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경은 새직장을 들어간 뒤 나와 조금은 소원해지고 있었다. 내심 섭섭한 일이었지만, 그게 맞았다. 그녀가 조금 더 새로운 환경과 사람들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줘야 할 시기였다. 그녀가 나에게 연락해 대뜸 물었다.
- 오빠, 바다 갈래?
- 응, 완전 좋지.
강릉은 KTX가 뚫린 뒤로, 서울에서 아주 간편히 오갈 수 있었다. 강릉역에 내리자 한적하지만 새 것 느낌의 역사가 우릴 반겼다. 안목해변은 청량함과 아기자기함이 묻어있는 바닷가였다. 근처 경포해변이 시끌벅적한 청춘의 무대가 되어주고 있었다면, 안목해변은 이제 막 시작한 연인들의 앳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한참을 모래밭에 누워서 하늘을 쳐다보았다. 발끝에서 들리는 파도소리, 주변을 휘감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노랫소리처럼 듣기 좋았다. 미경과 머리를 맞대고 누워 하늘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 갑자기 바다를 가자고 해서 놀랬어.
- 그냥, 오빠가 보고 싶었어. 우리 예전엔 맨날 붙어 다녔잖아.
그럴 때가 있었다. 지금은 미경도 나도,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예전처럼 매일을 공유할 순 없지만, 그때의 기분과 감정이 그리웠다. 서로를 이해해주고 응원해주는 마음이 가지는 온기가 그리웠다.
각자의 자리에서 분투했지만, 우린 외로웠다.
한 참을 해변에서 게으름 피우다, 주변을 돌아보니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푸른 바닷빛과 져가는 햇빛이 뒤섞여 묘한 분위기를 냈다. 한 가지 색으로는 말할 수 없는 풍경이 눈 앞에 펼쳐졌고, 나는 이 순간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싶었다.
저녁을 먹기 위해 이동했다. 왠지 허름한 외관의 횟집에 마음이 갔지만, 확신이 없었다. 왁자지껄한 분위기에 사람이 많은 횟집을 선택했지만, 역시 맛이 없었다. 우리는 울적한 기분에 잠겼다. 기대보다 맛이 없는 횟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다시 예전처럼 웃고 떠들며 하루를 보냈지만, 우린 그때 서로가 나눴던 뜨겁게 휘몰아치는 감정을 다시 느낄 수 없었다.
지나가버린 시간, 추억이 되었다는 것이 속상했다.
격렬한 감정이 꼭 연인에게만 허락된 것은 아니었다.
나누지 않아도 그만인 시답지 않은 회사, 연애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적당한 시간을 보낸 뒤 우린 숙소를 들어갔다. 돌아가는 길에 만난 강문어촌 야경은 소박하고 은은했다. 안목과 경포를 덤덤히 이어내는 작은 물길을 따라 자리잡은 어귀였다. 그 날의 강릉은 참 수줍게 부끄러움을 탔다. 허름한 야시장들이 불을 밝히고 있었고, 우리는 시간이 지나서 꼭 다시 한번 들르자는 약속을 나눴다. 언제든 다시 들르라며 우직히 기다려 줄 것 같은 모습을 하며 강문 어촌은 우릴 배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