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저희가 엄마의 노후대책은 아니겠지요?'를 읽고
책의 제목은 사람의 얼굴과 같다. 유전적인 설명에서 그저 미적인 이끌림에 관한 본능까지, 아름답거나 멋진 외모의 사람을 마주치면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바라보게 된다. 책도 마찬가지다. 눈길을 잡아끄는 섹시한 제목이 있다. 때론 내용보다 제목은 남기도 한다. 바로 이 책이 그렇다. 근 일 년 사이에 이보다 더 강렬한 제목은 보지 못한 듯하다. 누구나 속으로는 생각하지만 입밖으로는 차마 내지 못하는 그 한마디, 그걸 기어코 제목으로 끌어냈다. 굳이 이 책을 기록에 남기는 이유는 신문 기사보다 강렬한 헤드라인을 뽑아낸 위트와 곤조 때문이다.
이 책은 30-40대 육아 중인 엄마들을 타깃 독자로 한다. 세 아이를 모두 소위 SKY에 보낸 엄마라니 솔깃하지 않을 수가. 육아의 성패로 판단되는 입시에서 최고의 성과를 거두었고 심지어 아이들이 독립적으로 자립했다. 노후의 가장 두려운 자녀 리스크로부터 자유롭다는 것 자체가 현실 세계에서 상상하기 힘든 판타지 같은 상황이다. 이를 기반으로 자신을 돌보기 시작했다는 작가의 이야기가 와닿지 않는다는 것은 차치하기로 한다. 어찌 되었든 작가는 젊은 엄마들에게 자신을 세우고 지키고 아이와 함께 살아가라는, 보통의 육아서에서 보기 힘든 조언을 하기 위해 책을 썼으니 말이다.
책의 제목과 부제뿐만 아니라 소제목 또한 주옥같다. 하나씩 떼어놓고 책을 써도 될 만큼 인상적인 제목들이 등장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꼭지는 ‘내 직업은 엄마’였다. 출산과 육아휴직을 반복하다 십여 년의 직장 생활을 끝내고 가끔 마주치는 직업란이 몹시 당황스러웠다. ‘주부’라 쓰기에는 태 부족하고 성에 차지 않았다. 나의 육아는 무척 바빴고, 나의 살림은 조금의 쉴틈조차 없어 ‘직장인’ 일 때보다 알차고 고효율 초고출력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단지 ‘주부’라는 단어로 표현하는 것은 맞지 않았다. 이 문장은 그런 내 마음을 꿰뚫어 본 것만 같았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직업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맞다, 바로 ‘엄마’다. 그것도 ‘전문 엄마’. 직장인일 때 한 번도 가지지 못한 사명감과 주인의식에, 어떤 상황에 관해서건 대비하고 후속 조치까지, 전천후 모든 역할이 가능하다. 이 설명할 수 없는 직업을 ‘엄마’가 아니면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그렇다, 이 책은 답답한 상태에 이름 붙이기에 탁월하다. 아이가 했던 말이건(막내가 대화 중에 한 말), 누군가가 한 말이건(지인의 말), 어디서 들은 말이건(강의 중 들은 대화) 길어 올려 여기저기 잘 널어놓았다. 그래서 목차만 읽어도 재미있다. 구구절절하지 않아도 공감은 한 마디로도 가능하다.
큰 아이가 30대가 된 작가는 명문대에 가도 취업이라는 관문이, 퇴사라는 복병이, 아이 걱정에는 끝이 없음을 이야기한다. 아이들이 떠나고 50대가 되어서야 노후를 생각하고 자신을 돌보기 시작했음을 아쉬워하며 부디 후배 엄마들은 자신을 챙기기를 당부한다. 병원과 친해지라는 당부가 좋다. 작가의 다음 책은 더 좋은 제목과 깊은 이야기가 담기길 바라며 기록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