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가볍고 쉽게 마음을 관리할 수 있도록
*트로스트 브런치 매거진에 발행된 글입니다.
얼마 전 총 4번의 스프린트에 걸쳐 멘탈케어 루틴 기능을 개발했다. 개선이 아닌, 이렇게 없던 것을 새로이 만드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과 그 과정, 기획 의도, 배운 것들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내가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트로스트는 멘탈케어 앱으로, 심리상담을 주축으로 하던 서비스에서 최근 시장을 넓히는 과정 중에 있다. 심각한 마음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일상에서의 가벼운 심리적 불편감을 해결해주고, 유저들의 일상에 파고들어 더 개인화된 진단과 추천을 통해 정말 필요할 때 딱 필요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 앞으로의 목표이자 과제이다.
멘탈케어 루틴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출발했다. 매일 하는 가벼운 행동으로 성취감과 함께 멘탈관리 효과도 받을 수 있었으면 했고, 트로스트의 다양한 솔루션을 ‘루틴’이라는 개념 하에 활용하면서 유저들의 일상에 더 파고들 만한 기능이 되는 것이 주 목적이었다.
1. 멘탈케어에 특화된 추천 루틴 세트
무기력, 스트레스, 우울, 분노 등 부정적인 상태를 극복하고 회복탄력성, 자존감, 행복 등을 키우는 다양한 추천 루틴들을 제공한다.
다양한 활동들을 묶어 만들어진 이 루틴들은 전문 심리상담사의 기획과 자문을 받아 만들어졌다. 멘탈케어를 위한 활동들은 대부분 간단하지만 그것이 멘탈케어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낯설어서 안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더욱 추천 루틴에 집중하여 '멘탈케어'로서 차별화되도록 했다.
2. 매일 할 수 있을만큼 가벼운 활동 구성과 시간
루틴은 여러 개의 활동의 조합으로 이루어지는데, 각각의 활동은 1~3분 내외로 루틴 한 세트에 10분을 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또 되도록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장소나 시간 제약이 없는 활동으로 구성하려 했다.
3. 해빗 스태킹(Habit stacking) - 루틴 플레이어
멘탈 케어를 돕는 간단한 활동들을 묶어 연속적인 프로그램처럼 이용할 수 있다.
루틴 플레이어를 통해 활동에 더욱 몰입하도록 했다.
4. 몰입을 돕는 사운드 도구
루틴을 진행하면서 어울리는 사운드를 바로 들을 수 있다.
트로스트에 있는 사운드테라피를 활용한 것으로, 명상이나 힐링사운드 콘텐츠를 들을 수 있는 기능이다. 다양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멘탈케어 플랫폼으로서의 장점을 활용해 보았다. 또한 BGM을 틀기 위해 유투브나 음악 어플로 이탈하는 것을 막는 효과도 고려하여 기획했다.
실제로 UT를 진행했을 때 이 기능에 대한 반응이 가장 좋았다.
5. 성취감을 주어 도파민 자극
습관화에는 적절한 보상이 중요하다고 한다. 크고작은 이펙트, 진행도와 체크 표시로 성취감과 자아효능감을 주어 루틴이 기분좋은 경험이 될 수 있도록 했다.
6. 습관화를 돕는 리마인더
루틴 추가 시에는 일상적인 순간을 선택해 좀더 습관화될 수 있도록 했다. 이것 역시 해빗 스태킹의 일환으로, 일상 곳곳에서 루틴이 연상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리마인드 알림을 설정할 수 있어 루틴을 잊지 않고 실천할 수 있다.
7. 유대감과 정서적 지지를 주는 소셜 요소
꾸준히 루틴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요소로 소셜 요소를 추가했다. 루틴을 완료하면 아직 이 루틴을 하지 않은 사람에게 응원을 할 수 있고, 응원을 받은 사람은 보다 기분좋게 루틴을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루틴을 마치면 또 다른 사람에게 응원을 보낼 수 있다. 이렇게 응원을 주고받은 것과 루틴 완료 여부는 같은 루틴을 하는 사용자들이 모여 있는 루틴 라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응원이라는 기능을 생각한 것은 루틴의 테마가 공부나 자기계발이 아닌 멘탈케어이기 때문이었다. 사용자들끼리의 정서적 지지 역시 멘탈케어 루틴을 긍정적으로 유지해 나갈 힘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우선 기능 면에서는 habit stacking 방식을 차용했다.
