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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물킴 Sep 13. 2020

대기업을 퇴사하고, 아이들을 위해 일하는 이유

#1. 벤처 기부펀드 C Program 김정민 커뮤니케이션 매니저

브런치 매거진 <10년째 출근 중>
 : 10년 차 사회인을 모시고 인터뷰를 합니다. 10년의 시간 동안 우리가 직접 부딪히며 배운 것, 느낀 것, 생각한 것을 함께 공유합니다. 모두에게 함께 나누되, 편견과 강요가 없는 방식을 지향합니다  


오늘의 인터뷰이

- 벤처 기부펀드 씨프로그램(C program) 김정민 커뮤니케이션 매니저

- 인스타그램

- 추천해주고 싶은 콘텐츠: C Program 브런치와 인스타그램

 1) https://brunch.co.kr/@weseesaw
 2) https://www.instagram.com/hello_storystudio 






1.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간단히 소개해주신다면? 


“아이들을 위한 제3의 공간을 만드는 일”


 씨프로그램 플레이 펀드 커뮤니케이션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씨프로그램은 어린이부터 청소년까지 짜여진 커리큘럼 없이 각자가 하고 싶은 것을 경험할 수 있는 일상 공간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이런 공간을 제3의 공간이라고 부르는데 제1의 공간인 집, 제2의 공간인 학교를 제외한 놀이터, 도서관, 미술관, 박물관 같은 공간이기 때문이다. 어른들에게는 다양한 제3의 공간이 있지만, 아이들에게는 딱히 떠오르는 곳이 없다. 있다고 해도 키즈카페처럼 놀이법이 정해져 있거나 커리큘럼에 따라 스킬을 배우는, 짜여진 경험만 할 수 있는 공간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같은 재료, 도구, 콘텐츠를 가지고도 각자의 이야기를 입히고 각자의 방식에 맞게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 직접 운영하고 있는 스토리 스튜디오가 대표적인 공간이다. 또한, 아이들을 위한 제3의 공간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알리는 작업도 함께 하고 있다. 

 


2. 10년간 사회생활의 히스토리를 간략히 설명해준다면?


“설렘을 찾아 나가는 여정”


 중학교 때 복사기에 대한 특이한 해외 광고를 보고 막연히 마케팅, 광고가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뒤로 경영학과로 진학, 본사로서 글로벌 시장에서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회사 경험을 하고 싶어 소위 말하는 ‘대기업’을 들어가게 되었다. 글로벌 마케팅 전략팀, 국내 광고팀 등에서 약 7년간 일했다. 


 회사 생활이 힘들게 느껴질 때마다, 미술관을 찾았다. 미술엔 정답이 없으니 내 맘대로 해석할 수 있는 자유가 재밌고 그리웠다. 그러면서 미술관에 놀러 온 아이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본래부터 아이들을 좋아하기도 했고,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정답이 없는 무언가를 즐길 수 있다는 게 보기 좋았다. 그러다 이런 공간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란 생각을 시작했고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다가 우리나라에도 어린이 미술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우리나라 1호 어린이 미술관 헬로우 뮤지엄이라는 곳을 알게 되었다. 그곳을 후원하는 곳 중 하나가 씨 프로그램이었다.


  관장님의 강연을 찾아가기도 하고, 무료로 헬로우 뮤지엄 마케팅 전략에 대해서 고민해 제안하기도 하고. 약 1년 정도 긴 시간 그곳과의 인연을 이어나가려 노력했다. 필드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과 관계를 이어나간 다는 생각에 마냥 설레고 재밌었다. 


 대기업을 그만두고 외국계 기업에서 일한 지 8개월째 즈음, 운명적으로 씨프로그램에서 충원 자리가 났고, 나와 함께하고 싶다는 긴 장문의 러브레터를 받게 되면서 조인했다. 그 메일을 받을 때 포틀랜드를 여행하고 있었다. 브런치를 먹다 그 메일을 받고 너무 행복했다. 이건 운명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메일을 보낸 동료가 포틀랜드의 시차까지도 고려한 것 같았다. 대단한 사람..)

