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일도 하지 않았으면 손익분기점도 없었을 텐데

by 물웅덩이








미국 세일즈사에서 최종 연락이 왔다.


“Hey, ‘스티븐 킹’쪽에서 너희 제안과 계획을 승인했어.”


“이제 <척의 일생>은 South Korea에선 너희 영화야.”


여기서 킬포는 승인이 아니라 ‘스티븐 킹’쪽이라는 말이다.


이 정도 답변이면 어디 가서(어딜?) ‘스티븐 킹’이랑 일한다는 쿨내 나는 표현이 가능할 것 같다.


그것은 마치 내가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화려한 무대 위에서 일하는 사람인 것처럼 꾸며댈 수 있다는 뜻이다.


후후후….


예를 들어 누군가 내게, 어떻게 THE 스티븐 킹이랑 일을 하게 된 거냐 묻는다.(안 묻는다.)


“별 거 없어. 미스터 킹은 좀 깐깐하긴 한데, 결정은 시원시원했어. 우리 쪽이랑도 뭐 큰 틀에서의 협상은 금방 끝났거든. 선수는 선수를 알아본 달까?”


“물론 그 양반이 직접 이렇게 협상에 나설 줄은 전혀 몰랐지 뭐야.”(는 무슨, 그래봐야 누가 검토를 했는지도 모르고 실제 스티븐 킹이 개별 국가 세일즈에 관여를 하는지도 알 길이 없다.)


망상 속,


문득 전전 직장이었던 엔터테인먼트 회사 주니어 때 선배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로비에서 연예인 보면 싸인 부탁하지 마.”


“결국 각자 일 하는 동급의 사람들일 뿐이고, 그런 요청은 프로답지 못해 보이니까.”


멋진 말이었지만 싸인은 받고 싶은 적이 많았다.


슈스케 TOP11에 든 이들만 지나가도 발이 자동으로 촐싹댔다.


그리고 로비를 거니는 화려한 그들과 동급이 아닌 기분은 어쩔 수가 없었다.


선배도 그것을 느꼈지만 우리에게 자존심을 세우는 방법을 알려준 것은 아닐까?


바깥에서 보는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셀럽들의 틈 바구니 속에서 살 것 같고 그런 환경들이 나를 더 특별한 일을 하는 사람으로 보이게 할 거라 예상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생각에서 빠르게 벗어날 필요가 있었다.


무대 아래의 일들은 자주 어둡고 때론 나 자신을 잃게 만들고,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길을 헤매게 할 때가 많았다.


겉치레로 쫓아만 가면 주니어에서 선배라는 이름의 시니어가 되는 순간, 갈 곳이 없다.


어느 곳보다 짧은 생명력의 커리어가 기다리는 곳이 이 업계의 시간 아닐까?


경쟁도 심하지만 누군가와의 비교도 심하다.


“김성공님 프로젝트 통과된 거 들었어? 예산 다 따냈더라.”


“나실패님 작품 봤어? 개봉(방송)하자마자 역대 숫자 최악 찍었더라.”


잘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결과 자체를 얻지 못하는 것도,

많은 이들의 불안과 고통을 동력 삼아 움직이는 곳이 이 업계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화려함은 무슨, 하나의 개인이 수많은 대중의 마음을 얻기 위해 할 수 있는 직장인으로서의 성장과 한계 그 자체가 이 업계의 진짜 테마였다.


잠시 이런 진지한 내용을 쓰고 있는 내 모습. 책상 위 거울에 비친다.(별로다)









다시 돌아와서, <척의 일생> 영화 구매는 완료했다.


여행 갈 때 환율이 오르내리는 것에 민감한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여행 경비에서는 환율이 주는 영향은 크지 않다.


몇 십 원, 왔다갔다해봐야 삼겹살 회식도 안되는 값일지도.


영화 구매는 다르다, 미친 환율이 경차 한 대 값을 더 받아가는 기분이다.


아, 주가에서 밀린 인생, 환율에서도 재미를 못 보는 구나.


아무튼 영화 <척의 일생>과 경차 구매는 완료했다.


이제 제일 먼저 작업 들어가는 것이 손익분기점(BEP, Break-Even Point) 설정.