습관 목록을 구성하는 각각의 요소를 하나의 습관으로 생각하면 각기 알림을 설정해야 하고 결과를 확인하느라 금세 피곤해질 것이다. 그러나 습관 목록 전체를 하나의 습관으로 묶어 인식하면 기억하기도 쉬워질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실행하기도 편리하다. <책 ‘해빗 스태킹' 발췌>
트로스트에서 심리상담을 받으면 상담 후에도 노력해볼 수 있는 작은 미션들을 내주시는 상담사분들이 계신다. 미션 내용을 보면 그리 거창하거나 어려운 것들이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 관리를 위해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고 낯설어한다. 이렇게 낯설지만 간단한 활동들을 묶어 프로그램처럼 제공하면 오히려 더 쉽고 몰입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또한 습관화될 수 있도록 리마인드 기능, 트로스트의 사운드테라피를 활용해 루틴 중 BGM 재생 기능, 루틴을 완료했을 때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진행도 기능, 유대감과 정서적 지지를 느낄 수 있는 소셜 기능 등이 함께 들어가게끔 했다.
멘탈케어 루틴 기능을 기획하면서 루틴 앱(마이루틴, 루티너리), 집중 앱(forest, 열품타), 리추얼 서비스(밑미) 등 ‘멘탈케어’ 그리고 ‘습관’을 이어줄 수 있는 여러 서비스들을 참고했는데, 그 중에서도 트로스트의 멘탈케어 루틴의 차별화 포인트는 아래와 같다.
멘탈케어 전문가들이 만드는, 멘탈케어에 특화된 루틴 세트 (커스텀 불가능)
성공과 실패가 없이, 매일의 과정에서 충분히 힐링을 느낄 수 있음
일상적인 마음의 불편감 해결(불안감, 분노, 우울감)
트로스트의 다양한 솔루션 활용, 다른 앱으로 빠져나가지 않고도 진행 가능
소셜 요소를 통해 루틴을 하는 유저들끼리 꾸준한 동기부여 및 가변적 보상을 받음
사실 커스터마이징이 불가능하고 멘탈케어에 특화된 루틴 세트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루틴 앱보다는 리추얼이나 프로그램에 가깝다고도 볼 수 있다. 단, 리더 없이 무료로 혼자 해볼 수 있다는 것이 다르다. 때문에 이후에 해결해야 할 것은 리더 없이도 습관화에 성공할 수 있도록 돕고 다양한 수단으로 동기부여하는 것이었다.
두 번의 스프린트에 걸쳐 진행된 MVP 제작 단계에서는 차별화 포인트를 살릴 만한 최소 기능 위주로 진행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선택과 집중 면에서 아쉬운 점이 많지만..)
1차 MVP 업데이트 이후 바로 개선 스프린트를 진행해야 했기에 직접 사용해본 경험과 내부 사용 후기를 바탕으로 개선을 진행했다. 루틴 플레이어 위주의 개선이 이루어졌다.
1차 개선사항 개발 기간 동안 사용자 조사를 하고, 추천 루틴 콘텐츠를 추가적으로 업데이트했다.
사용자 조사 내용과 정량 데이터를 기반으로 2차 개선을 진행했다. (아직 개발 중이다.)
두 번의 스프린트를 거쳐 MVP를 만들고, 이후 개선하는 프로세스였는데 첫 스프린트에 너무 욕심을 부렸다. MVP(Minimum Viable Product)는 ‘최소 존속 제품’이라는 뜻으로, 아이디어를 검증 가능한 최소한의 핵심 기능만을 탑재한 제품을 의미한다. 멘탈케어 루틴 기능은 새로운 앱을 출시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완전히 새로운 기능을 내가 주도적으로 만드는 것은 거의 처음이었기 때문에 어디까지가 최소한일지를 판단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지금 되돌아보면 맨 처음부터 완벽한 기능을 만들려는 강박이 있었던 것 같다. 디자인도 멋져야 하고, 사용성도 좋아야 하고, 컨셉도 잘 살려야 하고, 차별화 포인트도 잘 살려야 하고.. 하지만 MVP에서 중요한 것은 기능의 완성도는 아니다. 사소한 사용성이나 디자인의 디테일은 유저를 반드시 붙잡아 놓지는 못하지만, 다른 앱에는 없는 우리만의 핵심 아이디어, 차별화 포인트는 유저를 붙잡아 둘 수 있다. 그 핵심 아이디어가 정말 좋다면 유저는 조금 불편하더라도 개선될 거라 믿으며 사용하게 된다. 그러므로 다른 무엇보다도 MVP의 핵심 아이디어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했는데, 당시에는 기간 내에 어떻게든 그럴 듯한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에 선택과 집중을 잘 하지 못했다. 작은 기능 하나를 넣을때마다 이게 정말 필요한 기능일까? 이게 없으면 유저가 이탈할까? 이게 없으면 멘탈케어 루틴의 가치를 느끼지 못할까?를 질문했어야 했다.
또한 멘탈케어 루틴이라는 아이템이 유저에게 낯설 수 있음을 간과했다. 프로토타입으로 내부 UT라도 진행해볼걸 그랬다는 후회가 남는다. 조금 더 편하게 만드는 것보다 우리가 제공하고자 하는 가치가 고객에게 제대로 가 닿는 것이 더 중요한데 말이다.
