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로 베팅하기로 했다 -Part 1-

by 물웅덩이







두우우우 둠 둠 두우우우 둠 둠

빰빠밤 빰빰빰빰바밤 빰빠밤

빰빰빰빰바바 바바바밤 ~~~



영화 시작 전 어김없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던 20세기 F**사의 로고필름.


어린 날,


나를 뿅 가게 만들었던 이 빌어먹을 황금빛 로고만 보지 않았더라면 내 인생은 영화계가 아닌 폼 좋은 안정적 생활 권역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판사, 검사, 변호사, 의사 어쩌면 글로벌 회계펌의 에이스 회계사 같은.


스스로 놓쳐 버린 길들. 가기만 하면 됐을 길들.


그 길을 못 가 본 것은 그들 업계나 나 개인에게 참으로 아쉬운 일일 것이다.


그랬다면 지금처럼 이렇게 많은 변화 속에서 갈등하고 있지 않았을 텐데.


핑계를 대는 순간 루저라고 했던가.


내가 딱 그렇다.


하지만 그 정도 꼰대 조언에 흔들리고 싶지 않다.


루저에게 남은 것은 승리뿐 아니던가.


물론 아직은 연패의 위기에 내몰려 있지만. 쳇.


나는 해외영화를 국내에 배급하는 직장인이다.


원래 회사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까불다가 내 이름의 회사를 만들어 버렸다.








처음엔 잘 나갔다.


초심자의 행운이라 했던가?


업계의 초기 불황에도 불구하고 내 몫을 하며 배급이라는 의미에 맞게 극장과 관객들이 원하는 영화들을 잘 납품했다.


결과도 있었고 더 많은 기회를 만날 수도 있었다.


영화배급이라는 게 말 그대로 배송을 하는 일이다.


물건이 영화일 뿐 다른 유통과정과 크게 다를 게 없다.


소비자 입장에서 본다면 화장품을 사는 올리브영 같은 곳에 화장품을 수입해 와서 납품하는 것이며,


오프라인 마트에 수입해 온 해외 맥주를 납품하는 정도의 역할이라 볼 수 있다.


주로 해외에서 영화를 수급해 오기 때문에 영화수입의 과정이 존재하며 이를 위해 영화배급사가 아닌 영화수입사라는 더 전문적인 회사들이 존재한다.


영화수입사들은 자신들이 해외에서 억에서 수십 억 단위의 비싼 돈을 주고 수급해 온 작품이 국내 극장가에서 흥행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국내 극장들과 더 밀접한 협업 관계, 이해관계에 있는 배급사들에게 영화의 유통과정을 일임한다.


영화라는 것이 10편 중 2-3편도 성공하기 어려운 승률이기 때문에 배급사 입장에서는 평균 이상의 승률(결국 극장에서 수익을 낸 영화가 있는 배급사인가)이 있다면 수입사들이 꾸준하게 일을 의뢰하는 편이다.


극장 호황기 때에는,


말 그대로 개봉만 해도 돈이 되던 시기, 영화수입사들의 수도 폭발적으로 증가해 오히려 배급사들의 수가 부족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배급사는 평균적으로 업무의 대가로 10%의 유통수수료를 가져가게 된다.


가령 젠데이아 정도의 파급력 있는 할리우드 배우의 ‘더드라마’라는 로코가 국내에서 100만 관객을 동원했다고 치자.


대략 90억 플러스 정도의 매출에서 극장이 절반 가져가고,


약 45억 정도를 배급사에 주는데,


배급사에서 4.5억 정도를 먼저 떼고 수입사에 돌려주는 식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헛 영화 하나 배송에 4.5억을 매출 또는 수익으로 가져간다고?


짭짤해 보이는가?


그렇지 않다. 크흡.


2024년 기준으로 100만 명을 돌파한 외화가 몇 편일까?


단 12편이다.


거기에 배급사 수를 나눠보면 이런 기회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 기회라 보면 된다.