 


3. 1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새로운 분야에 관심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 쉽진 않았을 텐데? 


“나 자신에 대해서 더 많이 알아가는 시간이 있었기에, 새로운 불씨를 얻었다.”
 

 대기업에서 약 7년 동안 일하면서 끝까지 버티고 해내는 것을 배웠다. 거대한 조직에서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내가 얻고 싶은 것을 모두 얻었다고 생각했을 때까지 버티고 싶었다. 그리고선 ‘더할 나위 없이 해봤다.’라는 마음을 느끼고 싶었다. 그랬더니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무엇이든 될 때까지 버텨낼 수 있다는 자신감 같은 것.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도 다니고, 쉬면서 나 자신에 대해서 더 많이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무엇보다도 혼자 한 달여간 유럽여행을 갔던 시간이 나에게 엄청 도움되는 시간이었다. 생각보다 내가 나 자신과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내가 언제 심심해하는지, 행복해하는지, 두려워하는지 나 자신에게 말을 걸며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타인의 인정, 사회의 인정보다는 내가 마음이 동하고,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을 선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그리고 그 기회를 나 스스로에게 보상처럼 주고 싶었다. 실패해도 되고, 망해도 다 괜찮은 시간. 돌이켜보면 그때 나에 대한 믿음이 조금씩 생겨서였는지 몰라도, 막연히 망하지 않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나와 친해지고, 나를 믿게 되는 시간이 있었기에 새로운 것을 찾아 새로운 불씨를 가지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마음을 따라가다 보니 지금까지 호기심을 유지해낼 수 있었다. 

 


4. 대기업을 그만둬야겠다고 마음먹은 결정적 이유?


“계속 다양한 환경에 나를 노출시키고 싶다.”
 

 대기업을 그만두는 게 특별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사람들은 '왜 그 산업에서 빠져나오셨어요?', '왜 그 직무를 그만두셨어요?', 잘 물어보지 않더라. ‘대기업’이라는 세 글자가 모든 것을 갈음해주는 느낌이었다. 나 같은 경우엔 대기업을 다니는 동안 거대한 조직의 체계, 큰 규모의 예산을 집행해보는 경험, 회사 안팎의 다양한 사람들과의 인간관계를 경험하고 싶었다. 7년여의 시간 동안 내가 기대했던 대기업의 메리트를 충분히 경험했다고 생각했고, 이제는 다른 형태의 조직에서 다른 경험을 얻고 싶다고 생각했다. 회사 이름에 숨을 수 있을 만큼의 거대한 울타리에서 벗어나, 나 자신이 좀 더 주체적으로 드러나며 일할 수 있는 일과 조직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앞으로도 계속 최대한 다양한 환경에 노출되고 싶은 마음이다.


 그리고 회사가 너무 거대하다 보니, 한 명의 직원이 끼칠 수 있는 영향력에 제한이 많았다. 내가 얼마나 고민을 많이 하는가, 진심을 다하는가와 관계없이 위계에 따라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경우도 보았고 진심을 다하는 것이 꼭 최상의 결론에 도달하지 않기도 했다. 열정, 진심, 최선을 다하는 것과 별개로 상황이 돌아가는 순간들이 좌절스럽기도 하고 많이 속상하기도 했다. 

 


5. 신입 사원 때를 돌아보면 어떤 직원이었나? 


“온 마음을 다해 전력투구하는 사람”
 

 열정의 물줄기를 조절하는 방법을 잘 몰랐던 것 같다. 온 마음을 다해 전력투구하는 것이 옳다고 믿어왔는데 오히려 그것이 의도치 않은 상황을 야기하는 등의 경험이 쓰라린 상처가 되곤 했다. 그러면서 열정의 가성비를 조율해내는 것이 실력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전보단 더 잘할 수 있게 된 느낌?! 하지만, 상처로 돌아올지라도 열정을 쏟아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 마음에는 지금도 변함은 없다.