루틴 기능의 목표 지표가 너무 포괄적으로 설정되어 mvp 검증에 도움되지 않았다. 스프린트를 시작할 때, 목표 지표를 세우곤 한다. 멘탈케어 루틴의 경우 2번의 스프린트, 이후의 이터레이션까지 예정되어 있었어서 장기적인 목표 지표를 정의하고는 끝냈는데, 그렇다 보니 너무 포괄적인 지표가 되었다. (앱 전체의 리텐션과 방문 빈도 등을 목표 지표로 잡았었다.) 이 지표들은 루틴 말고도 다른 여러 요소들에 영향을 많이 받는 지표들이었고, 결국 이 지표로는 루틴의 성공 여부를 검증할 수 없었다.
또한 멘탈케어 루틴을 구성하는 작은 기능들은 가설을 세우지 않고 막연하게 ‘이렇게 하면 좋겠지’ 하고 기획했다. 이 때문에 기획 과정에서 더 선택과 집중을 하지 못한 것 같다. 하면 좋을 것 같은 기능들을 이것도 저것도 집어넣다 보니 볼륨은 커지고 진짜 MVP라고 하기엔 덩치가 커져 버린 것이다. 집요하게 검증하고자 하는 목표를 따라가려면 가설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목표 지표를 관통하는 큰 가설을 세우고, 구성 요소들을 기획할 때도 작은 가설들을 세워 보며 목표와 align되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렇게 했을 때 스프린트가 진짜 실험으로 작동할 수 있으며, 배우는 것이 있을 것이다.
멘탈케어 루틴의 리텐션을 높이기 위해 소셜 요소를 추가했었다. 같은 루틴을 하는 유저들끼리 서로 루틴 실행 유무를 확인할 수 있는 루틴 라운지와, 서로 응원을 보낼 수 있는 응원 기능. 특히 응원 기능을 설계할 때는 유저들간의 응원 - 루틴 실행이 연속적으로 이어지길 바라며 루틴 완료 후 랜덤한 유저에게 응원을 보낼 수 있게 했다. 그렇다 보니 응원받는 대상을 어떤 알고리즘으로 추천해줄 것인가가 중요해졌다. 의도한 대로 응원이 릴레이처럼 이어지게 하기 위해 굉장히 많은 논의와 고민을 했고, 대단히 복잡한 로직이 완성되었다. 그 결과 로직을 확인한 백엔드 개발자님과 QA 엔지니어님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빠진 부분이나 논리적 오류 없이 하려고 신경쓴 것인데, 오히려 그렇게 자잘한 로직이 n개가 추가될수록 QA 공수는 더하기가 아닌 곱하기로 n배가 된다는 것을 간과했다. 더불어 백엔드 개발도 까다로워지고 앱 성능에도 부하가 걸리게 된다. 나중에 뭔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복잡한 로직의 어느 부분에서 문제가 생긴 것인지 알기도 힘들다.
사실 응원 기능은 유저들끼리 더 효과적으로 핑퐁이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 나름의 알고리즘이 필요했었다. 즉 소셜+추천 기능이었기 때문에 더욱 로직이 복잡해지게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런 기능은 공수가 결코 적지 않음을 기억하고,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배움을 얻었다. (아마도 로직이 심플하게 된다면 운영 공수가 더 들게 될 것 같다.)
MVP는 최소 존속 제품이니만큼, 제품(혹은 기능)의 출발점에 가깝다. 어떤 방향으로 고도화될지를 기획자의 머릿속에만 넣어 두고 공유하지 않는다면 각자가 각기 다른 방향을 떠올리고 그에 맞추어 제품을 만들게 된다. 루틴 기능에서도 프로덕트 디자이너인 내가 떠올렸던 방향성과 PO님이 생각하신 방향성은 달랐다. 그래서 MVP를 디자인할 때 내가 생각한 방향성을 고려하고 디자인했는데, 추후에 논의하고 나니 방향성이 달라져 버려 오히려 목적과 딱 맞지 않는 디자인이 되어 버렸다.
개발 파트에 공유하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백엔드 개발자에게 공유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루틴 기능의 경우 어떤 형태가 될지는 몰랐지만 소셜 요소를 처음부터 고려하고 기획했는데, 초반에는 진행 여부와 형태가 확실하지 않아 개발 파트에 따로 공유하지 않고 MVP를 만들었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고도화 스프린트에서 소셜 요소를 넣으려고 하니 기능 구조 설계가 그에 딱 맞게 되어있지 않아 몇 가지 한계점이 있었다.
아예 새로운 기능을 해보는 게 처음이라 욕심도 과했고, 그만큼 어려웠던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또 그만큼 뼈아프게 배운 것도 많았다. 이 배움을 토대로 다음에 새로운 기능을 만들게 된다면 그땐 더 잘해낼 수 있겠다는 기대와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근 3개월간의 멘탈케어 루틴 기능 제작기를 마무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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