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

<잉글리시 페이션트>를 읽

by 고라니

2021.8.4에 작성한 글


여기, 1944년 이탈리아 피렌체 근처의 한 수도원 건물에 국적도 인종도 성별도 다른 네 사람이 모였다. 몸에 난 상흔에, 그보다 더한 상처를 마음과 머리에 새긴 이들이다. 전쟁은 끝났지만 그들에게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어쩌면 영원히. 마치 자신들처럼 과거의 아름다운 그림과 책과 정원을 가졌지만 전쟁의 포화로 완전히 파괴된 그곳에서 잠시나마 넷은 깊이 연결된다. 서로의 사연들이 시공간을 넘나들며 펼쳐진다.




책의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이 정도가 될 것이다. 허나 참 읽기 어려운 책이다. 시인인 작가의 서술은 아름답지만 해석하기 어렵고, 이어지는 대명사들은 누구를 지칭하는지 헷갈리며, 등장인물들의 회상은 시공간이 마구 뒤섞여 펼쳐지기 때문이다. 주인공들이 모이는 책의 중반까지는 집중해 읽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 중반이 지나면 굉장히 재미있어지는데 이때부터는 앞의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 애를 먹는다. 옮긴이의 말까지 읽고나면 다시 읽어야겠구나, 싶고 결론적으로 3번은 읽어야 온전히 들어오는 책이다. 읽을수록 완전히 빠져든다. 뭐 이런 책이 다 있나 싶다. 독자들이 뽑은 황금 멘부커 상의 저력이 느껴진다.


"천천히 읽어요, 아가씨. 키플링은 천천히 읽어야 돼.. 쉼표가 찍힌 곳을 주의 깊게 보면 자연스레 끊어 읽는 곳을 알 수 있게 돼요. 그는 펜과 잉크를 사용했던 작가죠. 한 페이지를 쓰다가도 여러 번 고개를 들었을 거요. 창문 밖을 내다보며 새 소리에 귀를 귀울였겠지. 혼자 있을 때 대부분의 작가들이 그러듯이. 어떤 작가들은 새들의 이름을 모르지만 키플링은 알고 있었어요. 아가씨의 눈은 너무 빠르고 북미 대륙 사람답지. 키플링이 펜을 놀렸던 속도를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이 오래된 첫 문단이 얼마나 소름 끼치고 따개비처럼 끈적끈적 달라붙겠어."(p.133)




제목이 잉글리시 페이션트다. 온몸이 불타 검게 그을린 그가 구심점이 되어 인물들이 모여든다. 현실에서는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이 사람들을 끌어모은다는 점, 실상은 반송장이나 다름없음에도 모두의 내면을 건들어 폭팔하게 한다는 점이 역설이다. 정작 본인은 자신이 누군지도 기억하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잉글리시 페이션트라 불리지만 그마저도 아니란 점도 충격이다.(헝가리의 백작이었다.) 존재 자체가 모순이고 회한이어서 그의 이야기는 펼쳐질수록 애닮프다. 아카데미를 석권했던 동명의 영화는 이 인물의 사랑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었다. 엄밀히 말하면 소설의 모티브만 가져다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만들었지만 영화를 보면 이 인물이 더 애틋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마치 소설의 스핀오프같다.




세상에 모르는게 있을까 싶을 정도로 박식한 영국인 환자는 입만 열면 백과사전처럼 술술 무언가에 관한 지식을 풀어낸다. 그의 유일한 소지품은 헤로도토스의 '역사'로, 빼곡히 책의 구석구석에 자신에 관한 메모가 가득차 있다. 삶의 마지막에 다가갈수록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힘겹게, 마치 이야기를 꺼내놓아야만 눈감을 수 있다는듯 뱉어낸다. 사막의 지도를 만들기 위해 탐험하던 지리학자였던 그는 동료의 부인과 불같은 사랑에 빠진다. 힘겹게 헤어지지만 두 사람의 관계를 눈치챈 동료가 고의로 비행기를 추락시키고 사망한다. 부인은 중상을 입고 그녀를 사막 동굴에 둔채 영국인 환자는 도움을 청하러 가지만 2년 후에야 동굴에 돌아가게 된다. 전쟁이라는 상황은 마치 당연하다는듯 불행만 몰고 온다.




소설은 특히 장소를 묘사하는데 탁월하다. 특히 사막과 네 사람이 모이는 빌라는 그 자체로 하나의 인물만큼의 비중을 차지한다. 잉글리시 페이션트, 즉 알마시(그의 본명)가 대부분의 삶을 보내는 사막은 아름답고 위험하고 알수 없지만 전쟁의 향방을 쥔 시점이기에 더욱더 그 특유의 모호함이 빛을 발한다. 사막에 매혹된 각국의 지리학자들은 그곳에서 국가도 이념도 관계없이 하나가 되지만 결국 그 때문에 헤어지고 죽게 된다. 알마시 또한 그런 전쟁의 광풍의 희생되어 본인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는 스파이로서의 삶을 살게 된다. 그는 단지 사랑을 했을 뿐임에도.