그저 예시일 뿐.


여기에 세금, 회사 운영비를 빼면 저 대박을 쳐도 이 현실로 살아가야 하는데


요즘은 10만 영화, 아니 4-5만 외화도 업계에서는 대단한 실적이라고 말할 정도다.


배급사들의 수수료도 10%보다 더 낮은 경우도 부지기수.

그러니 수수료 더 싼 배급사를 찾는 것은 수입사들의 생리.


업계 내 다양한 이해관계의 제 살 깎기 경쟁은 한계로 치닫고 있다.


누가 그랬던가.


경쟁 말고 독점하라!


경쟁은 하수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삐딱하게라도 이 말을 받아치고 싶은데.


혹은 쿨한 척 이 말속의 하수가 나지만 괜찮다!라고 하고 싶은데.


거기까진 마음의 여유가 안 되는 것 같다.


웃픈 척 글을 쓰지만 실은 슬프다에 가깝다.







길었던 호황기는 떠나고 코로나라는 강력한 불황의 시작 이후 깊은 어둠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엔간한 업종들이 모두 포스트 코로나 시대와 함께 그 가치를 원복 했고 코스피 4,000 시대의 로켓발송에 동참하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꿋꿋하게 나의 업은 바닥을 다지고 있는 중이다.


종토방의 곡소리가 이 업계에서는 현실이다.

(삼전, 하이닉스 방에서 울려 퍼지는 챈트. 따라 부르고 싶어라)


근데 뭐 사실 이런 면으로 어려운 업종이 사실 한 둘일까?


몰라서 그렇지 해외에서 무언가를 들여오는 유통 쪽 산업은 대부분은 과다경쟁과 유통구조의 급변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다른 업종 분들의 괴로운 업계현실도 궁금하다. '쟤 보단 내가 낫지'가 모이면 서로 위안삼을 수 있지 않을까)


다른 업종대비 아무래도 실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된 문화였던 영화산업,


정확히 말해서는 극장산업과 그 낙수효과에 비즈니스 모델이 있는 많은 이들이 맞은 이 위기는 유독 도드라져 보이기도 한다.


‘요즘 넷플 뭐봄?’


익숙한 이 키워드 뒤에 따르는,


‘제일 최근 영화관 간 적은?’


이 질문은 생각의 카운트가 필요한 것이 되어 버렸다.


예전에는 주말에 극장 1트인 지, 2트인 지가 기본값이었더라,


그리고 그 예전은 불과 몇 년 전이었더라,

의미 없는 과거의 이야기들.


넷플릭스 이야기가 나와서 이 친구들(모르면 친구다) 얘기 좀 하자면,


사실 넷플이 한국에 진출해서 한국에서 직원 채용을 못하고 싱가포르 혹은 일본을 거쳐서 한 두 명씩 겨우겨우(일단 모르면 표현부터 지른다) 뽑을 때부터 무척 관심이 많았다.


그 시기 극장업계 아니 영화산업 전체에서도 가장 돈을 잘 벌던 회사의 녹을 먹던 입장에서 굳이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플레이어가 넷플릭스였다.


“넷플릭스 국내에서 통할까?”


“넷플릭스 결국 찻잔 속의 태풍일 것.”


업계에서는 이런 분위기가 대체적인 반응이었다.


돌이켜보면 올드한 오판이겠지만 그 당시는 그 당시의 공기가 있었을 테니 이런 시각에 문제가 있었다고 말하고 싶진 않다.


(는 무슨 신규업자들에 관심을 주지 않는 것부터가 기성 플레이어의 근엄함인 ‘척’ 했던 몇몇 꼰형님들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당시 해외업무를 많이 한 나는 미국출장을 다녀와서 싸한 느낌을 받고 출장보고서 말미에 이렇게 썼다.


