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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고되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삶도 고될 것이다. 안다.
나와 같은 힘듦을 겪는 이들이 못내 반갑고, 깊은 힘듦의 누군가는 되려 나를 위로한다.
생의 가치를 깨닫는 순간이 즐거움을 찾는 그곳에 있지 않고,
슬픔을 마주하는 순간에 있는 것만 같은 고통의 통로들.
사는 것이 일이고 그 일을 받아들이는 것이 삶이다.
단 1mm의 오차도 없이 나의 피부를 감싸는 어른들의 언어.
그 언어를 입을 수도 벗을 수도 없는 나는 어른도 아이도 아닌 메마른 곳에서 물웅덩이를 찾고 있다.
모든 것이 신기루라는 사실도 모른 채.
오늘은 브런치 시작이 어렵다. 글이 아닌 마음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퉁명스러운 말투도 왠지 힘이 없다.
됐고, 하고 싶은 말은 한 가지.
마주한 환경에 치이고, 주어진 일들에 갇히고, 버려진 관계에 남겨진 모두는 애처롭다.
우연히 만난 <척의 일생>.
생의 한가운데에 있던 나는 모두의 삶은 아름답다 말해줄 수 있는 영화를 만났다.
영화는, 아니 이 소설은 나의 인생영화라 할 수 있는 <쇼생크 탈출>, <스탠 바이 미>의 원작자인 스티븐 킹의 기적 같은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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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은 끊기고, 도로 곳곳은 구멍이 뚫려 마비된 세상.
마치 지구의 마지막 날이 다가오는 것만 같은 나날들의 연속이다.
교사 '마티'는 온 세상이 언제 어둠에 갇혀도 이상할 리 없는 지금도 최선을 다해 학생들 성적관리와 학부모 상담까지 이어간다.
하지만 학부모들에게서 듣는 대답은 한결같다.
“캘리포니아가 사라지고 인터넷이 멈춘 세상에서 학교 수업이 무슨 의미죠?”
그나마 있던 TV, 라디오 신호마저 완벽하게 끊긴, 마지막을 눈앞에 둔 것만 같은 저녁.
마티는 이혼했지만 아직 사랑이 남은 ‘펠리샤’를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나선다. 차도, 휴대폰도 모두 버린 채.
길을 가는 곳곳 이 절박한 시간에도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는 누군가의 사진, 그를 축하하는 듯한 문구들.
바로 지난 몇 개월의 시간 동안 TV에서, 라디오에서 끊임없이 나오던 누군가를 위한 광고.
"39년 동안의 근사했던 시간, 고마웠어요 척!"
주변의 그 누구도 알거나 본 적이 없다는 이 '척'이라는 남자는 마티에게 커다란 궁금증을 남긴다.
그는 누구일까?
세상은 정말 사라져만 가는 것일까?
누가 왜 이런 광고를, 지금, 끊임없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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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 크란츠는 회계사다.
보스턴에 콘퍼런스로 출장을 왔고 지금은 느긋한 오후를 보낼 예정이었다.
잠시 쉬러 호텔로 들어가는 길, 거리의 드럼 버스킹 비트가 얌전한 모습의 남자, 척의 귀에 들어온다.
거리의 누구도 관심이 없는 평범 그 자체의 모습으로 그는, 척 크란츠는 그 드럼 비트 앞에 발을 세운다.
그리고 오늘이 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마치 이 순간을 위해 살아온 것처럼, 춤을 춘다.
춤이 이어지고 모두의 시선이 그를 향한다.
춤이 멈추고 다시 그는 차분함이라는 원래 옷을 입는다.
강렬한 춤, 강렬한 생의 5분을 경험한 드러머가 묻는다.
“왜 갑자기 멈춰서 춤을 췄나요?”
척이 대답한다.
“모르겠어요...”
그 대답에는 삶이 담겨 있다.