"사막은 신앙의 장소이지. 우리는 풍경 속으로 사라진 거야. 불과 모래 속으로. 우리는 오아시스 항구를 떠났어. 물이 나와 만질 수 있는 곳.... 아인, 비르, 와디, 포가라, 코타라, 샤더프. 나는 이렇게 아름다운 이름들 위에 내 이름을 더하고 싶지 않았어. 내 성을 지워버려! 국가를 지워버려! 나는 사막으로부터 그런 것들을 배웠지"(p.197)


"나는 죽을 때 이 모든 게 내 몸에 자국을 남기기를 바랍니다. 나는 그런 지도 제작법을 믿습니다. 자연이 남기는 표시, 단순히 건물에 남기는 부자 남녀의 이름처럼 지도에 우리 자신의 이름의 표지를 붙이기 위해서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공동의 역사, 공동의 책입니다. 우리는 소유당하지도 않고 우리의 맛과 경험은 단조롭지도 않습니다. 내가 갈망했던 것은 지도가 없는 땅 위를 걷는 것 뿐이었습니다."(p.372)




알마시를 돌보는 캐나다 출신의 스무살 간호사인 해나와 영국의 식민지인 인도에서 차출되어 참전한 폭탄 해체 공병인 스물 셋 킴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인물들이다. 낯선 나라에서 전쟁의 민낯에 휩쓸린 젊은이들은 분노도 기쁨도 없는 공허한 상태다. 그들이 뱉어내는 말들은 전쟁의 참상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미 마음은 없어졌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사랑한다. 그들은 선택하는 인간이기도 하다. 남기로, 떠나기로.




소설은 2차 대전의 마지막 시기인 44년을 배경으로 한다. 그들이 있는 이탈리아는 전쟁이 끝난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기에 공병들이 독일군이 철수하며 남긴 폭탄들을 킴은 해체하고 있다. 소설의 말미에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떨어지고 이 사건은 이제 전쟁과 동떨어진듯 했던 네 사람 모두에게 엄청난 충격을 준다. 조국을 떠나 유럽으로 건너온 후 이방인처럼 살아왔던 킴은 특히 모든 것에 크게 분노해 세 사람에게 폭팔하고 즉시 떠난다.


"당신네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미국인들이 우리를 개종시켰습니다. 당신들의 선교 규칙으로요. 인도 군인들은 영웅 행세를 하며 인생을 허비했어요. 푸카(정통적)가 되기 위해. 당신들은 전쟁을 크리켓 경기처럼 하죠. 어떻게 우리를 꾀어 이 전쟁으로 끌어들였던 거죠? 여기.. 당신네들이 저지른 짓 좀 봐요."(p.400)


"우리는 연설과 훈장과 당신네들의 의식에 너무나도 쉽게 매료되었죠.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걸까요? 악의 사지를 자르고 해체하고. 무엇을 위해서?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서? ... 내 나라에서는 아버지가 정의를 깨면 아버지를 죽입니다."(p.402)




자신들이 벌인 전쟁은 아니지만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모든 것에 책임을 느끼기에 괴로움은 크다. 소설을 읽을수록 어째서 어쩔 수 없이 전쟁에 휘말린 평범한 사람들이 전쟁을 더 잘 알고 겪고 괴로워하며 책임을 느끼는지에 화가 났다.


"빌어먹을 장군들이 내 일을 했어야만 하는데. 빌어먹을 장군들 모두가. 강을 건너기 전에 먼저 조건을 걸어야만 했어요. 도대체 우리가 뭐길래 이런 책임을 져야만 하는 거였죠? 대체 우리가 뭐라고 나이 든 사제처럼 현명해져야만 하고, 아무도 원치 않는 무언가로 사람들을 이끌고 가서 얼마간은 편안하게 해주는 법을 알고 있어야 하는 거죠? 나는 그들이 죽은 사람들에게 베풀어주었던 종부 성사의 말을 하나도 믿을 수 없었어요. 천박한 말들. 감히 어떻게 그럴 수가! 한 인간이 죽어가는데 감히 그렇게 말할 수가!"(p.118)




또 한 명의 등장인물은 해나 아버지의 친구인 카라바지오다. 전쟁 전 도둑으로 일했던 그는 전시 중 스파이로 활동하다 손을 잃는다. 우연히 병원에서 해나의 소식을 들은 그는 가족 같은 마음으로 빌라를 찾아온다. 그가 해나에게 건내는 말들은 비록 아무것도 하지 못했지만 어른으로서 젊은 세대에게 갖는 부채감을 대변한다. 모르핀에 의지하지 않으면 한 순간도 견딜 수 없을만큼 자신도 힘들지만 그는 젊은이들을 걱정한다. 아파한다. 결국 그는 떠나는 킴을 안아주고 종전과 함께 그 자신의 삶도 마감하고야 만다.