 돌이켜보면 타인, 조직에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눈치도 많이 봤던 것 같고. 하지만 신입 티를 벗어내면서 인정 욕구가 지속 가능한 동력이 아니라는 사실을 조금씩 느꼈다. 모든 선택의 기준은 ‘나’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열정을 쏟아낼 거라면 더더욱이. 

 


6. 이직의 과정에서의 불안감, 공허함 등을 어떻게 컨트롤했나?


“불안하지만, 불안 안에서 무언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믿는다”

 결혼을 했다는 사실이 정서적으로 나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나를 지지해줄 수 있는 가족이 있다는 것이 힘이 되었다. 그리고 공백의 시간에는 내가 하는 일들의 궤를 이어 내기 위해 노력했다. 내가 왜 이런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 그것들은 어떤 키워드로 묶이나? 그 관심은 어디로 흘러가 나에게 어떤 발전을 주는가? 등을 끊임없이 고민해나갔다. 파편적인 경험도 중요하지만, 그것들이 언젠가는 연결되고 이어지도록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생 속 시도, 실험 단위의 경험을 하나의 이야기로 풀어내려는 노력이랄까? 


 또한, 나만의 부캐를 많이 만드는 시간으로 활용하자고 생각했다. 제2의 취미, 제2의 재능, 제2의 라이프 등 더 많은 나를 찾는 시간으로 활용했다. 본캐가 바뀌는 건 부담스럽지만 부캐가 생기는 건 괜스레 안전한 느낌이었다. 지금 보니 본캐가 흔들릴 때 나를 튼튼히 지켜주는 건 부캐들이다. 20대에는 정말 모든 것이 불안했다. 지금도 여전히 불안하지만, 불안 안에서 무언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믿는다. 나를 믿어주어도 생각보다 별 탈이 나지 않더라. 

 


7. 10년 전으로 되돌아갔을 때, 다시 하고 싶은 선택이 있다면?


“불안감에 안정적인 경로만 선택했던 것은 아닐까.”

 더 많이, 더 과감하게 경로를 이탈하려 노력하지 않았던 것이 후회된다. 예상하지 못하는 경로로, 좀 더 과감하고 다양하게 경로를 찍어가며 경험을 확장해봤었다면 지금의 나에게 더 많은 선택지가 있었을 것 같다. 불안감에 안정적인 바운더리 안에서의 선택만 해왔던 것 같아 아쉽다. 


 그리고 요새 ‘롤모델보다 레퍼런스’라는 말을 들었는데 정말 공감한다. 인생 경로를 똑같이 따라가야만 할 것 같은 한 명의 롤모델보다는 내가 지향하는 바에 대해서 부분 부분 참고할 수 있는 레퍼런스와 같은 선배, 어른과의 접점이 간절하다. 어느 한 부분씩 부분 부분 참고할 수 있는 인생 선배들, 그런 선배들과 더 많이 만나고 교류해둘 걸이란 생각이 든다. 어렸을 때는 선배라는 존재가 왜 그렇게 어려웠는지 모르겠다. 선배 어른들과의 관계, 커뮤니케이션에 마치 정답이 있는 것 같았다. 지금 내가 그 나이가 되어보니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나이가 더 많든 적든 서로 주고받는 것이 분명 있다고 믿는다. 다시 돌아간다면 나보다 10년 정도 인생을 더 살아본 어른들과 최대한 많이, 최대한 친구처럼 지내기 위해 노력했을 것 같다. 

 


8. 요새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은?


“앞으로도 매일 설렐 수 있는 선택을 하고 싶다.”
 

