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추억의 음식은 무엇입니까?
저는 미숫가루를 꽤나 좋아해요. 우유에 꿀을 뿌려 미숫가루를 몇 숟가락 넣고 휘휘 저은 후 얼음을 넣으면 정말이지 꿀맛이죠. 사실 맛은 조금 덜하지만, 우유 대신 물을 넣어 만든 미숫가루도 좋아해요. 이건 제가 미숫가루를 언제부터 좋아하게 되었는지를 알게 된 사건이에요.
어느 여름날이었요. 전 지독한 무기력증에 시달렸어요. 심각한 우울증이었죠. 집 안에 며칠이나 있었는지 몰라요. 그냥 ‘멍’ 텔레비전을 보거나, 하릴없이 인터넷 서핑을 했죠. 손가락만 까닥까닥한 거죠. 리모컨이나 마우스를 작동할 때만 말이죠.
저를 집 밖으로 꺼내준 것은 바로 엄마와 추억이 담긴 음식이 떠올랐기 때문이었죠. 집 바로 앞 레스토랑이 있는데, 엄마와 함께 맛있게 피자와 파스타를 먹었었죠.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면서, 음식을 즐기는 모습이 그려졌어요. 나름 분위기도 있었던 그곳에서, 다시 그때의 기분을 느끼고 싶었죠.
옷은 그냥 집에 있는 걸 대충 입고 갔지만, 정말 큰 끌림에 의해 집 앞 고급 진 레스토랑으로 향했어요. 레스토랑에 들어가자마자 엄마와 과거에 앉았던 자리를 봤어요. ‘휴~ 다행이다’ 제가 원했던 그 자리가 비어 있었죠. 저는 바로 그 자리에 앉았어요. 그러자 종업원은-혼자라는 이유로-제가 원했던 자리에 못 앉게 했어요.
자리가 4인석이긴 했지만, 손님도 거의 없었는데…… 직원이 다른 자리로 저를 안내하자, 저는 고민에 빠졌죠. 이곳에서 식사를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말이 예요. 하지만, 그때 전 과거에 엄마와 앉아서 먹었던 자리가 아니면 소용이 없었죠. 저의 결핍된 기분을 절대로 채울 수 없을 것만 같았어요. 그래서 의자에서 일어나 그곳을 나왔죠. 직원들은 조금 황당해하는 것 같았어요.
분명한 건 전 피자와 파스타를 먹으러 간 것이 아닌 추억을 먹으러 간 것이니까. 그때였어요. 뜬금없이 미숫가루가 떠올랐어요. 내가 미숫가루를 좋아하게 된 이유가 불현듯 깨달아진 것이죠. 어렸을 때 아빠와 얼음이 동동 띄워진 미숫가루를 숟가락으로 먹는 장면이 떠올랐어요.
어렸을 때 우리 집은 참 가난했죠. 지하 공장에 딸린 작은 방에서 세 식구가 살았어요. 거기엔 부엌도 화장실도 없었죠. 그래서 옆 건물과의 골목에 천막을 쳐서 간이 부엌을 만들어 살았죠. 꽤나 더운 여름이었어요. 단칸방에서 나는 아빠와 함께 엄마가 작은 창문으로 건넨 미숫가루를 먹었어요. 그제야 깨달았죠. 제가 미숫가루를 좋아했던 이유가 미숫가루의 달달한 맛 때문이 아니라 아빠와의 추억 때문이란 걸 말이 예요.
사실 저는 아빠와의 관계가 그다지 좋지 않았어요. 아빠는 항상 화가 나 있는 것 같았고, 그런 아빠가 무서웠죠. 우울에서 벗어나고 싶어 집 앞 레스토랑을 향한 날도 아빠에 대한 감정은 비슷했죠.(아빠가 막연히 무서웠어요.) 미숫가루를 좋아한 이유를 깨닫게 되자, 내가 얼마나 아빠의 사랑을 갈구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죠. 그리고, 지금 31도가 넘는 바깥 날씨에, 시원한 미숫가루가 생각나네요. (지금은 아빠와의 관계가 좋은 편이에요.)
김치찌개, 된장찌개, 팥빙수, 피자, 파스타, 커피 등 세상에 음식은 참 많죠. 하지만 음식이 단지 맛 만으로 설명될 수 없어요. 여러분도 각자 좋아하는 음식이 있을 것이에요.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독자 분들도 각자 음식에 관한 추억을 하나쯤은 가지고 있겠죠. 또 저처럼 사실 그 음식을 좋아하는 이유가 음식의 맛뿐만 아니라 음식을 먹을 때 누구와의 추억이 떠올라서 일 수도 있을 것이죠. 음식을 먹는 행위가 때론 추억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이 예요. 당신은 어떤 추억의 음식을 가지고 있고,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