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로 베팅하기로 했다 -Part 2-

by 물웅덩이








WHAT THE F**** is this guy doing here?


당시 영어를 상당히 잘할 때라 눈빛만으로도 리스닝이 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두 손을 뒷주머니에 넣었고 그들의 경계된 눈빛은 격상되었다.


뒤늦게 생각해 보니 그 행동은 위험한 것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우리는 캘리포니아가 아닌 서울, 한국지사에 있는 것이었고


나는 잽싸게 바지 뒷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리드에게 전했다.


정확하게 왼손이었나 오른손이었나 기억이 나진 않지만


분명 한 손이 한 손을 떠 받치는, 전통적인 동양의 예를 갖춰 두 손으로 건넸던 것 같다.


그 명함이 그의 손에 닿았고 드디어 그가 나의 이름을 외쳤다.

영어명함을 고른 것은 좋은 전략이었다.


오우, 윤조?


그가 나의 이름을 말하는 순간 모두의 긴장감은 잠시 해갈되었고 짧은 찰나 나는 우리 회사가 한국어뿐만 아니라 영어, 중국어로 명함을 만들어주는 서비스를 해주는 것에 대한 감사함이 들었다.


비록 지금은 다른 외국계 기업에 무작정 찾아 들어와서 그들과 연결되려고 츄라이를 하는 나 자신이었지만 이를 아랑곳하지는 않은 채.


잠시 상념에 빠졌었다.








명함 이야기 조금 더 하자면 그 당시 회사에서 명함은 무한대로 뽑아도 월급에서 제하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회사의 로고가 박힌 명함을 더 널리 뿌리라는 직원알바적 하이브리드 고용형태를 염두한 것 같기도 하다.


(다른 회사들은 명함 신청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다.)


아직 넷플릭스 썰이 끝나지 않았다.


그렇게 나를 보더니 WHAT MAKES YOU COME HERE?


이 질문이 꽤나 대문자 캐피탈 느낌으로 꽂혀 들었다.


보통 나는 네이티브들이 1-2음절로 문장을 말하면 소문자로 들렸고


3-4음절로 분리해서 말하면 대문자로 들렸다.


각설하고 정신 차리자, 이것은 면접이다.


이 한 구절 말 잘하면 이 스페셜 관심조직에 초기 멤버가 되어 추후 충분한 주식으로 보상받는 포지션으로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역사적인 미래에셋증권 건물에서 이런 일을 맞이하다니.


흘러내리던 당시 보유종목들의 슬픈 발라드가 내 귓가를 맴돌았다.


허나 지금 분명 나는 최소 생의 주-조연급은 되는 것만 같았다.


그와의 아이컨택에 포커싱을 끝낸 나는 대답했다.


“내가 지금 소속된 회사는 대한민국 영화업계에서 방귀 좀 뀌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회사가 우리 아빠 회사도 아니고 내가 언제까지 회사생활 할 것도 아니고 (참고로 이때 회사에서 나 주니어였음) 무엇보다 방귀는 오래 뀌면 그 냄새에 무뎌진다.”


“I mean, I 츄라이 to 변화를 모색하는 삶을 살고 싶다.”


“지금 모두가, 우리 회사의 리더들마저 쩌리라고 보는 글로벌 OTT 플레이어들의 성장가치, 그 무서움을 난 보고 있다.”


“그래서 난!”


“오늘 이 사원증을!”


“여기서 벗어던지고 싶어 이곳에 왔다!!”


“Mr. Hastings, I mean, like to infinity and beyond with you guys!”라고 절규했다.


어린 시절, 손으로 몸으로 머리로 무언가를 배우는 친구들 사이에서 말 많던 나는 입으로 배우는 웅변학원을 꽤 오래 다녔었는데,


그때의 스킬이 동원되었다. 몸이 그날들을 기억했다.


지나간 과거에 이유가 없는 것은 없더라.


이 격언이 생각났고 웅변학원을 마치면 내가 좋아하던 유부초밥을 사 먹을 수 있도록 삼천 원씩 (빌려)' 줬던 엄마 생각도 났다.


'엄마, 전 오늘도 열심히 살고 있어요…'


아무튼 다행이었다!


크게 연습하지는 않았지만 생각해 왔던 말들을 잘 뱉었다.


왼손, 오른손, 살짝 구부정한 허리춤, 모든 바디 스피킹도 좋았다.