"우리 모두의 문제는 있어서는 안 될 곳에 있다는 거야. 아프리카에서, 이탈리아에서 무엇 하는 거지? 대체 킵은 과수원에서 폭탄을 해체하면서 무엇 하는 거지? 어째서 영국인들의 전쟁을 하고 있는 거지? 서부 전선의 농부는 나뭇가지를 자를 때마다 톱날이 망가진다는군. 왜인 줄 알아? 지난 전쟁 동안 박힌 총알 파편이 너무 많아서야. 우리가 몰고 온 질병 때문에 나무들도 굵어졌고. 군대는 너희들 머릿속에 생각을 주입해 놓고서도 여기 남겨놓고 떠나서 다른 데 가서 문제를 일으키지. 우리는 모두 여기서 함께 나가야 해.(p.175)


"넌 슬픔으로부터 너 자신을 보호해야 해. 슬픔은 거의 증오에 가까워. 이 말만 하자. 이게 내가 배운 교훈이야. 네가 누군가의 독을 받아들일 때 너는 그걸 나눔으로써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너는 그 대신 독을 네 안에 쌓아 놓는 거야."(p.68)




자신이 누군지도 망각하고(어쩌면 스스로 잊기를 택했을지도. 모든 걸 기억하고 인정하기에 삶은 견딜 수 없이 잔인하니까.) 자신의 이야기조차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알마시.


"'죽음이란 너 자신이 3인칭이 된다는 뜻'이라죠."(p.348)


그럼에도 멈출 수 없이 이야기할 수 밖에 없던 그의 말은 그의 분신과도 같은 헤로도토스의 '역사'와 같다.


"헤로도토스는 말했지.'나의 이 역사책은, 시작에서부터 주요한 역사적 주장들에 대한 보충 설명을 추구한다.' 이 책에서 볼 수 있는 점은 역사가 미치는 범위 안 막다른 곳이야. 사람들이 나라를 위해 어떻게 서로를 배신하는지, 사람들이 어떻게 사랑에 빠지는지.."(p.171)




역사가 전하지 못하는 이야기. 그것이 진정 역사고 기억해야 할 이야기임을. 마지막 부분의 다시 본래의 삶으로 돌아간 해나와 킴의 모습은 그럼에도 삶은 계속 이어짐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말이다.







"우리는 어릴 때는 거울을 보지 않아. 나이가 들고, 우리 이름과 전설, 우리의 삶이 미래에 무슨 의미가 있을지 신경을 쓰게 되면 보게 되지. 우리가 가진 이름, 첫 번째로 본 사람이라는 주장, 가장 강대한 군대, 가장 영리한 상인을 가졌다는 허영심을 느끼게 돼. 나르키소스가 자기 자신을 우상화하기 시작한 건 나이가 들어서야."(p.202)



그녀는 여기에서는 안전하다고 여겼다. 반은 어른이고 반은 아이 같은 기분이었다. 전쟁 중 당했던 일들에서 빠져 나오면서 그녀는 몇 가지 규칙을 세웠다. 다시는 남에게 명령받지도 않고, 더 큰 선을 위해서 임무를 수행하지도 않을 작정이었다. 오로지 화상 입은 환자만 돌볼 작정이었다. 그에게 책을 읽어주고 씻겨주고 모르핀을 줄 것이었다. 그와 소통하는 길은 그뿐이었다.(p.27)



우리가 일본에 폭탄이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은 다음 날. 그래서 마치 세상의 종말처럼 느껴져요. 지금부터 나는 개인의 의지는 공적인 의지와 영원히 전쟁을 벌일 것이라고 믿어요. 우리가 이 사실을 합리화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합리화할 수 있겠지요.(p.413)



후에 해나가 보게 되는 자급자족하는 성질과 엄격한 개인성은 그가 이탈리아 전선에서 공병이라는 임무를 맡고 있기 때문 만은 아니었다. 이는 다른 종족에서 온 익명의 일원으로서, 보이지 않는 세계의 부분으로서 살아온 결과에 더 가까웠다. 그는 이 모든 일들을 대하며 방어적인 성격을 구축했고 오로지 친구가 된 사람들만을 신뢰했다. (P.276)



그녀는 옆에 있는 이 남자가 마법의 힘으로 보호받는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 외부인으로 자라났으므로 동맹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상실을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다. 부당한 일을 겪고 파괴되는 사람들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그녀가 묻는다면 그는 이제껏 좋은 삶을 살아왔다 할 것이다. 형은 감옥에 있고, 동료들은 폭사하였으며, 그 자신도 이 전쟁에서 매일 위험을 무릅쓰는데도. ... 그는 직접 그녀가 그의 성격의 열세 가지 문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해주었지만 그녀는 그가 위험에 처하면 결코 몸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그는 주변에 공간을 만들고 집중할 것이다. 이것이 그의 기술이었다. (P.384)



하나의 트롱프 뢰유. 허구를 아주 현실처럼 그렸다가 마지막 순간에 돌아서 허구임을 알려주는 소설은 한편으로는 안타깝고 슬프다... 허나 이처럼 자신이 허구임을 깨우쳐주는 게 현대 소설의 본질임을 깨달았을 때 나는 독자로서 한 발짝 더 나아간 느낌이 들었다.(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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