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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첨물 Jul 15. 2023

현장 지휘관과 참모부대

군 시절 나는 연대급 참모병이었다.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연중 몇 개의 큰 훈련이 있으면, 의례 전투복을 입고 사무실로 출근하였다.

내 사무실은 연대 인사과.

전투가 벌어지면 인사과를 비롯한 작전, 군수 등의 각 참모 분과는 장교들의 지휘 아래 대대, 중대급 인력을 어떻게 분산, 배치하여 방어, 공격을 하는지 시뮬레이션을 한다.

참모부대에서 공문으로 전투 부대에 지시를 내리면, 각 부대는 5분 대기로 준비하고 있는 전투병들을 현장으로 출동시키고 대기시키고 이동시킨다.

"적 특작부대 출현. 모모 대대 3개 중대는 예비군들과 출동하라."

"예비군들과 3개 중대. 특작 부대 섬멸"

...

왔다갔다 주고 받는 메시지로 실제 3개 중대는 60 트럭으로 현장을 이리저리 움직인다.

나는 출동하는 곳이 아닌 출동을 지시하는 곳에서 군 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지금은 현장 지휘관으로 전장에서 구르는 역할을 하고 있다.

프로젝트 기획과 토의를 통해 내려진 결정을 하면, 제조 기술팀과 협의하여 개발품을 만드는 최 전선 개발 엔지니어 역할을 하고 있다. 하루하루 바쁘게 협의하고, 샘플 만들고, 분석을 하면서 처음 내려진 지시를 충실히 구현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자주 참모 부대를 방문하여 작전에 참여하다 보면 "이 길이 아닌가 보다. 다른 길을 모색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아. 현장에서는 직진을 하고 있는데, 지금 다른 방향으로 선회하면 선발대로 나간 애들은 몸빵을 하고 죽으란 말인가?'




치열한 전략 시뮬레이션으로 어떻게 하면 '최종' 승리를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는 사람들과 각 지시에 따라 라 최선을 다해 목표를 완수하려고 하는 사람들. 머리와 손발과 같은 역할을 유기적으로 소통하면서 실제 제품이 개발되고 상품화가 되는 것이 루틴 한 프로세스이다.


군 시절 유격 훈련에 참여하여 밤 행군을 한 기억이 있다. 참모병이지만 소속은 중대에 속해 있기 때문에 짬이 안될 경우, 훈련에 풀로 참가한다.

어느 밤 야간 행군으로 훈련 복귀하는 중에 선두에서 걷고 있었다. 한참을 산속을 걷고 있으니 반딧불이 보였다. '아. 이게 반딧불이구나. 조그만 벌레가 빛을 내며 날아다니네'

그때 소대장의 무전기를 통해 들려오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려왔다.

"야. 너네들 지금 길을 잘 못 가고 있어. 방향을 바꿔서 길을 찾아서 가도록 해"



ㅋㅋ 웃음이 나왔다. 현장 지휘관을 잘 못 만나면 전쟁 중 다 죽겠구나.

다행히 길을 빨리 찾아서 부대로 복귀했던 기억이 있다.




왜 지금 이런 기억이 떠오를까?


몇 개월 동안 고민하며 고지를 탈환하려는 작전으로 이제 현장에서 적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모의 훈련을 계속하고 있던 나와 동료들은 참모 부대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야. 이 길이 아닌가 보다"


그러나 다른 길이 보이지 않으니 일단 계획대로 움직인다.


헉... 티를 내지 않으려 해도 조용히 소문은 순식간에 퍼질 텐데...


그러나 이 길이 맞을 수도 있으니 일단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아직 전투 초기라 잘 모르겠다.

현장과 참모부대를 왔다 갔다 하면서 방향을 수정해 가면서 가는 수밖에...

유연하면서도 민첩한 대처가 필요한 순간이다.

그러나 관성이 있어 한번 결정하면 그 과정을 돌아오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주중 바쁨을 뒤로하고 조용한 토요일이 낯설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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