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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물킴 Aug 17. 2020

내가 이런 사람인 걸 어쩌겠어?

다양성이라는 가치가 내 인생에 미치는 영향

 '40'이라는 나이가 점점 가까워져 갈수록 기분이 묘하다. 참 치열하게 산 덕분에 많은걸 느끼고 깨닫고 배웠고, 그렇게 살아온 나 자신을 격려차 셀프 칭찬한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내가 30대를 살아내면서 비로소 알게 된 것들을 고이 간직하기만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어느 순간부터 간절했다.



 지금 10대, 20대의 시절을 살아내는 누군가는, 그때 알면 좋을 것을 여전히 모르고 살아내며 불안감과 초조함을 느끼고 있을 생각을 하니 마음 한편이 아려오기도 했다. 이것은 오지랖은 아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먼저 그 길을 경험해 본 기성세대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이라는 책임감을 느낀다. 캄캄함 속을 헤집고 걷는 듯한 느낌으로 보낸 시간들이 생각난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인생이 원래 그 캄캄함 속을 걷는 것이라는 걸 이제는 좀 더 받아들이게 됐다.) 그 당시의 나는, 인생에서 한 번의 선택이 실패로 귀결되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건 아닌가 하는 두려움 속에 살았다. (절대 그럴 일이 없다는 걸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인맥의 문제였을 수도 있겠지.)

 

 우리는 끊임없이 사람들을 재촉하고, 들들 볶는 현재에 살고 있다. SNS 채널의 초고속 정보교류로 굳이 알고 살지 않아도 되는 정보들까지 마구잡이로 내 인생을 흔들어 놓는다. 연봉 1억을 벌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투잡에 쓰리잡까지 24시간을 풀가동하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를 지금 당장 만명까지 늘리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처럼 군다. (지금처럼 살면 안 된다고 온 세상이 나에게 고함이라도 치는 걸까.)


 현재의 10대, 20대는 나를 포함해 30대, 또 그 윗 세대들보다 더 불안하고 초조한 삶을 살아내야만 한다. 아무리 나이듦이 성숙도와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지만(한심하게도 진짜 아니더라. 어른 소리도 들으려면 자격증을 발급받던지.), 꼰대 짓하며 대접받을 생각만 할 것이 아니라(살아오느라 각자 애써온 것은 알겠다.),



새로운 아랫 세대가 더 나은 환경에서 본인들만의 가치관을 가지고 성장할 수 있는 발판과 기회를 앞장서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이 결국 우리 모두가 함께 나아지는 길이라고 믿는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원래 이토록 어려운 것이다. '어쩌겠어' 매거진을 기록하기로 마음 먹게 된 이유다. 이 곳의 이야기들이 오늘을 살아내는 누군가의 삶에 '그럴 수도 있겠구나' 희미한 생각의 결 하나만 그려내도 더할 나위 없겠다.

 




'다양성'이라는 가치관에 대하여



 '다양성'이라는 가치관은 개인의 행복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다양성'이라는 가치관은 나를 나답게 살게 한다. 학교를 졸업할 때 까지야 사는 것이 다 고만고만해 보일 수 있겠지만, 20대를 지나 30대가 되면서부터 개개인의 삶은 더욱 극명하고, 본격적으로 다양해진다. 다양한 가치관, 소득 수준, 직업, 관계 등 속에서 단 하나도 같은 삶이 없다. 좋은 학교만 나오면, 대기업만 들어가면, 결혼만 하면, 아기만 낳으면, 집만 사면 내 인생은 탄탄대로를 걸을 것 같았는데 생각하지도 못한 인생의 문제들이 순간순간 나를 덮친다. 내 친구들에겐 일어나지도 않은 그런 일이 왜 대체 나에게 생겼을까? (이유는 없다. 인생은 원래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디폴트 값을 이렇게 세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자.) 대체 나는 어떤 결정을 내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런 것은 배운 적도 없는데 말이다.


'다양성'이라는 가치관은 '내가 나를 잘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이야기할 뿐 아니라, '서로의 고유성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한다. 경험해보지 못한 수많은 선택의 기로 앞에서, '내가 지금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알아야 '나다운 결정'을 하며 살 수 있다. 개개인이 '나답게'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바로 '다양성'이라는 가치관이다.