사실 그 당시 난 승진을 했었는데 우리 회사는 OPIC을 필수로 보게 했다.


4개년 고과에서 S나 A의 고과를 절반 정도 채우는 것이 승진에 필수였지만


OPIC에서 상위 점수가 아니면 다 탈락이었다.


고과를 못 받아서 승진이 누락된 이들은 팀에 양보하다 보니 일어난 일이라고 미담을 풀었지만


OPIC 미달로 승진이 누락된 이들은 긴 휴가를 떠나기도 했다.


아무튼 회사에서 OPIC 시험 전형료와 수업료를 무료로 지원을 해주었는데 영어학원 공짜로 다니고 시험도 치게 해 준다고 생각하니 성적이 잘 나왔던 것 같다.


결국 OPIC을 대비했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고 그 찰나 또 우리 회사의 좋은 점이 생각나서 기뻤다.


어쩌면 ‘오묘했다.’라고 하는 게 내가 더 사람답게 보일 것 같다.


오묘했다.








다시 센터원. 그러자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와 함께 하고 싶은 거군요.” 헤이스팅스 씨의 말이었다.


그리고 그가 뒷주머니에 손을 한 번 닦고는 악수를 청했다.

믿을 수 없었다.


블록버스터사라는 엄청난 할리우드의 비디오렌탈 사업자를 무너뜨리고,


하우스 오브 카드라는 희대의 시리즈를 통째로 완성해서 공개해 버리고,


오래전 빨간 봉투에 담긴 DVD가 미국 전역에 어떻게 배송되는지


그 로지스틱스 시스템마저 연구한 글로벌 실리콘 디 할리우드 밸리의


ONE & ONLY THE MR. HASTINGS가 나에게 손을 내밀다니.


나는 그 손을 냅다 잡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당시 10명 안팎의 넷플릭스서비시스코리아 유한회사의 일원이 되는 것이었고


훗날 지금의 <오징어 게임>을 있게 한 숨겨진 멤버,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발굴한 팀의 (끄트머리라도) 일원으로서 알려지며 전 세계를 누비는 인재행 특급 전용기 탑승이 단 1피트 앞으로 다가온 것이었다.


하지만.


하지만 난 그 손을 잡을 수 없었다.


갑자기 생각난 우리 회사의 좋은 복지 때문에?


아니다.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CEO의 등장에 너무 떨려 판단이 안되어서?


아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께 부탁 하나만 들어줘. 말하고 싶다.


다시 제1화 아래 문장으로 돌아가 달라.


나는 무작정 27층으로 올라갔다.


나는 무작정 27층으로 올라갔다.


고 쓰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엘리베이터 튼을 누를 수 있는 카드는커녕 스피드 게이트도 통과할 수 없었다.


외부인처럼 보이지 않으려 상관도 없는 지금 회사 사원증을 남의 회사 로비에서 패용하는 기지를 발휘했지만


태깅 실패는 예상하지 못했다.


좀 널널하면 엘리베이터도 타보고 그러고 싶었건만. 순수했다.


잠시 눈을 감고 만약 27층에 갔는데 심지어 리드 헤이스팅스가 와 있었다면 난 무얼 했을까라고 명상을 했다.


신이 났다.


아무튼.


…..








이내 명상을 마무리하고 센터원 빌딩의 1층 로비를 더 구경했다.


마침 거기에 짐이 있었는데 체형 교정 프로그램을 아주 세밀하게 갖추고 있었다.


나는 테스트 세션 등록을 하고 다시 방문하기로 했는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당시에 있던 등통증과 허리통증 개선에 큰 도움이 되었다.


물론 일반 PT보다는 비쌌는데 센터원에서 운동하는 느낌이 나쁘지 않을 것도 같고 한동안 넷플릭스를 염탐하기에도 괜찮지 싶어 다니게 되었다.


짐 이름이 가물가물한데 주위의 나처럼 등이나 허리가 안 좋은 사람에게 그 프로그램을 많이 추천했고 두어 명 더 데려가서 매니저님이 나를 꽤 좋게 보았던 기억이 난다.


매니저님들과 다 같이 을지로 만선에 가서 호프 한잔 했던 게 아직도 기억난다.


노가리가 한 마리에 천 원이어서 엄청 먹었는데도 가격이 괜찮았다.


