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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혜인 Sep 26. 2021

심술 난 이란댁

너를 위해 살고 너로 인해 사는 삶

 한 달을 머무르기로 한 이란에서의 생활이 벌써 반이나 지났다. 나는 요즘 들어 심술이 나기 시작했다. 왜냐면 지나가는 이 시간들이 너무나 아쉽기 때문이다. 이 나라에서만 할 수 있는 것들을 가능한 모두 경험해 보고 싶다. 그렇지만 나에겐 외출금지령이 내려진 터라 신랑의 퇴근과 주말을 기다리는 게 삶이 되어버렸다. 머지않아 우리는 터키로 떠난다. 이대로 떠나기에는 너-무 아쉽다. 신랑에게 이란은 출장으로 몇 번을 더 오게 될 나라지만 나는 터키에 터를 잡으면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다. 터키에서는 몇 해를 보낼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천천히 알아가지 뭐' 하고 느긋하다가도 이란에서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들떠있고 조급하다. 결국 나는 가고 싶었던 곳들을 잔뜩 찾아놓고 저녁이면 신랑에게 말한다. 다음날 설레는 외출 계획을 위해서 말이다! "그래 가보자!" 하는 신랑의 승낙은 혼자 집에 머무르는 동안 내게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한 하루를 만들어 준다. 그런데 신랑의 컨디션에 따라 몇 번의 캔슬을 경험한 뒤로 나에겐 슬픈 습관이 생겼다. 신랑의 퇴근 소리에 가장 먼저 귀가 밝아지며, 무슨 일을 하다가도 벌떡 일어나 달려 나가서는 신랑의 표정과 분위기를 빠르게 스캔하는 것이다. 그날, 그날 신랑의 피로 누적도에 따라 나의 외출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마치 내 꼴은 혼자 집 지키고 있던 반려견이 귀가한 주인에게 달려가 "산책 가자!" 그 한 마디를 간절히 기다리는 모습이다. 주인 없이 집 앞 공원도 거닐 수 없는 반려견의 삶, 그게 이란에서의 내 운명이었다.


 나는 이란에 와서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대화가 고프고 외출이 고픈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도 신랑과의 대화 속 말 한마디 한마디가 소중하고 마음속 저장도 쉽다. 그런데 그런 내게 어느 날 신랑은 나와의 외출을 "업무의 연장"으로 빗대어 표현했다. 분명 장난처럼 말했지만 내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졌고 기분이 몹시 상했다. 그날은 거창한 걸 요구하지 않았다. 술이 불법인 이 나라에서 술 한잔을 기울일 곳이 없으니 밤 산책 겸 따뜻한 라테 한잔을 마시러 가자고 했는데 그게 그리 큰 부담이었을까. 나는 너무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이었을까. 나와의 시간을 의무감으로 느끼는 신랑의 모습에서 나는 큰 상처를 받았고 마지못해 가고 있다고 느낀 카페를 향한 거리에서 나는 몇 번이고 집으로 되돌아가자며 신랑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신랑은 '가자고 할 때는 언제고 갑자기 또 왜 이러나' 하듯 한숨을 지었다. 내 생에 그렇게 칼날 같은 한숨은 처음일 것이다. 나는 그 순간이 너무 싫었다. 내가 무엇을 위해 이곳에 왔는지. 내가 도대체 혼자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어떤 소속도 없이 지독하게 신랑만을 의지하고 있는 내 모습이 갑자기 하찮고 불쌍하게 느껴져서 주저앉아 엉엉 울고 싶었다. 결국 나는 암묵적으로 금기시되었던 말을 처음으로 내뱉고 말았다.

 "아... 한국 가고 싶다." 

이 말은 서로 누구도 그러자고 한적은 없지만 우리의 강인했던 마음을 무너트리지 않기 위해 아무도 꺼내지 않고 있던 말이다. 그 말에는 후회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침묵이 흐르고 말없이 길을 걸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나는 신랑의 뒤꽁무니만 따라가야 했다. 조금 뒤 신랑이 내 속도에 맞춰 걸으며 살며시 내 손을 잡았다. 후회로 요동칠 것 같았던 내 마음을 신랑이 말없이 다시 부여잡아 준 것이다. 결론은 따뜻한 라테도 마시고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다는 주제로 서로의 마음을 다독이며 하루를 마무리하긴 했지만 우린 아마 비슷한 뉘앙스로 부딪히고 풀어가는 시간을 반복할 것이다.


 나는 자주 느낀다. 늘 진지함 한 스푼이 빠져서 아쉽긴 해도 신랑이 나를 많이 사랑하고 있음을 느낀다. 비록 내게 서운함을 줬어도 먼저 손을 내밀어 주는 건 항상 신랑이었다. 생각처럼 잘 안되더라도 나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주고 세상의 전부처럼 대해준다. 돌이켜보면 나를 위해 많이 노력해 주고 있었다. 자녀가 없어서 일까 신랑은 나를 위해 산다고도 종종 말한다. 그리고 내가 슬프면 본인도 슬프고 내가 기쁘면 본인은 행복하기 때문에 나로 인해 산다고도 말한다. 나는 신랑의 사랑이 나의 사랑보다 더 크게 느껴질 때가 많다. 내가 혼자 집에 머무르는 시간만큼 신랑도 나를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아야 한다. 마음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해주고 싶지만, 체력과 여건이 되지 않을 때도 있음을 나는 이해해야 한다. 설레었던 나의 시간도 중요하지만 신랑만의 온전한 시간도 필요하다는 것을 존중해야 한다. 어쩌면 내가 심술을 부릴 수 있었던 건 행복한 여자이기 때문에 가능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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