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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손이 Jun 24. 2021

난 왜 그토록 아이를 원할까

둘째도 시험관 시술합니다

나는 난임이다. 지금 6살의 아들을 품에 안기까지 너무나 큰 인생의 시련과 눈물이 있었다. 

아이를 갖기 위한 5여 년 동안의 마음 앓이를 어떻게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서른 살 초반. 지금 돌이켜보면 너무나도 예뻤던 나이. 그 시절에는 그저 엄마가 되기만을 바랐다. 나의 노력과 간절함이 부디 하늘에 닿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20대의 열정을 모두 받쳤던 일마저 놓는 것을 아쉬워하지 않았다. 

그렇게, 난 5년 동안 우여곡절 끝에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꿈만 같았다. 수많은 시도와 좌절, 눈물, 또 그만큼의 기대들. 그 모든 시간이 모여 아이를 태어나게 했다. 힘겨운 출산과 육아도 거뜬히 견딜 수 있었다. 아니 차마 힘들다는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내가 그토록 원했고, 내가 노력한 결실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힘들다고 하면 안 될 거 같았다.  사라질지도 몰라 두려웠다. 건강하게 해맑게 웃으며 내 곁에, 내 품에 안기는 아들이 너무나 예쁘고 감사하다. 

그래서일까. 아들이 너무나 예뻐서였을까. 내 이름 석자보다 누구의 엄마라는 이름이 더 행복하다 여길 때부터였을까. 난 또 바보 같은 꿈을 꾸고 만다. 둘째를 갖고 싶다. 이 아이의 동생을 만나보고 싶다. 또 다른 아이의 엄마가 되고 싶다.

    

난임의 원인은 다양하다. 그중 나는 난소 기능 저하. 아주아주 저하. 

20대 후반 자궁내막증 수술을 했다. 아마 그때 난소가 많이 손상됐을 거라고 한다. 그 이유로 서른 살에 50대 가까운 나이의 난소라는 판정을 받았다. 과배란 주사를 맞아도 난포가 1~2개 정도밖에 자라지 않았다.  그래서 한 달에 자연적으로 자라는 하나의 난자를 채취, 냉동해두었다가 2~3개 정도 모았을 때 이식하는 시험관 시술(자연주기 시험관)을 진행했다.     


난임은 부부 모두가 힘든 과정이다. 시술의 시작과 결과, 실패까지 온몸과 마음으로 부딪혀야 하는 아내만큼 옆에서 지켜보는 남편 또한 힘겨웠을 거다. 그래서 남편은 절대 둘째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남편을 설득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남편의 어쩔 수 없다는 한숨 끝에, 내 나이 38살, 아들 4살때 둘째를 갖기 위해 다시 난임 병원을 찾았다. 

매달 난포의 크기를 확인하고, 피검사를 통해 수치를 확인하며 난자 채취가 가능하진 가늠했다. 그렇게.... 한 달에 하나, 혹은 공난포, 아님 제대로 자라지 않아 등등. 힘들게 오랜 시간 모았다. 그렇게 세 차례 이식까지 진행했으나 모두 실패. 물론 그중엔  1차 피검사 통과도 있었다. 


그렇게 미련만 가득 품은 40살이 되었다. 다시 생각해본다. 난 왜 아이가 그토록 갖고 싶은 것일까. 그저 소유욕일까. 새로운 생명을 10달 동안 품으며, 가슴 졸이고 설레며 기다리고, 또 출산의 고통을 참아내고 더 힘겨운 육아를 이겨내 세상에 또 하나의 생명을 등장시키는 일. 그 일은 참 멋지고 대단하고 위대하고 경이롭기도 하다. 한때는 내 직업이 날 별게 아닌 것으로 여기게 만들어줬다. 그래서 그토록 열심히 일을 했었는지도 모른다. 진짜 별 볼일 없는 나를 살게 했던 방송작가일처럼 임신과 출산, 육아가 나에겐 그랬다. 겪어보니, 정말 그랬다. 


아들을 보며 생각한다. 저 작은 인생을 하나부터 열까지 나의 선택 안에서 움직인다. 그 책임감에 숨이 턱 하고 막힐 때도 있다. 아이가 사는 또 다른 세상 속에서 나도 자랐다. 더  큰 어른이 되어가고, 더 나은 사람이 되려 노력하는 모습이 좋았다. 스스로 걷고, 혼자서 밥을 먹고, 컵을 들어 물을 마시고, 혼자 화장실을 가고... 아주 작은 사람으로서 달라지는 아이의 모습을 보는 것만도 정말 눈물 나도록 감동스럽다. 작고 소중한 모습을 한 번만 더 보고 싶은 마음은 정말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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