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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가 맛있어지다.

먹세이(먹방+에세이)

by 작은물방울

나이 들면서 맛있어지는 음식이 있다. 어렸을 때는 이걸 왜 먹지 할 정도로 맛이 없던 음식도 어른이 되면서 맛을 알아가는 경우가 있다. 대다수의 사람이 공감하는 음식의 예는 청국장이다. 청국장은 냄새가 너무 난다. 어릴 땐 처음으로 냄새를 접했을 때의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엄마에게 말은 못 하고, 이게 무슨 냄새인지 궁금해했다. 그 냄새의 주인공이 식탁에 나왔을 때의 충격이란. (아직도 청국장을 썩 좋아하진 않는다.) 신랑의 경우도 배추 맛을 몰랐는데, 싱싱한 배추를 쌈장에 찍어 먹을 때의 맛을 최근에 깨달았다고 했다.


가을이 울긋불긋 여기저기 색깔을 내고 있다. 길에 있는 나무에서도, 멀리 보이는 산에서도 가을이 묻어 나온다. 날씨도 선선하고, 하늘도 파랗고, 벼도 노랗게 익어간다. 과일도 이맘때 참 많이 나온다. 명절에 차례상이나 제사상에서 주로 봐왔던 과일이 있다. 바로 대추이다. 엄마는 여자는 대추가 보일 때마다 먹는 게 남는 거라면서 자꾸 나에게 권해주셨다. 차례상 앞에서 매번 그랬다. 하지만 난 맹맹한 대추의 식감이 진짜 맛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나에게 반전 온 해가 있으니 그게 바로 올해 2019년 가을이다.


실레마을.jpg 춘천 김유정역에 위치한 실레마을 풍경

예전 글동무들과 당일치기 여행을 갔다. 강원도 춘천 ‘김유정’ 역에 있는 ‘실레마을’이 목적지였다. 때는 초가을 이어서 살짝 물든 단풍이 보였고, 노랗고 붉은 빛깔은 내 마음도 설레게 물들였다. 사는 지역도, 하는 일도, 나이도 다르지만, 글로 7개월 넘게 이어온 인연이어서 서로가 참 끈끈했다. ‘실레마을’ 둘레길을 걸었다. 김유정 작가의 고향이어서, <동백꽃>, <봄봄> 같은 소설 이야기도 곁들여졌다. 길의 중간에는 약간의 산행도 있었다. 산속에서 만난 잣나무 열매. 유독 촉촉이 내려앉은 이슬 덕분에 많이 보였던 거미줄. 푸르름과 함께 옅은 황토색의 갈대밭까지 난 춘천의 정취에 흠뻑 젖었다.


산을 내려오며, 마을이 나왔다. 한 농가에서 무언가를 팔았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그건 다름 아닌 '대추와 밤'이었다. 글벗 중 한 분이 “대추는 보이는 대로 사야 해!” 하며 3개에 만원 하는 대추를 머뭇거림 없이 구입했다. 낮은 언덕이었지만, 그것도 산이라고 살짝 출출했다. 맹맹하다고 생각한 대추여서, 선뜻 손이 안 갔다. 하지만, 다들 너무도 맛있고 야무지게 대추 한 알씩 먹었다. 나에게도 건네진 대추 한 알. 나도 입속으로 넣어보았다. 달달하며, 아삭아삭한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얼른 한 알을 먹고, 또다시 한 알을 맛보았다.


'대추가 이런 맛이었구나!'


색다른 깨달음을 얻었다. 점심 식사 후 들린 '카멜리아'란 카페에서도 친절한 사장님께서 사과 대추 하나씩을 주셨다. 아까 본 대추보다 알이 굵고 컸다. 그것도 한 입 베어 물었다. 이번에는 부정할 수 없다. 확실하다. 대추는 맛있다.


대추.jpg 가을의 대추




나이가 들어감에 깨닫게 되는 진실들이 있고, 알아가는 감정이 있다. 그리고 깨닫게 되는 맛이 있다. 난 올해 처음으로 대추 맛을 알았다. 추수할 때쯤 나오는 대추는 초록 알이 붉은빛을 띠어 간다. 가을을 온몸에 담는 그 맛. 인생을 어느 정도 살아간 지금에서야 그 맛을 느낀다. 심심하고, 밍밍하다 생각했는데, 아삭아삭하고 달달하다. 드디어 대추 맛을 아는 나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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