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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첨물 Sep 16. 2023

본전 생각을 버리자

점진적 변화와 급진적 개혁에 대한 생각

가끔씩 짤로 보았던 신병 2 마지막 회를 제대로 보고 난 소감이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차훈 병장과 중대장의 대화이다.

차훈 병장 : "우리는 더 심하게 당했다. 편하게 해 주기로 동기들과 해서 지금의 모습이 된 것이다. "

중대장 : "너희는 선택지가 있었다. 바꿀 수 있었는데 그대로 하기로 한 것이다. "


차훈 병장의 이등병때와 병장 때의 군복이 달라진 것을 보니 대략 2014년 근처의 병영 생활을 토대로 스토리가 만들진것 같다. 90년말 군생활을 했으니 나보다 대략 15년 후의 군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군대 내에서 장교와 사병의 갈등. 하사관과 장교의 갈등의 모습은 거의 동일한 프레임으로 반복되고 있었다.


내가 처음 만난 군대의 충격은 훈련소의 목욕탕이었다.

열 맞추어 목욕탕에 도착한 신병들은 옷을 벗고 탕 앞에 2열로 줄을 섰다. 그리고 1열이 바가지를 들고 1분간 물을 뿌리고 비누를 칠하는 동안 2열이 1분간 물을 뿌린다. 그리고 1열이 다시 1분간 바가지로 씻는다. 다음은 2열이 1분간 물로 씻는다. 그리고 나왔다. 물론 비누가 제대로 닦이지 않아 대충 씻고 나온 것이다.

사회의 때를 단숨에 잊게 만드는 이 충격은 아. 군대라는 곳에 들어왔구나 하고 느끼게 해 주었다.


ENA 신병2 6화 장면


지옥 같은 훈련소 기간을 끝내고 뿔뿔이 흩어져 자대 배치를 받아 내무실로 처음 들어갔을 때 느끼는 위압감

그때는 신병 드라마에 나오던 구막사라 불리는 곳으로 전 병사들이 긴 침상을 같이 쓰던 곳이었다.

각 잡고 하염없이 앉아서 기다리던 시간들. 그때는 왜 그리 선임병들의 "집합"이 많았는지 저녁에 집합이 걸리면 한 내부실에 여러 내무실 인원이 따닥따닥 각 잡고 앉아서 갈굼을 당했다. 그 시간에 이등병이 졸기라도 하면 선임병들이 눈과 입으로 갖은 갈굼이 있었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폭행도 가끔 있었지만 대부분 전투화 물광을 내는 것으로 후임병들의 기강을 잡았다. 수요일 모두 연병장에 나가서 축구를 하다가도 열심히 뛰지 않으면 경기 도중 엎드려 뻗쳐를 하고 다시 일어나 뛰어야 했다. 야간 근무 불침번이나 초소 경계병으로 나가야 할 때 선임 불침번이 이름을 부르며 깨웠을 때 바로 관등성명을 대고 일어나지 않으면 나무로 만든 상황판 모서리에 얼굴이 찍히곤 했다. 갈굼의 방법은 병사들 사이에 많았고 다양했다. 관물대 쪽으로 얼굴을 넣고 자라고 하여 일어날 때 관물대 모서리에 찍히기도 하고, 코골이를 하는 신병에게 방독면을 씌워 재우게 하기도 하였다. 정말 그때는 그랬다. 차훈 병장의 이등병 시절과 유사하거나 더 심했던 시기였다. 그때는 그런게 군 기강으로 생각했고, 장교와 하사관들도 그렇게 넘어가주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고, 드라마의 2 중대장과 같은 장교가 나타났다.


"왜 이등병만 식사 후 주전자로 물을 떠서 나르나"

"상, 병장도 주전자를 들고 내무반에 가져가야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완전 군장"으로 연병장을 돌거나

야삽을 모아 더블백에 넣어서 가져왔다 가져가게 하거나

여러 가지 "장교의 방식"으로 사병들을 괴롭혔고, 그 스스로는

그것이 "참된 군인"으로 만드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보통 육사 출신 장교들이 그런 모습을 보였다.


...


사실 따지고 보면 20대 전후의 나이차도 별로 차이 나지 않은 남자들이 군복에 계급을 달고 서로 지시하고 복종하는 연습을 하던 2년여간의 시간들이었다.



차훈 병장의 말처럼 갈굼 당하던 동기들이 병장이 되었을 때 "집합"도 없애고 "전투화 물광"도 없애서 부대를 좀 더 살기 좋게 만드는 시기가 왔었다. 그러나 그 시기 충격적인 사건들이 있었다.


첫 번째는 신병 1에 성윤모로 나오는 이등병처럼 고문관이 부대 하나를 없앤 것이었다. 사단급 부대는 보급부대, 전투 부대와 더불어 헌병도 같은 공간에서 식사를 하였다. 그런데 보급부대 이등병 하나가 식사를 하면서 자신이 받았던 폭행들을 이야기하다가 옆자리에 있던 헌병들이 듣고 수사가 대대적으로 들어갔고, 결국 상병장들은 영창 보내고 일이등병은 다른 부대로 전출을 갔다는 것이었다. 그 영창 갔다 돌아온 병장 하나가 전역하기 전에 잠시 우리 내무실로 전출을 와서 생활하다가 전역을 했다. 그 "아저씨"로부터 들은 이야기로는 그 이등병은 일과시간에 휴게실에서 낮잠을 자거나 불량 생활을 해서 "갈굼, 욕"과 더불어 엎드려 뻗쳐 등을 지시한 것인데 이렇게 되었다고 푸념 섞어 말했고 절대 병장들은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살다 전역하라고 조언까지 하였다.


