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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물 Mar 03. 2023

자유

좀 단순하게 생각해 볼까요?

"오늘의 키워드는 '자유'입니다"


글쓰기 모임에서 이 키워드를 받았을 때, 아무런 아이디어도 떠오르질 않았다. 너무 무겁게 주제를 다루고 싶지는 않았다. 자주 쓰이는 말이지만, 이 말이 단어 자체로 다루어질 때는 항상 아주 엄중한 무게가 실린다.


자유를 위해 싸워 왔던 많은 사람들, 많은 운동들, 역사들이 생각이 났다. 아, 주제가 너무 무겁다...


어떤 주제나 개념이 아니라, 내 삶에서 가장 맞닿아 있도록 이 단어가 어떻게 쓰이나?


보통은 '자유가 없다'는 표현에서 가장 많이 쓰인다.


살면서 늘 아무런 요구나 압박 없이 자유롭기를 바라지만 한 번도 내가 진정으로 자유롭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자유로운 시대에 살고 있지만, 나는 내가 자유롭다고 생각해보질 않았다.


아 정말, 마음에 안 드는 전개다. 자유에 대해서 쓰려고 했는데, 자유가 없다는 용법으로만 이 단어를 활용하다니.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 보다가 다음과 같은 생각을 모임에서 나눴다.




나는 영화 보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그중에도 포스트 아포칼립스(Post-apocalypse)를 다루고 있는 영화를 좋아한다.  포스트아포칼립스는 지구의 멸망 이후의 세계를 다룬다.

그런 영화에서 인물들이 어떻게 상황을 헤쳐나가는지 살펴보면 자유가 무엇인지 와닿는다.


모든 것이 가한 상태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자유이겠지만, 그러한 상황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선택하는 것을 보면 조금 단순해진다.


재난 이후의 영화들, 종말 이후의 지구를 그린 영화나 문학들을 보면, 그런 작품들은 결국 사랑을 향해서 나아가는 사람들에게 집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 중에, 목숨이 위태로운 중에, 누가 보아도 아름다운 가치가 아니라 물질적 욕구만 보일 수밖에 없는 것 같은 그런 때에, 불가능한 중에 추구되는 사랑. 그게 자유인 것이다.


그래서 자유가 사랑이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나 보다.*(영어로 free는 사랑과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다)


내 개인적인 의미로, 나에게 자유는 더 이상 갈망해야 할 것이 아니다.

나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어떤 상태를 갈망하기보다는, 내가 스스로 자유한 사람인가를 고민한다.




사실 오늘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그 모임에서 내가 나눴던 생각 때문이 아니라 어떤 분의 코멘트 때문이었다.


"결국 자유를 꿈꾸지만 어디엔가 메어있는 삶이라 여겨질 때, 사랑에 메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아니, 내가 나눈 글 보다도 더 울림이 있는 한 줄이었다.

나는 저 글을 쓰고는 포스트아포칼립스 영화나 오늘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시간이 없다, 자유가 없다, 할 일이 너무 많다 입에 달고 사는데, 저 코멘트가 몇 주째 계속 머리에 맴돌고 있다.


내가 사랑을 선택하면, 나는 자유한 사람이 되는 거였어.


피곤할 때 한번 더 친절하게 말하는 것, 바쁠 때 정신이 없어도 한번 더 상대방을 챙기는 것. 자유가 없을 때 선택한 사랑이 오히려 내가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또렷이 보여줄 것이다.


아무도 원하거나 요구하지 않는 이 시리즈를 혼자 이어가며, 이 또한 내 자유로운 선택이었음을, 내가 사랑하는 것을 하고 있구나 하며 잘 살고 있노라 생각해 본다.




*매주 금요일 연재합니다.


(언제까지 이어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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