척이 그 순간 자신을 멈춰 세운 그 발걸음의 이유를 알 수 없듯이
우리는 우리가 선택하는 많은 순간의 답을 알지 못하고.
척이 빛나는 모습으로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춤을 추는 그 순간처럼
우리도 깨닫지 못한 순간을 그저 느끼는 것만으로 삶이 빛날 수 있다.
오늘은 잊은 이에게 내일은 없다.
극 중 척은 9개월 남은 시한부 인생이다.
인간의 삶은 유한함으로 인해 아름답다는 말은 나에게 주어진 순간을 소중히 하라는 명령이 녹아 있다.
언제까지 내일에 오늘을 맡겨 생의 의미를 구석에 던져놓을 수는 없다.
여기까지 말하면 이 영화에 대한 감이 올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지금 언급하지 않은 척의 어린 시절과 그 기억들이 어떻게 세상의 종말과 버스킹 댄스의 비밀을 담고 있는지 보여주는 먹먹한 후반부가 있다.
책으로 또는 영화로, 그렇지 않다면 다른 방식으로 스티븐 킹의 상상력이 구현한 척이라는 사람의 일생을 한번 느껴보면 좋겠다.
삶에 힘들어하고 있는 당신과 내가.
힘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당신과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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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식이다.
2025년의 극장가에 영화를 달러로 수입해서 개봉하겠다는 비즈니스가 구식이다.
슬퍼도 이게 우리 업계의 현실이다. 하지만 구식이라고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직장인으로서 살며 늘 기대하는 것은 성과 인정과 승진 따위의 순간.
매달 10일, 21일, 25일 기준의 월급날에 촉각이 곤두서 있는 우리.
하지만 그런 순간이 있다.
아주 가끔.
바로 내가 나의 일을 통해 누군가에게 좋은 방식으로 기여하고 싶다는,
4월의 어느 금요일 저녁, 사랑하는 누군가와 걷는 덕수궁 길에 불어오는 바람처럼 기분 좋은 그 무드와 함께.
나에게는 이 영화다.
좋은 영화를 통해 사람들에게 좋은 방식으로 기여하고 싶다.
지금의 난 시작하면 망할지도 모를 게임을 하고 있는 플레이어다.
하지만 난 이미 지난 3화에서 생의 본전이 전(돈)에만 있지 않다고 쓴 사람이다.
멋있고 싶어서 한 말이다. 그리고 한 말은 지키고 싶다.
불완전한 내 인생은 그것을 지키려고 애쓰는 나를 보며 버텨 주는 것이기에.
영화를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사람으로서 한동안 좋은 영화를 찾기 어려울 것 같았다.
기다리던 영화가 나를 찾아오지 않자 영화를 수입하는 시장을 기웃거렸다.
다시 <척의 일생> 이야기로.
“39년을 근사하게 살았다는 척 크란츠가 춤만 추고 사라진다.”는 이 영화가 지구의 종말과 무슨 연관인지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다.
초심자의 행운일지, 불행일지.
<척의 일생> 한국 수입사라는 크레딧을 따냈다.
그리고 이 영화가 나를 구원했다.
삶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문장으로 설명하지 않은 이 책이 나를 뒤덮었다.
아무런 대사 하나 없이, 춤으로 추었던 몸짓이 내 생의 빛나는 순간으로 향하는 용기를 주었다.
잠시, 숨이 쉬어지는 것만 같았다.
이내 직장인으로서의 누구도 내게 기대하지 않은 발걸음을 내밀었다.
“난 이 영화를 관객들에게 소개할 거야. 많은 사람들이 볼지는 모르지만 이 영화를 본 사람은 분명 자신의 삶이 그 우주라는 것을 깨달을 거야.”
이렇게 나에게 말하며 난 홀로 춤을 추었다.
영화 속 톰 히들스턴처럼 추지는 못하지만 그의 모습이 담은 슬픔과 희망을 느끼며.
극장에서 연락이 왔다.
