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사람의 눈빛에도 온도가 있다면 마리안느와 엘로이즈가 서로를 쳐다보는 시선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마리안느는 필연적으로 엘로이즈를 사물화 하기 위해 섬에 들어왔다. 이탈리아 남성에게 엘로이즈의 여성스러움을 전시할 그림을 그려야 했기 때문이다. 마리안느는 누가 그렸는지 모를 얼굴 없는 엘로이즈 초상화와 자신이 그린 사물화 된 엘로이즈의 초상화를 모두 없애고, 결국 자신이 발견해낸 살아있는 엘로이즈의 초상화를 완성시킨다.
첫 번째 초상화를 태우기 전까지 엘로이즈는 마리안느에게 그려야 할 대상에 그쳤었다. 언니 대신 집안을 위해 결혼해야 할 여자. 얼굴 없는 초상화는 엘로이즈에 대한 연민이나 사랑 같은 감정이 생기기 이전의 마리안느의 마음 상태를 표현하는 듯하다. 마리안느는 몰래 훔쳐본 그리고 세상에 나가 나름의 기준에 맞춰 살게 될 엘로이즈를 담은 초상화를 완성시킨다. 두 번째 초상화다. 엘로이즈의 도발에 두 번째 초상화를 망가뜨리고, 본격적으로 세 번째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세 번째 초상화가 완성되는 과정에서 마리안느와 엘로이즈는 사랑에 빠진다. 이 사랑은 너무 뜨거워 불타버릴 사랑, 그리하여 재가 될 운명. 하지만 여름날에 치는 번개처럼, 어김없이 쏟아지는 장마처럼 피할 수 없는 사랑이 된다. 세상에 나가기 전, 섬 안에서 온전히 자신들만의 세계를 만들어 사랑과 우정과 예술을 공유한다. 이곳에서는 하녀도, 아가씨도, 화가도 없다. 그저 여자들끼리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연대를 쌓아갈 뿐이다.
자발적으로든 수동적으로든 섬에 갇혀 결혼식을 준비해야 하는 두 여자. 섬 밖의 세계는 남성들의 전유물로 가득하다. 하지만 섬 안의 세계에는 오로지 여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축축하고 아름다운 연대가 가득하다. 임신에 남자가 필요할지 모르지만, 낙태와 출산에는 남자가 필요 없다. 노를 젓거나 짐을 옮길 남자는 등장할지 모르지만 소피와 관계를 가진 남자나 엘로이즈의 남편은 등장하지 않는다.
서로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던 섬 안의 시간들을 지나쳐, 마리안느는 엘로이즈를 보지만 엘로이즈는 마리안느를 보지 못하는 세상 속에서 둘은 재회한다. 마리안느는(아버지 이름으로 작품을 내긴 하지만) 여전히 그림을 그리고 있다. 엘로이즈는 딸을 낳고 한 가정의 아내로 살고 있다. 마리안느는 엘로이즈를 보지만, 엘로이즈는 마리안느를 보지 못하는 사실에서, 가정을 가진 여자와 그렇지 않은 여자가 지니고 있는 무게감의 차이가 느껴진다.
여성의 삶은 좁고 길고 물기가 가득하다. 선택할 때보단 선택되어질 때가 많다. 하지만 여자의 마음을 태우는 시절, 몸 끝부터 불타오르는 시절이 이 영화에서 분명하게 그려진다. 재로 남을지언정 불꽃이 되기를 주저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