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노벨 경제학상이 불편하다
식민지 지배를 합리화하려는가?
## 서구중심주의와 역사적 책임의 회피
아세모글루와 그의 동료들의 연구는 표면적으로는 객관적인 학술 연구로 보이지만, 그 기저에는 서구, 특히 앵글로색슨 문명의 우월성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깔려있습니다. '포용적 제도'라는 개념은 사실상 서구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이상화한 것이며, '착취적 제도'는 비서구 사회의 다양한 제도적 전통을 일괄적으로 폄하하는 개념적 도구로 작용합니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이들의 연구가 식민주의의 폭력성을 은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성공한' 영국 식민지들의 사례를 다룰 때, 원주민 대량학살과 문화 말살이라는 역사적 과오를 거의 언급하지 않거나 부차적인 문제로 다룹니다. 이는 "성공적인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희생이 불가피했다"는 식의 위험한 논리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 방법론적 한계와 현실 왜곡
연구방법론 측면에서도 심각한 문제점들이 발견됩니다. 이들이 사용한 도구변수들 - 사유재산권 보호 정도, 식민지 시기 사망률 등 - 은 너무나 제한적이며, 복잡한 역사적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합니다. 예를 들어, 한 사회의 제도적 발전은 지리적 조건, 문화적 전통, 국제관계, 지정학적 위치, 자원 분포 등 수많은 요인들이 상호작용한 결과입니다. 이를 몇 개의 계량적 지표로 환원하는 것은 현실에 대한 심각한 왜곡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이들의 연구는 제도와 경제발전 사이의 인과관계를 지나치게 단순화합니다. '좋은 제도가 경제발전을 가져온다'는 주장은, 실제로는 경제발전이 제도 개선을 가능하게 하거나, 아니면 제3의 요인이 둘 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습니다.
## 현대 국제질서의 정당화 도구
이러한 연구가 현재의 국제질서, 특히 미국 주도의 세계체제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적 도구로 활용될 위험성도 큽니다. "성공한 국가들은 좋은 제도를 선택했기 때문에 성공했다"는 논리는, 현재의 국제적 불평등이 각국의 '선택'의 결과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이는 식민지 수탈, 불공정 무역, 금융 지배 등 구조적 불평등의 역사를 은폐하고, 선진국들의 역사적 책임을 면제해주는 결과를 낳습니다.
## 대안적 발전경로의 무시
또한 이들의 연구는 서구식 발전모델 외의 대안적 발전경로의 가능성을 심각하게 과소평가합니다. 예를 들어, 동아시아의 발전국가 모델, 북유럽의 사회민주주의 모델, 이슬람 금융시스템 등 다양한 제도적 혁신의 사례들이 충분히 검토되지 않습니다. 이는 결국 "서구화=근대화=발전"이라는 일면적 시각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 현대적 도전과제에 대한 한계
마지막으로, 이들의 연구는 현대 세계가 직면한 핵심적 도전과제들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합니다. 기후위기, 디지털 불평등, 글로벌 팬데믹, 금융 세계화의 부작용 등 초국가적 문제들은 단순히 개별 국가의 제도 개선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는 보다 근본적인 세계체제의 재구성을 요구하는 문제들입니다.
## 결론: 새로운 이론적 틀의 필요성
따라서 우리는 국가간 경제 불평등의 원인을 분석함에 있어 보다 비판적이고 포괄적인 시각이 필요합니다. 이는 서구중심주의를 극복하고, 식민주의의 유산을 직시하며, 다양한 발전경로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새로운 이론적 틀을 요구합니다. 또한 현대의 글로벌 도전과제들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개별 국가의 제도적 개선을 넘어선 국제체제 전반의 구조적 변화를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의 연구는 분명 중요한 통찰을 제공하지만, 이것이 현대 세계의 복잡한 현실을 설명하는 유일한 혹은 최선의 이론적 틀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우리는 이들의 연구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보완함으로써, 더욱 포괄적이고 현실적인 발전이론을 모색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