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더 고단수 일까요?
신랑의 가게에 방문할 때 빈손으로 가기보다는 간식거리를 사들고 가는 편이다. 밤늦은 시간까지 일하시는 직원분들께 내가 사가는 호떡이나 빵, 귤 등은 분명 요기가 될 것이다. 이번에는 겨울철 간식의 제왕 잉어빵을 사 가기로 한다.
잉어빵 3개에 1000원
팥 잉어빵/ 슈크림 잉어빵
가격도 저렴했고, 맛도 있고, 무엇보다 슈크림 잉어빵이 존재하는 게 구매하게 했다. 전에 한번 '붕어빵' 간식을 사간적이 있었는데, 신랑이 일하는 고깃집에서는 팥보다 슈크림을 선호하신다는 피드백을 받았기 때문이다.
슈크림 3개, 팥 6개 주세요.
라는 말을 끝내고, 기다렸다. 나이가 지긋이 든 할아버지가 빵을 굽고 계셨다. 밀가루 죽을 붕어 판형에 부은 후 팥을 넉넉히 넣은 뒤 다시 반죽을 부으시는 중이었다. 조금 기다리라며, 이 판을 구우면 주신다고 했다. 분명 매대(?)에 충분한 잉어빵이 존재하는데...
새댁 어디 가는 중이었어?
라고 물으신다. 난 신랑이 고깃집에서 일한다 했다.
그러자 구구절절 나에게 충고를 하신다.
"내가 이래 봬도 예전에 돈 잘 벌었어. 야채가게 했는데, 펜 대 굴리는 사람들이 와서 다 없어졌지."
지금 상황과 맥락이 없어 보이는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셨다.
"신랑 냄비 긁지 말고, 한 번에 확 잡아야 하는 거야. 이렇게 밤늦게 신랑 데리러 오면, 신랑 숨 못 쉬어."
아... 세대차이인지, 개념 차이인지, 잔뜩 다른 느낌이 들었다. 난 단지 모임이 늦게 끝나 신랑 차를 얻어 타고 가고 싶었던 것뿐이었는데. 그러나, 나의 상황을 구구절절 변명하지 않았다. 대신 묵묵히 들을 뿐이었다.
"냄비가 뭔지 알아?"
나는 정말 몰랐기에 순진무구한 표정을 지었다. 그랬더니 할아버지는,
"이 새댁이 진짜 아무것도 모르네... " 라며 훈수를 계속 이어가셨다.
사실 난 초조했다. 혹여 빵이 탈까 걱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야기를 듣는 내내 나의 눈은 불이 돌아가는 빵틀을 계속 보고 있었다.
"원래 이 시간에(11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끝나는데, 아까 다리가 아파서 한 시간 쉬었어."
라며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가신다.
주된 내용은 신랑을 자유롭게 풀어두고, 화를 낼 때는 확실히 한 번에 겁주라는 거였다. 너 없이도 나 잘 사니, 절대 바람피우지 말라는 뉘앙스로 말이다.
완전 다른 세계에 속한 사람으로부터 듣는 조언은 전혀 와 닿지 않았다.
'나이의 차이 때문일까? 생각의 차이 때문일까?'
잔뜩 소통의 부재가 존재하는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굳건히 붕어빵 가게 앞을 지켰다. 그러자 잉어빵 하나를 나에게 주시며, "이건 서비스니 먹어." 라 하시는 거 아닌가?
다이어트 결심한 게 어제인데,
'아.. 살찌는데...'
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머뭇거렸다.
그러자 연신 따뜻할 때 먹으라 하신다.
어쩔 수 없다. 먹어야지. 참 잘 구워지긴 했네. '타지 않을까?'라고, 걱정했던 내가 무안했다. 그분은 잉어빵 굽기의 베테랑이셨다. 잘 구워진 잉어빵을 먹으면서, 난 계속 할아버지 앞에 서 있어야 했다.
그때 날 그 상황에서 구해준 건, 새로운 손님들이었다.
"슈크림빵 2개에 팥빵 1개 주세요."
"슈크림은 없어"
할아버지는 퉁명스럽게 말씀하셨다. 사실은 슈크림은 재료가 다 떨어져 내가 이미 구입 예약해 놓은 3개가 마지막이다. 나머지는 잉어빵은 모두 팥이었다.
그 상황을 알고 있는 내가 변명 아닌 추가 설명을 해야 했다.
"아.. 제가 슈크림을 미리 3개 샀어요."
연이어 또 다른 손님 그룹에서도 슈크림빵을 찾았다. 역시, 퉁명스럽게 말하는 할아버지 대신 내가 변명을 또 했다.
난 재빨리 3000원을 드리고, 그 자리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순간 내가 붕어빵 가게 앞에 있었던 "삐끼"였나 생각이 들었다. 혼자 심심하셨던 그분은 이야기 상대도 필요하셨던 것 같고기도 했고, 가게 앞에 손님이 한 명 있으면 더 잘 팔리는 집처럼 보이니까 말이다. 살짝 이용당한 느낌도 들었지만, 잉어빵 장수가 빵 하나를 서비스로 주었다는 것이 굉장한 호의처럼 느껴졌기에 의아했던 생각을 접고, 빠른 발걸음으로 신랑에게 향했다.
길을 가다가, 삶을 살다가, 정말 의도치 않게 조언의 말을 많이 듣게 된다.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나의 상황과 전혀 맞지 않는 훈화 말씀은 정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럴 때 '정말 아무것도 몰라요. 이런 조언 정말 감사하네요.' 란 모습으로 그 말을 경청한다. 상대방이 원하는 모습을 그려주는 것이다. 그러면 그분의 기분은 하나도 상하지 않고, 오히려 의기양양해진다.
한번 보고 말 사람들에게 굳이 나의 삶을 알려줄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냥 그들이 상상하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나의 모습을 그리게 내버려두는 게 그들을 위한 거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나도 참 고단수일 때가 있는 듯. 반은 모르는 척, 반은 진짜 모르는 경우가 많다. 신랑이 나에게 포커페이스가 된다고 말하는데 그게 바로 이 이유지 않을까 싶다.
나를 이야기 상대로 대하고, 삐끼(?) 잡아둔 그 할아버지가 더 고단수였을까?
그 할아버지 이야기를 얌전히 들어 잉어빵 1개를 득템 한 내가 더 고단수 일까?
그런 결정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기로 한다.
여하튼 난 따끈따끈 잘 구워진 통통한 잉어 9마리를 들고, 신랑의 가게로 향했다.
*참고로 2019년 겨울에 쓴 글을 퇴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