 일단은 워라밸. 불행하거나 힘든 것은 절대 아니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열정을 영혼까지 끌어모아 모두 쏟아붓다 보니 체력적으로 지침이 온다. 자연스럽게 일이 아닌 영역에 대한 관심, 세상을 향한 호기심의 촉을 이어나가는 게 쉽지 않다. 또한 안정적으로 다음 단계가 그려지는 길을 걸어가는 것이 아니다 보니, 다음 선택, 미래에 대한 고민이 항상 있다. 3년 뒤, 5년 뒤에 나는 어떤 모습일까?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소위 말하는 ‘안정적인 선택’을 위해 대기업이라는 시스템 안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지는 않다. 아니, 들어가기 힘들 것 같다. 그렇지 않은 세상의 맛, 그렇지 않아도 되는 세상의 맛을 너무 많이 알아버렸다. 미래를 알 수 없다는 게 두렵지만 그래서 설렐 수 있는, 그런 선택을 하고 싶다.


 또한 35세로서의 고민이 있다. 점점 선택의 기회비용이 커지고, 사회에서도 나의 선택을 지지해줄 수 있는 사람이 줄어듦을 느낀다. 용기를 내서 지금까지 걸어왔지만, 지금의 상황을 변화시키고 무언가를 새롭게 선택한다는 것이 여전히 두렵다. 40대의 선택은 어떤 느낌일까? 선택할 수 있는 용기를 지키기 위해선 나만의 실력과 영역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9. 사회생활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타인에게, 사회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서 벗어나고 싶다.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게 결과가 될 수는 있지만 목적이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는데, 솔직히 자꾸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순간들이 있다. 그런 순간을 예민하게 캐치하면서 나에게 가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내가 나를 잘 돌보고 싶다. 인정 욕구가 무조건 나쁘지는 않다. 때때로 커다란 동력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그 욕구를 스스로 잘 컨트롤하고, 필요할 때 잘 꺼내쓸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싶다. 

 


10. 앞으로의 단기적인 목표?

내 이름 석자, 나만의 전문성


 나만의 영역을 공고히 만들어 나가고 싶다. ‘대기업 출신’, ‘어떤 어떤 회사를 나왔다’에서 벗어나 내 이름 석자의, 나만의 전문성을 기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나 다운, 나스러운’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게 중요하단 생각이 든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내가 하면 과정과 결과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결국 나를 아는 것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해 고민하면서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영역을 더 공고하게 만들어가고 싶다. 

 


11. 지금 내가 가지고 싶은 쉼?


 이런저런 탐색을 하는 쉼도 좋지만, 지금은 나만의 콘텐츠를 쌓을 수 있는 쉼을 가지고 싶다. 나만이 쌓을 수 있는 콘텐츠가 무엇인지 탐색하고, 시도해볼 수 있는 기회에 나를 더 자주, 더 과감하게 노출하고 싶다. 예를 들면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책 Unnecessarily Beautiful Spaces for Young Minds on Fire을 번역해보고 싶다. 스토리 스튜디오를 만들면서 참고했던 826 National이란 기관에서 발행한 책인데 아이들을 위한 아름다운 제3의 공간을 사전처럼 모아둔 엄청난 레퍼런스의 책이다. 진심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읽길 바라는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을 한국어로 번역하고 소개하는 일을 꼭 해보고 싶다. 



12.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앞두고 있는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상처가 될지라도 진심과 열정을 다해보자

 

나의 한계를 느껴보는 경험, 해볼 수 있을 만큼 끝까지 부딪혀보고 (때론 버텨보고) 더할 나위 없을 때 결론을 내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디 가서 무엇을 해도, 그 경험이 나의 자신감이자 무기가 된다. 앞, 뒤 재지 않고 순수하게 최선을 다했을 때 얻을 수 있는,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그것은 필드를 초월해 도움을 준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김정민 매니저님께 감사드립니다.

브런치 매거진 <10년째 출근 중>

 : 10년 차 사회인을 모시고 인터뷰를 합니다. 10년의 시간 동안 우리가 직접 부딪히며 배운 것, 느낀 것, 생각한 것을 함께 공유합니다. 모두에게 함께 나누되, 편견과 강요가 없는 방식을 지향합니다 

 : 자신의 이야기를 함께 공유하고 싶은 10년 차 사회인 분들의 지원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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