수입가격 + 홍보비(P&A)를 설정하고 미국 세일즈사에 컨펌을 먼저 받는 과정이 있다.


그리고 그 설정된 금액이 우리에게는 극장 BEP가 되는 것이다.


이번 영화는 약 6억의 비용이 들어간다. (우리는 다 깝니다~)


매우 큰 돈이지만 강남 아파트 방 한 칸 정도의 금액일까?


그렇게 생각하니까 ‘별 거 아니네’ 정신승리 했다가 잠시 지나 ‘아, 방을 살 수 있었구나’ 생각에 현타가 밀려온다.


엄마! 난 잘 지내고 있어! ‘돈을 아끼는 것도 좋지만 써야 하는 곳에 써야 해.’라는 말도 잘 지키고 있구!


쉽게 말하면 6억까지는 우리가 선리쿱을(돈을 먼저 회수) 할 권한이 있고 그 금액이 넘어서면 미국 세일즈사, 결국은 미국 제작사에 수익을 나눠주어야 한다.


스티븐 킹이 인세로 버는 무지막지한 돈과 별개로 해외 영화 판매와 그 흥행에 따른 수익 부분에서 우리는 한 배를 탔다고 할까?


“미스터 킹쪽은 좀 깐깐하긴 한데, 결정은 시원시원했어. 우리 쪽이랑도 뭐 큰 틀에서의 협상은 금방 끝났거든. 선수는 선수를 알아본 달까?”


이 문장 한 번 더 쓰고 싶었다.


실제 수익이 발생하면 미국에는 보통 50:50 비중으로 수익을 나눠주는 게 관례인데 영화 정산이 워낙 복잡하고 최종 비용의 변수가 많아서 실제로는 50%까지는 미국 제작사에 가는 것 같지는 않다.


그렇게 생각해 봤더니 국내 관람객 11만 정도를 해야 최소 들어간 비용, 즉 BEP를 맞출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와, 아낀다고 했는데 숨만 쉬어도 들어가는 비용만 3-4억.


영화 하나 개봉하는 게 정말 효율적인 비즈니스인지 스스로 또 묻게 된다.


최근 <척의 일생>과 유사한 작품들의 관객수를 보았을 때 흥행이 잘 된 작품이라고 해야 10만 명 언저리.


그 언저리면 업계에서 ‘저 회사 수입작 엄청 잘 됐네.’라는 평가를 얻을 정도이다.


하지만 요즘은 아트하우스 성향의 작품성 있는 영화가 10만 명 넘기가 왠만한 상업영화 몇 백만 하기 보다 어렵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영화의 마케팅이 훨씬 더 큰 규모로 보이도록 피 땀 눈물로 몇 달을 살게 될 것이고 물론 영화의 힘이 관객에게 통한다면 그 보상은 관객 수로 이어질 것이다.


삶에서 모두가 기본 진리로 탑재하는 생각이 있다.


이 생각이야 말로 남녀노소, 사회적 지위, 재산의 규모를 떠나 동일하다고 믿는다.


바로,


“본전은 하자.”


우리는 늘 본전을 생각한다.


주식도. 부동산도. 도박도.


무릎에서 사서 어깨에서 팔고 싶은 우리는


언제나 목덜미에서 사서 발목에서 팔지 않는가.


안 하자니 뒤쳐지고 해보니 본전만요, 본전만요. 외치게 되는 것이 인생.


우리도 같다.


쓰지도 않으면 남아 있었을 수 억원의 돈을 굳이 이렇게 써 버리면 회사의 유효시간은 짧아질 것이고, 일을 하면서 간절히 아 본전만, 본전만을 외치는 게 되어 버린다.


왜 그럴까? 그런데 왜 할까?


진지한 고민들.


조금 오버하면 인생이란 무엇일까에 이르게 되는 과잉고민들.


최근에 가장 비싼 재화가 무엇일까 생각하면 내게 그것은 시간이다.


누구에게나 유한한 시간.


나에게도 내 동료에게도 내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나의 친애하는 원수들도 같은 조건.


서로 더 행복하자고, 더 갖자고 경쟁하며 아무도 관심 없는 으스댐과 시기, 질투에 인생을 쓰지만 결국 시간을 어떻게 쓰는 가에 삶의 모습이 바뀌는 것을 절감한다.


