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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박 Oct 05. 2019

로코야, 너 하나도 안 변했구나!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 한국식 로맨틱 코미디 영화


 오랜만에 동창을 만났는데, 동창이 몇 년 전과 변함없을 때 나오는 말. "너 그대로네!"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를 보고 나니 하게 되는 말. "한국 로코 그대로네!"








선영이라는 사람

 영화의 선영이는 공효진이라는 배우가 연기했기에 많은 것이 용서되는 캐릭터다. 손가락에 새겨진 작은 타투들마저도 정말 광고 회사에서 일하는 선영이가 새겼을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공효진이 선영이고 선영이가 공효진이었다.

 전 회사에서 상사와의 염문설 때문에 퇴사하였지만, 만난 지 하루밖에 안 된 술 취한 상사의 전화를 2시간이나 끊지 않는다. 재훈(김래원)이 어딘가 파지고 짧은 선영의 옷차림을 지적하지만 여전히 그런 옷이 좋고 예뻐 보이는 여자다. 상사가 밤에 카페로 불러내면(술에 안 취했다고 상사가 거짓말하긴 했지만) 조금 고민하다가도 만나러 가는 여자다. 페미니즘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왜 선영이를 이렇게 표현했냐'는 말이 나올 수도 있지만 그건 잠시 제쳐두기로 한다. 내 생각에 선영은 재훈을 좋아하는 자신의 마음을 애써 모른 척하는 상태였기 때문에 전화도 계속 받았고, 밤에 카페로 나갔다.

 선영은 술 취한 척 재훈에게 뽀뽀를 한다. 도로로 뛰어들 때 잡아주는 재훈의 품에 안겨서 "술 취하니까 이런 스킨십도 하는 거지. 나는 남녀 사이에 이런 게 제일 재밌더라"라는 말도 한다. 그러니까 선영은 소위 말하는 '텐션'이 재밌다.

 하지만 선영은 막상 새로운 관계를 맺으려니 두렵다. 화끈한 농담도 서슴없이 하고, 옷도 보수적으로 입지 않고,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으니 무던할 법도 한데. 결정적인 순간에 자꾸 도망가는 선영이다. 그러니까 연애의 시작이나 사랑의 쉽고 어려움은 그 사람이 던지는 농담의 수위나 옷차림의 상태나 타투의 유무로 결정되는 게 아닌 모양이다. '쉬워 보이는 사람'도 항상 어려운 게 연애니까.









재훈이라는 사람

 이 영화가 현실적이지 않은 이유는 재훈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는 '인간적이지 않은' 인물들이 가끔 등장하는데 예를 들면 영화 <인턴>의 로버트 드 니로가 연기한 벤 휘테커가 그렇다. 은퇴한 후에도 가장 말단인 인턴으로 다시 입사하여 꼰대 짓도 하지 않고, 힘들어하는 CEO를 위해 조언을 아끼지 않는 성인군자형 인물이다. 재훈이가 그렇다. 바람을 피운 수정(손여은)이 다시 자기를 찾아왔을 때, 욕을 한 바가지 하기는커녕 잘 살라고 말해주는 남자다. 술에 아무리 취해도 역 앞에서 옥수수를 파는 할머니를 위해 먹지도 않을 옥수수를 사는 남자. 자기 집에 무단 침입한 고양이를 위해 고양이가 먹을 캔 사료를 사는 남자. 그리고 모든 상처를 극복하고 선영이가 안고 있는 상처까지도 보듬어 줄 준비가 되어 있는 직진남!

 재훈은 서른이 넘은 나이지만 여전히 진정한 사랑을 꿈꾸는 낭만신사다. 그가 선영을 사랑하는 방식은 수정을 대할 때와 다를 게 없어 보인다. 모든 것을 내어줄 준비가 되어있고,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다. 마음을 숨기거나 밀고 당길 생각은 전혀 없다. 재훈에게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수정이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재훈은 '누군가를 사랑해주는 사람'으로 남기를 자처한다. 상처를 받으면 겁나기 마련인데, 재훈은 새로 찾아온 사랑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비현실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이런 남자가 날 사랑해준다면 연애할 맛도, 사랑할 맛도 나겠지.







가장 보통의 연애

 재훈은 수정과의 추억이 담긴 집을 정리했다. 선영은 용기를 내 재훈에게 연락했다. 두 사람은 자신을 옭아매던 과거나 두려움에서 벗어나 서로를 똑바로 바라보게 되었다. 두 사람의 전 애인들은 누가 봐도 인간 말종이었기 때문에 두 사람이 새로 시작하는 걸 지켜보는 우리들은 어떠한 심리적인 껄끄러움도 느끼지 않는다.

 이 영화는 기존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들과 크게 다를 게 없다. 어디선가 본 듯한 조연들의 코미디 연기과 뻔한 내용 전개가 아쉽다. 그렇지만 세상의 모든 연애가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지고 비슷한 흐름을 갖는 것처럼 영화가 뻔한 것도 어쩌면 '가장 보통'이기 때문인 듯싶다. "한국 로코 그대로네!"라는 말을 들은 이 영화도 나에게 "너도 그대로야"라고 할 것이다. 나의 연애도 지금이 가장 아름답고 특별하지만 결국은 비슷한 '가장 보통'의 연애일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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