두 번째는 갈굼을 당하지 않았던 일병, 상병들이 부대 기강이 나빠진다고 이등병을 갈구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니 왜 좋게 대우를 받은 애들이 오히려 그 문화를 물려주지 않고 기가 빠졌다고 그 아래 후임병들을 갈굴까? 역사는 쉽게 좋아지지 않고 2보 전진하면 1보 후진하고 다시 2보 전진하며 조금씩 나아지는 것일까? 점진적 변화는 변화의 속도가 천천히 앞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하면서 평균이 점점 이동하는 것인가 하고 생각했었다.


세 번째는 부대 내 취사병에 대한 내용이다. 훈련이나 경계 근무도 빠지면서 다소 편해 보이지만 부대 내 식당이라는 또 다른 쇄된 공간에서 식당용 칼을 이용하여 후임병들을 갈구고 있었다는 것이다. 인사 참모병이었던 나에게 한두 번 상병이 이등병을 데리고 와서 상담을 해 왔다. 취사병으로 일하는 이등병이 타 중대 선임병들에게 식당에서 위협을 당하고 있다고... 장교도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일단 군 생활 하다 보면 이등병, 일병의 고충이 누구나 있었고 그걸 참고 넘으면 좋은 시절이 올 거라고 타일렀다. 그러나 정말 이건 아니다 싶으면 다시 와서 얘기해 달라고... 그리고 타 중대 취사병을 만나서 좀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사실 부대 내 같은 중대가 아니면 "아저씨"라고 부르며 서로 터치를 하지 않았지만 취사병은 공동으로 사용하였기에 여러 중대의 취사병들끼리는 강한 군기로 갈구며 기술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고 어느 날 새벽 그 이등병이 위급한 모습으로 다시 찾아왔다. 정말 도와달라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우선 종이를 주고 겪을 일을 쓰게 하였다. 그리고 연대 인사장교에게 전달해 주었다. 그 뒤로는 일사 불란하게 인사장교는 각 취사병이 소속되어 있는 중대장에게 연락하고 해당 상, 병장들을 영창 보냈다. 물론 영창 후에 취사병이 아닌 다른 보직으로 보냈다.

그때 부대 중대장과 행정보급관이 나에게 와서 볼맨 소리로 얘기했었다. "인사장교에게 말하기 전에 자신들에게 먼저 얘기해 주었으면 좋지 않았겠냐고..." 연대급 인사장교의 참모병이었던 나는 본부 중대에  있었기에 중대원이기도 했지만 인사장교, 인사 과장(소령)의 직접적인 지시가 가능했기에 중대장도 뭐라 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부대 내 폭행 사고라 인사 장교의 역할이 막대하였다. 과연 중대장과 행정보급관을 통해 "점진적 변화"로 그 취사병 사건은 해결될 수 있었을까? 지금도 반신반의다.




ENA 신병2 6화




신병 2를 보면서 까마득한 옛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생각했다

좋은 세상이 되는 과정은 신병 2의 행정보급관이 얘기했던 점진적 변화가 맞을까? 아니면 중대장의 급진적인 개혁이 맞을까?


지금의 내 생각은 이렇다.

아래로부터의 변화는 어렵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변화가 되었다가도 다시 뒤돌아가기도 한다. 그러나 한번 물줄기를 잡게 되면 결국 시내가 강이 되고 바다로 향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위로부터의 변화는 한 부대를 통째로 없애고 새로 만들어버리던 사단장처럼, 전광석화와 같이 취사병들을 영창 보내버린 인사 장교처럼 한 번에 과격하게 이루어져야 한걸음을 크게 내 딛을 수 있다. 빠르고 신속한 변화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윗사람이 바뀌면 언제든지 과거로 회귀한다. 대통령 한 사람만 바뀌어도 공무원 사회는 다시 정책이 바뀌고, 역사의 위대한 독립운동가도 "빨갱이"로 취급받는 이상한 장면이 연출된다.


두 가지 모두 장단점이 있어 뭐라 딱히 결론내기는 쉽지 않고 사건, 시대에 따라 최선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변화를 위해서는 개인적으로는 "본전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겪은 것은 이만큼이니 이정도면 지금은 좋은 세상이야 하고 타협해 버리면

스스로 "구시대", "퇴물"이 된다.

시대의 눈높이에 나를 맞출 수 있는 "민감함"이 있어야 한다.

나이 들면 "변화"에 저항하게 된다. 그래서 진보가 보수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주변을 보면 80세를 40세처럼 사는 사람들이 많아졌음을 쉽게 볼 수 있다.


마음먹기 나름이다.
"본전 생각을 버리자"


더 좋은 세상을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준다는 부모의 마음이라면

환경도 보호하고 사회 개혁도 응원하는 "젊은 어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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