영화업계의 레거시 플레이어로서 넷플릭스의 시장 진입을 어떻게 배타적으로 대할 것을 고민하는 것과 같은 크기로 글로벌에서 가장 먼저 그들과 손을 잡는 협업의 파이확대 전략을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때 부장님이 넷플릭스 협업 이런 워딩 빼라고 했다.


난 그냥 넣자고 개겼지만, 위에서 싫어할 거라고 해서 뺐다. 우이씨.


지나고 나면 나만은 그 순간을 똑바로 봤었다는 핑계만 대는 게 경력직 어른이다.


결론은 그때 그 부장이나 지금의 나나 똑같다.


난 경력직 어른이다. 하,, 솔직하게 쓸수록 하수가 되는 이 기분.


아무튼 나의 관심은 이상하게도 넷플릭스코리아의 국내 오피스 위치였는데 바로 미래에셋이 소유한 을지로의 센터원 빌딩이었다.


그 센터원은 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빌딩이기도 했다.


그 당시 나는 미래에셋증권의 HTS 고객이었기 때문이다.


놀라웠다.


내가 잠재적으로 가치가 튈 것이라 직감한 글로벌 기업의 한국 지사,


당시 몇 명 되지 않던 한국 지사가 규모를 떠나 그 국내 브랜치를 센터원에 넣었다니.


미래에셋이 나의 손절주들에도 따박따박 떼어 갔던 수수료가 원복 되는 느낌이었다.


엄청난 자의식의 동기부여와 함께 하루는 퇴근하고 센터원으로 갔다.


정확하게는 기억이 안 나지만 대략 2016년이었다.


웃긴 게 날짜는 정확하게 기억난다.


21일이었다.


그날이 월급날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는 연봉을 1/13으로 계산해서 줬는데 13번째 개념의 월급을 설날과 추석에 나누어 절반씩 주었다.


아직도 명확하게 잘 알지 못하는 시스템이지만 아무튼 그 달은 명절상여금을 주었던 달이었던 것 같다.


실제 퇴사도 그 시기에 제일 많이 일어났고 난 퇴사는 아니었지만 남의 회사에 대한 딴마음을 먹기에 좋은 시기라고 생각했던 게 기억난다. 헤헤.


결론은 2016년 9월 21일에 방문했던 것 같다. (아, 엄청 기억 잘나네)


기억이 정확하게 안 난다고 했는데 잠시 솔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솔직하자. 10년 전 이야기를 꾸며서 뭘 하겠는가.







다시 센터원.


1층 로비는 컸지만 분위기가 엄청 딱딱하지는 않았다.


입점 오피스들의 리스트를 보니 일본 쪽 상사 등의 회사들이 좀 보였고,


그리고 서관 27층!


넷플릭스라는 이름이 보였다.


크헙 진짜 한국에 있구나! 넷군아!


지금은 하수지만 그때는 용감했다.


머리를 한 번 쓸어 올리고 무작정 27층으로 올라갔다.


나는 과감하게 그 당시 다니던 회사의 사원증을 목에 걸고 27층 버튼을 눌렀고


투둠!


엘베가 멈추자,


그들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입장하자마자 제일 큰 회의실을 한 번에 찾아낸 나의 발걸음과 손짓에 모두의 이목이 나를 향했다.


문이 활짝 열려 있는 회의실 공간, 중앙 테이블 근처로 자유롭게 기대어 있거나 앉아있는 글로벌 느낌의 인재들,


그리고 한 남자!




맙소사.




넷플릭스의 공동창업가이자 CEO 리드 헤이스팅스였다!!


하필 내가 급습한 그날, 한국 직원들을 격려하기 위해 한국 오피스를 방문했던 것이다.


그들은 내가 누구인지 알기보다 내 사원증을 보고 자신들을 (당시) 가장 적대시하는 기업 중 하나인 하수인이 자신들을 찾아왔노라 생각하는 눈빛이었다.


이윽고.


리드 헤이스팅스가 나에게 눈빛으로 말을 걸어왔다.






1화 끝.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