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민정이 썼습니다.
소진님.
오늘은 모처럼 따뜻한 봄 날을 만끽한 일요일입니다.
'소진'이라는 이름을 더 이상 비꼬아보거나 의심하지 않기로 하셨다니 정말 기쁘네요. ’소진’이라는 이름을 수 년 째 불러온 사람으로서 ‘소진’이라는 사람의 에너지가 부족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지금도 이름대로 살지 않고 있으니 그런 걱정은 마세요.
이름 뿐 아니라 세상 모든 일이 그런 것 같아요. 어디에 방점을 찍느냐가 해석을 크게 바꿀 뿐 아니라 그 일에 대한 정서에도 영향을 줍니다. 한국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문장을 통해 방점의 중요성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
소진님이 인용하신 피프티피플 속 ‘이호’라는 인물도 마찬가지에요. 방점을 잘 찍었기 때문에 인생을 대하는 태도가 좋았다고 생각해요.
유학시절은 영양실조에 걸릴락 말락 할 정도로 힘들었지만 굶어 죽기 직전엔 꼭 누가 도와주었다.
꼬챙이처럼 말라서는 공부만 열심히 했다. 장학금을 못 받으면 곁에서 누가 숨어 있는 장학금을 찾아주었다. 도움을 받았다.
‘이호’가 방점을 앞에 찍었다면 당시를 고달픈 시절로 회상 했겠지요. 하지만 그는 방점을 뒤에 찍으면서 인생의 고마운 시절로 간직했습니다.
오늘 하루에 5가지 나쁜 일과 1가지 좋은 일이 있었다고 가정해 볼까요? 소진님의 일기에는 오늘이 어떤 날로 기록될까요?
A. 5가지 나쁜 일이 있었지만 1가지 좋은 일이 있어서 다행인 날�
B. 좋은 일은 1가지 밖에 없고 5가지 나쁜 일이 있어서 힘들었던 날�
식당에서 메뉴 3개를 시켰는데 2개는 너무 맛이 없었고, 1개는 정말 맛있었다면요?
A. 정말 맛있는 메뉴 1개를 발견한 날, 다음에 그 메뉴 먹으러 또 가야겠다.�
B. 돈 아깝게 3개 중 2개 메뉴에 실패한 날, 다시는 그 식당에 가지 말아야지.�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겠죠. 우리의 사고는 수학 공식처럼 계산적으로 흘러가지 않고 그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때로는 주변인들의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마.', '좋게 생각해봐.' 라는 조언이 도움이 되지 않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순간적으로 결정되는 우리의 사고라는 것도 어쩌면 오랜 시간 만들어 온 태도 공식일 수 있지 않을까요? 작은 일에서부터 방점을 잘 찍는 연습을 하다보면 언젠가 낙관적으로 방점을 찍는 태도 공식이 생길 지도 모르죠. 우리는 좀 더 낙관주의자가 되어도 좋을 것 같아요.
저는 오늘 집으로 오는 길에 지하철을 반대 방향으로 탔습니다. 한참을 간 후에야 발견하곤 반대 방향으로 갈아타야했죠. 하지만 늘어난 30분 덕분에 동행한 사람과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눴습니다. 반대 방향으로 타길 참 잘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