. 주인공들이 받는 상처가 선연해 두 사람의 말이 제발 끝나기를 바랄만큼이다. 마담이 두 주인공에게 마지막으로 던진 ‘가엾은 것들’을 두 사람에게 돌려주고 싶다. 마음도 사랑도 영혼도 없는 가엾은 것들이라고.
마지막으로 라플랜드 같은 환상의 공간인 노퍽을 생각한다. 잃어버린 모든 것들이 모이는 세상의 끝 같은 도시가 마음에 쓰여 이미지를 찾아본다. 미래가 없기에 과거의 기억을 이야기하는 주인공들은 노퍽을 자주 떠올린다. 모두를 잃은 캐시는 충동적으로 노퍽을 찾고 황량하고 텅빈 들판의 기묘한 쓰레기들을 보며 눈물을 흘리지만 이내 가야할 곳으로 돌아온다. 동화는 끝났고 희망은 없다. 네버 렛미고 베이비, 보내주어야 한다.
“너한텐 정말 잘된 일이야, 캐시. 정말 그래. 다만 내가 발견하고 싶었어.”
그런 다음 그는 조그맣게 소리 내어 웃고는 말을 이었다.
“예전에 네가 그걸 잃어버렸을 때 내가 찾아내서 갖다주면 어떨까 하고 속으로 생각해 보곤 했어. 그럴 때 네가 어떤 말을 할지, 어떤 표정을 지을지 등등을 말이야.”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부드러웠다. 그는 내가 들고 있는 플라스틱 케이스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문득 나는 전면의 계산대 뒤에서 뭔가를 쓰는 데 몰두해 있는 노인 외에는 그 상점에 우리만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의식했다. 우리가 있는 곳은 그 상점 내에서도 외부와 훨씬 격리되어 있고 훨씬 어둑한, 바닥이 조금 높은 안쪽 공간의 오른편이었다. 노인은 이쪽의 물건들은 신경쓰고 싶지 않다는 듯 커튼으로 심리적인 칸막이를 만들어 놓았다. 잠시 동안 토미는 몰입 상태에 빠져 있는 듯했다. 나는 그가 머릿속에서 잃어버린 테이프를 되찾아 내게 돌려주는 오래된 환상 중 하나를 떠올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윽고 그는 갑자기 내 손에서 그 케이스를 잡아챘다.
“이제 너를 위해 이걸 사 줄 수는 있어.” 그렇게 말하며 그는 씩 웃어 보이고는 내가 제지하기도 전에 단을 내려가 상점 앞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p.301)
어느 날 저녁 도버 회복 센터의 타일 벽으로 된 병실에 앉아 해가 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루스가 말한 것처럼 당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혹시 귀중한 뭔가를 잃어버렸다 해도, 애써 찾을 수 없었다 해도 일말의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 어른이 되어 자유롭게 전국을 여행할 수 있게 되면 노퍽에 가서 그것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여기고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p. 121)
“그러니까 지금 선생님 말씀은 우리가 받은 모든 수업, 그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니란 말씀이가요? 지금 선생님이 말씀하신 게 다란 말인가요? 그 이상 아무것도 없단 말인가요?”
“너희가 게임의 담보물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리라는 건 안다. 충분히 그렇게 느껴질 수 있어. 하지만 생각해보렴. 너희는 그래도 행복한 담보물이야. 한때 어떤 흐름이 있었지만 이제는 지나가 버렸어. 세상일이 때때로 그런 식으로 돌아간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p.4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