이는 나이가 들어 감이며, 세월이 내게 깨우치라 뺨 때리며 다그치는 것이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2023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비롯해 무려 7관왕.


그 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이들에게 언급된 그 영화.


국내에서도 5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전설 같은 영화.


삶이 하나의 존재로 이뤄져 있지 않고 수많은 우주 속 다양한 내가 지금의 나를 응원한다는 가치의 이 영화는 나와 내 동료들의 인생관을 많이 바꾸었다.


흥행도 잘 되고 평가도 좋았고 많은 것들을 주었지만 이 영화는 우리의 1년을 그대로 가져갔다.


사실 상 내 생의 1년을 쓴 이 영화.


1년만큼의 금전적 가치를 주었냐 하면, 놉.


이 영화에 1년을 써야 할 줄 알았다면 참여했겠냐 해도, 놉.


그럼에도 지금 내 인생을 돌아보면 내가 이 업계에서 한 모든 일들 중 가장 소중한 경험이었고 이 영화가 가진 삶의 가치를 진심으로 미국에 있는 제작진을 대신해 국내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다는 직업정신이 가득했던 순간이었다.


직장인으로서 직업정신을 가지는 계기를 경험한다는 것은 인사팀이 퇴직금 계산을 잘못해서 재무팀이 확인을 안 하고 퇴직금이 두 배로 들어올 확률보다 낮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직업정신을 안고 내 직업을 바라보면 생이 조금은 더 가치 있어지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언젠가부터 워라밸은 힐링은 언어라기보다 지키지 않으면 뒤쳐지는 것, 손해보는 것이라는 마음을 갖게 만들기도 했다.


그 개념에서 벗어나 일과 인생, 경험과 가치, 성장과 배움, 도전과 성취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바라보며 살고 싶다.


진심을 가지고 내가 하는 일을 한다. 삶이 더 아름다울 수 있음을 스스로 느낀다.


아! 이 영화는 나에게 10년 이상의 가치를 주었구나.


이런 영화 같은 수사로 내 감정을 표현하게 될 줄이야!


하지만 실제로 그랬다.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나만의 성장 경험들.


그래서 나는, 우리는 다시 <척의 일생>을 달러로 베팅하는 것이다.


이 영화의 흥행은 누구도 보장할 수 없지만,


어쩌면 지금 영화시장에서 영화를 수입을 하는 것이 손해를 깔고 가는 것일 수 있지만 이 영화를 보고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을 얻어가는 관객들의 뒷모습을 하나라도 더 보게 된다면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래봐야 직장인. 그래봐야 얻을 수 있는 뻔한 월급.


굳이 누구도 시키지 않은 손익분기점을 세팅하는 것으로 생이 가장 가치 있는 기회 앞에 놓이는 순간.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없을 텐데.


이 말은 이제 덜 와 닿는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손익분기점도 없었을 텐데.


이 말이 더 현실감이 있다.


다만, 손익분기점의 구성 요소가 본전만 뜻하는 현금이 아닌, 그 본전을 넘어 내가 들인 시간 이상의 가치로 나를 더 큰 사람으로 이끄는 가를 포함한다면 성공이다.


“본전은 하자.”


생의 진리를 이겨내는 것은 바로 시간 아깝지 않은 일을 하는 것 말고는 없다.


시간 아깝지 않은 일들이 모이면 인생은 나아간다.


단, 잔고는 동행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니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생각을 나누고 싶다.


정말 본전에 전이 돈만 의미하는가?


유한한 시간의 의미를 오늘 하루 또 외면한 것은 아닌가?


잊지 말자, 오늘의 의미를 제치는 순간, 세상에서 제쳐진다.


더 고급지게 표현이 안된다. 문장력의 한계는 줄어드는 '좋아요 수'로 드러난다.


하지만 괜찮다. 이 글을 쓴 순간도 나는 생의 효율을 지켜내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니.


<척의 일생>은 어떤 인생이 담긴 영화길래, 우리가 이렇게 된 걸까?


지금부터 이 영화로 말할 것 같으면, 그 이야기를 전해보고 싶다.







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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