“너희 영화가 좋은 건 알겠어. 하지만 연말, 대신 연초 개봉이 어때? 그때 경쟁작들도 덜해서 편할 텐데.”
달콤한 말에도 시작한 춤을 멈추지 못했다.
1년을 살아 낸 이들에게 이 영화가 주는 소중함을 전하기 위해 연말을 놓을 순 없었다.
어쩌면 지난 브런치 3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으면 손익분기점도 없었을 텐데는 이번 글에 더 어울리는 제목일지도.
이제 남은 것은 개봉을 1주일 앞둔 이 영화와,
이 영화를 전하고 싶었던 지난 6개월 간 나의 마음만이 홀로 남았다.
오래도록 흘렀던 음악과 가까웠던 모습들이 사라지고.
그림자만 남은 적막한 시간들.
영화를 미리 본 관객들의 반응이 지쳐 바랜 내 마음을 따뜻하게 안아준다.
“보고 많이 울어서 지금 약간 혼이 나가 있음. 영화 끝나고 나서 화장실에서 혼자 또 울었어.”
“시사회 다녀왔어요, 긴 말 붙이지 않겠습니다. 그냥 이 수입사가 계속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내 삶에 들어오는 빛을 얼마나 잘 만끽하고 있는지 스스로 생각하게 되는 영화였다.”
“하반기 개봉한 영화 중에 제일 좋았어요. 개인의 삶을 하나의 우주로 묘사하는 스토리가 너무 좋았다.”
“그리고 모두의 삶은 아름답다. 나의 우주를 사랑하게 되는 영화.”
“춤춰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영화를 관객들에게 전하며 이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개봉을 준비한 작품이 있었을까?
돌아보면 운 좋은 결과들,
내 것이 아닌 경험들,
누군가의 기회를 빌렸을 시간들.
내가 쉽게 얻은 기회들을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고 싶다.
겨우 버텨 간절히 지켜낸 것들을 잃어 상실감을 느끼고 있을 누군가들을 위로하고 싶다.
그리고 그 위로를 통해 내 지나간 후회를 희망으로 바꾸고 싶다.
내가 희망해 낸 마음이 다시 나와 내 안의 우주를 뒤덮길.
이 영화로 누군가가 생의 긴 숨을 내쉬길 기도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이 잠시나마 나아질 연말,
나의 우주가 조금이라도 착한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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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영화를 준비하는 사이 많은 걸 잃었다.
사랑과 용기만을 주던 나의 묵묵했던 아버님의 작별인사.
사람이 죽으면 별이 되나요, 아니면 그 별이 사라지나요?
애써 떠올린 어린 시절의 질문들은 세월의 무게를 담아 내 어깨 위에 앉았다.
아버님과 작별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같은 길, 다른 햇빛. 같은 바람, 다른 온도.
매일 마주하던 익숙한 풍경이 달라져 버린 믿을 수 없는 현실.
주먹 진 손 안의 공기마저 더 빠른 속도로 나를 떠난다.
한 사람의 우주가 떠나간 것이 내가 남은 세상에 남긴 흔적들.
그 흔적은 문득문득 찾아와 나를 위로하고
그 흔적은 문득문득 찾아와 슬픔을 건넨다.
매일매일 절망하고 매일매일 희망하는 나의 하루는 홀로 나아간다.
첫 번째 영화상영이 끝나고 관객들과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다.
준비하진 않았지만 오랜 시간 생각했던 마음을 전했다.
“이 영화를 전하는 이번만큼은 더 진심으로 말해주고 싶었어요,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우주가 정말 소중하다고. 그 우주에 따라서 세상은 나아가고 멈춘다고. 흔적을 남긴다고. 삶을 살아내는 것만으로 ‘난 이미 잘하고 있어’ 말해주는 연말이면 좋겠습니다.”
울지 않고 잘 말했다.
나 자신이 대견하다.
나 자신에게 힘든 1년을 또 살아냈다고 말해줘야지.
그리고 당신에게도.
4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