'나는 도대체 왜 이럴까?'가 아니라,

'내가 이런 사람인데 어쩌겠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내가 먼저 나를 인정하고 이해하자고 말하고 싶다.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는 개인을 불안하게 만든다. 남들과 달라지는 것에 대해 공포감을 심는다. '다양성'을 존중받지 못한 개인은 다수 속에 숨어버리고 '나다움'을 잃는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겠다.'는 고민 속에서 살아가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해낸 것을 쫓아가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야 하는가. 온라인 세상 속에서 정보, 교육, 부의 격차는 고스란히 세상 전시되고, 이는 개인을 끊임없이 박탈감 속에 몰아넣는다. 그리고 이 흐름은 결코 멈추지 않고 가속될 것이다.


 지난 몇십 년, 대한민국은 전 세계 유례없는 초고속 경제 성장을 이뤄낸 민족이라는 국뽕에 취해 살았다. 그 동력을 가능하게 하는 삶의 방식과 인물들이 역사를 주름잡았다. 이제 우리는 한계에 봉착했다. 대체 언제까지, 얼만큼 더 성장해야 만족할 것인가. 그 성장에 끝이라는 것은 있는가. 모두가 회의감에 젖어 우울한 정서가 지배하는 사회를 순식간에 맞이하게 되었다. 그 시절을 살아낸 기성세대들의 노고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 앞으로 펼쳐질 세상의 방식과 가치는 완전히 바뀌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성장'과 '효율성'은 상호 유기적인 단어다. 다소 획일적이더라도, 정해진 룰과 규칙, 방식대로 함께 움직이는 것이 사회 전체적으로 손실(loss)이 적고, 그것이 가장 빠른 성장을 도모하는데 최적화된 방식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다만,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성장'을 추구해온 기성세대의 궤적을 보며 자라왔다. 그것이 가져온 '부의 성장과 축적' 이외에, 도덕적 가치관과 개인의 삶의 붕괴를 함께 목격했다. 또한, 그것이 얼마나 개인 행복의 희생을 강요해 왔는가를 알게 되었다. 더 이상 기존과 같은 성장의 곡선은 그려낼 수가 없는 데다, 기성세대 역시 쌓아온 부와 기득권을 쉽게 아랫 세대에게 물려주지 않는다. 새로운 세대가 획득할 수 있는 부는 기성세대를 뚫어내거나, 그들과 아예 다른 영역을 선택해야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또는 '부'가 가지는 의미가 아예 달라지게 될 가능성 높다. 이제 성장의 곡선은 본인만의 속도와 방향을 향해 사방팔방으로 그려지게 될 것이고,



 이런 시대에서 개인의 행복과 정신 건강을 지켜주는 가치관이 '다양성'이 될 것이다.


 


우리는 '내가 무엇을 원하고 좋아하는 사람인가'에 대해서 만큼은 양보 없이 치열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즐기고, 원하고, 또는 싫어하고, 힘들어하는지 제대로 아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인생은 끝없이 '나'를 마주하는 일의 연속일지 모른다. 내가 나를 알기 때문에 나오는 마력 같은 힘이 있다. 그 힘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에서 느낄 수 있는 희열감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그 마력이 지능, 학벌, 재산 등과 관련이 있을까? 아니다. 얼마나 내가 나 자신을 알고, 자기 확신을 가지고 행동하느냐에 달렸다. 유투부에서 1년에 10억 벌기에 성공한 사람을 따라 한다고 모두가 그가 느낀 희열감과 행복을 얻을 수 있을까? 내가 지금 제일 원하는 것이 과연 10억일까? 부의 증가가 반드시 나의 행복을 책임질까? 돈을 벌고 싶은 사람은 돈을 벌고, 그림을 그리고 싶은 사람은 그림을 그리면 된다. 본인들 각자가 원하는 것을 했다면 그걸로 된 것이다.  




 대면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맺지 않더라도, 어렵지 않게 서로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이 글은 나 스스로를 응원하고 위로하고자 하는 글이기도 하다. 또한, 나에 대해서 더 알아갈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고유성을 인정하고자 하는 다짐의 글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입사를 꿈꾸던 대기업을 박차고 나오더니(내 꿈은 그것이 아니더라), 연봉의 반을 깎고 이직을 하지 않나(나름의 합리적인 이유와 목표가 있었다), 이제는 회사원을 그만하겠다며 모두가 말리는 코로나 시대의 퇴사자가 되었다.(결코 충동적이거나 감정적인 결심은 아니)


어쩌겠는가. 내가 이런 사람인 걸. 이 선택의 행복과 고난이 오롯이 내 것이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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