그렇게 실패로 끝난 나의 첫 넷플릭스 염탐방기는 내가 그 짐을 다니면서 (홀로) 이어졌고


혹시 허리춤에 걸려 있는 사원증 중에 넷플릭스 사원증이 보이는지 살피며 다니기도 했다.


신기했던 게 국내 기업들은 사원증 패용 방식이 다 목걸이 형태인데 해외기업들은 허리춤에 달고 끈이 쭈욱 늘어나는 형태였다.


해외 기업이 많은 빌딩을 가면 다들 허리춤에 사원증을 달고 있었는데 그게 나름 있어 보였다.


회사에 걸려 다니는 게 아니라 달고 다니는 느낌?


무슨 이유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시답잖은 것에도 생각이 잠시 멈추던 시기였다.


그 시기 가끔 넷플릭스 채용은 가끔 온라인에 뜨기는 했지만 국내 브랜치에 관한 공고는 찾기 어려웠다.


잠깐. 내가 지금 쓰는 글의 주제가 넷플릭스가 아니기 때문에 더 이상 분량 조절 실패는 용납이 안될 것 같다.


다시 각설하고.


사람들은 영화는 보지만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것이라는 전제는 갖고 있지 않다.


어두운 곳에서 다 같이 떼샷으로 영화를 보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세대들도 있고


핸드폰을 두 시간 동안 안 만진다는 챌린지는 누구에게도 쉬운 것이 아닐 것이다.


그 사이 극장산업은 그 대비를 확실하게 하지 못한 것만 같고 극장산업의 위기는 그 낙수효과에 연관된 많은 회사의 위기와 직결되었다.


넘쳐나던 영화수입사들은 하나 둘 업계를 떠났고 그나마 남아있는 영화수입사들도 계속되는 극장에서의 관객동원 실패로 어려운 순간을 보내고 있다.


영화배급사 입장에서 영화수입사들의 어려움은 남의 일이 아니었고 설령 작품을 꾸준하게 극장에 배급한다고 해도 성공확률이 너무도 낮은 것도 사실이다.


영화가 흥행에 실패했을 때 오는 상실감은 물론 기업 입장의 손실과 관련된 것도 있지만


우리처럼 우리의 이름으로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는 모토를 가진 입장에서는


거기에 준비한 모든 시간마저 잃는 듯한 고통이 찾아왔다.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선택지는 단 하나.


돈을 못 벌어도 좋으니 시간이 아깝지 않은.


진짜 하고 싶은 영화를 찾자.


그러기 위해서는 영화수입사들이 찾아주는 영화만 기다릴 수는 없었다.


우리는 영화배급사에서 영화수입사가 되기로 결정했다.


모두가 떠나는 판에서 더 리스크가 있는 방향으로 땅을 파다니.


멍청하게도 보일 수 있지만 경쟁자가 많이 사라진 시장에서 우리에게 영화를 직접 수급할 수 있는 기회가 남아있었다.


영화 좀 본다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아는 토론토국제영화제.


거기서도 (최우수상 격인) 관객상을 받은 작품을 찾았다.


봉준호 감독님의 <기생충>을 북미에 배급해 대박이 난 회사 NEON이 제작했다니.


<척의 일생>(THE LIFE OF CHUCK). 무려 스티븐 킹 원작이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소설가의 원작을 영화로 만들었는데 그게 우리 손에...?


미국의 세일즈 담당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너희의 오퍼는 정식 접수되었고 미스터 킹 쪽에서 검토 중이다. 기둘."


엥? 스티븐 킹이 우리 오퍼와 마케팅 자료를 검토한다고?


물론 그의 수많은 직원들이 검토를 하는 것이겠지만 일단은 스티븐 킹과 교감 중이라고 정신승리하기로 했다.


이윽고.


이 메일이 왔다.


"NOW, YOU'RE THE DISTRIBUTOR OF THE LIFE OF CHUCK FOR THE S.KOREAN MARKET."


예쓰, 이 영화가 우리에게 들어왔다.


그리고 날아든 청구서.


달러로 된 청구서였다.


마케팅비까지 생각하면 결과적으로 적어도 5-6억이 회사 통장에서 나가야 하는 결정의 순간이었다.


마침 회사의 자금과 대출을 동원하면 딱 그 정도.


이래도 저래도 사라지고 말 돈.


하기로 했다.


우리는 달러로 베팅하기로 했다.







2화 끝.








tempImagezqZCh3.heic


금요일 연재
이전 01화달러로 베팅하기로 했다 -Part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