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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박 Mar 26. 2022

아주 조금 틀어진 각도, <돈룩업>

그리고 아주 작은 변화


나는 지구 멸망과 세계평화를 바라고, 스포일러가 있음을 미리 알려주는 친절한 INFP.



매년 3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는 어스아워 캠페인이 열린다. 저녁 8시 반부터 9시 반까지 한 시간 동안 전등을 끄는 방법으로 참여할 수 있다. ESG 경영을 안 할 수가 없는 대기업들은 대부분 참여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척'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우리는 이미 실패한 자본주의에 익숙해져 버렸다. 자본주의가 아닌 것에서 가치를 찾는 건 꽤나 어려운 일이다.


이 영화는 에베레스트 산 크기의 행성이 지구를 향해 다가오고 있으며, 약 6개월 후 이 행성이 지구와 충돌하면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멸종할 것이라는 새로운 발견으로 시작된다. 행성과 환경오염, 쉬운 비유다. 우리 지구는 어스아워를 진행하고, 일회용품을 줄이려고 노력하고, 그레타 툰베리를 키워냈다. 하지만 공장은 계속 돌아가고, 돌아가고, 돌아간다. 코스, 자라, 아르켓 그냥 아무 데나 들어가서 전시되어 있는 옷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이제는 '이게 맞나'하는 생각이 든다. 옷이 많아도 너무 많다.


문제는 우리 인생이 환경오염까지 갈 필요도 없이 항상 생존의 문제에 걸쳐 있다는 것이다. '다음 세대를 위한 환경 보호'는 대부분의 인간에게는 노잼 주제다. 그러니까 우리는 여기까지 온 거다.


그런데 내가 이 영화를 보고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행성이나 환경오염이 아니다. 나는 아주 작은 부분에서 미묘한 감동을 느꼈다. 아주 작은 각도였다. 아주 작은 각도라 할지라도, 저 멀리 이어진 평행선이라 생각한다면 그 차이는 아주 컸다.


행성이 다가오는 급의 절망적인 일은 아직 내 인생에 일어나지 않았지만, 나는 '살아가는 것'과 궁합이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아침에 일어나고, 무언가를 해내고, 평가받고, 발전하고, 사랑하고, 헤어지고, 기쁘다가도 슬퍼지는 모든 일들이 나에게는 버겁게만 느껴진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내 마음이 좁아지는 게 느껴진다.


민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한순간에 셀럽이 됐고, 멋진 여자와 바람까지 폈지만 지구 멸망을 막지 못했다. 정확히는 피터(마크 라이런스)와 돈을 이기지 못했다. 우리는 아마도 계속 그럴 것이다. 우리가 손 쓸 수 없는 일들이 우리를 덮칠 것이다. 나는 적성과 아주 먼 일을 하고 있으나 보상이 나쁘지 않아 계속 다니고 있으며 이 시간을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다. 나중에 우리 엄마와 아빠가 돌아가실 것이고, 그전에 나를 키워준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걸 봐야 할 것이다.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괴로워할 것이고, 비싼 옷에 힘들 게 번 돈을 쓸 것이다.


아는 목사님과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었을 때, 목사님은 나에게 "삶은 그래도 아름답다"고 대답해주셨다. 사실 나는 알고 있다.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축복이고, 우리의 지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잘 알고 있다.

내가 괴로운 이유는 내가 저걸 잘 몰라서가 아니라 잘 알고 있음에도 괴롭다는 것에 있다. 


그래도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내가 슬쩍 웃었던 이유는 민디가 집에서 죽었기 때문이다. 피터는 새로운 행성에 돈이 되는 광물들이 있다는 걸 발견하고 행성의 궤도를 바꾸는 프로젝트를 중단시킨다. 배스(피터의 회사)의 알고리듬에 따르면 민디는 아주 하찮고 따분하게, 혼자 죽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민디는 가족들의 손을 꼭 붙잡고,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마지막을 맞았기 때문이다.


가끔 부정적인 것이 긍정적인 것을 이기지 못할 때가 있다.

<돈룩업>에서 지구는 결국 멸망하고, 올리언(메릴 스트립)은 배스사의 알고리듬대로 죽지만, 민디만은 배스사의 예상을 비껴갔다. 이 작은 각도, 이 작은 변화에 감사함을 느낀다. 그리고 나는 이 작은 틈에 모든 것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영화는 제목부터 올려다보지 말라고 말한다. 어차피 우린 다 죽는다 이거다. 이 영화에 디카프리오, 티모시 샬라메, 아리아나 그란데가 나와도 어차피 안 볼 사람은 안 보고, 공장은 돌아가고, 전쟁은 일어난다.


하지만 아주 작은 것에 희망을 걸기로 결심했으니, 나는 이 영화에 대해 리뷰를 쓰고 3분 후에 있을 어스아워를 위해 퇴고 없이 이 글을 올리겠다. 다들 중요한 '작은 각도'를 찾으시길 바란다. 질 걸 알아도 해야만 하는 일들을 찾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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