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프랜드쉽(Self Friendship)

나의 가장 친한 친구는 나

by 담빛물결

"자신과의 친구 관계는 평생 지속되는 관계 중 하나이다." – 다이앤 본 퍼스텐버그


얼마 전 주말, 나는 아내와 네 살 딸과 함께 동네의 한 카페를 찾았다. 카페 한쪽에는 아이들이 놀 수 있도록 마련된 작은 볼풀장이 있었고, 우리 아이도 곧장 그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막 유치원 생활을 시작한 딸은 사람들과의 관계 맺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서툴지만 용기를 내어 자신보다 한참 나이 들어 보이는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나는 ㅇㅇ야, 안녕! 넌 이름이 뭐니?"


또박또박 외운 듯 말하는 아이의 목소리는 기계적이었지만 순수한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6, 7살쯤 돼 보이는 언니들은 그런 딸아이를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더니 이내 무시했다. 아마 그 언니들에게 우리 딸은 너무 어리고 서툴러 보였던 모양이다.


그래도 아이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시도했다. "나 이것도 할 수 있어!" 하며 작은 계단에서 볼풀장 안으로 점프했다. 하지만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아이는 자신의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고 생각한 듯 얼굴을 더 가까이 대며 말을 걸었다. "같이 놀래? 숨바꼭질하자! 내가 술래야!"라고 외쳤지만, 그중 한 아이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그만해!"라며 차갑게 내쳤다. 순간 딸의 얼굴에 스친 당황스러움과 슬픔을 보며 나의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이윽고 딸아이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멀찍이 서서 그저 언니들이 노는 모습을 바라보며 졸졸 따라다닐 뿐, 더 이상 말을 걸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나 또한 아련한 감정과 기억 속에 빠져들었다.


나 역시 처음 인간관계를 맺을 때 어설프고 서툴렀다. 친구를 사귀는 일은 언제나 두렵고 낯설었으며, 나의 진심과는 다르게 전달되는 내 모습에 여러 번 상처받고 실망하기도 했다. 중고등학교를 지나 사회생활까지 이어진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 다툼과 화해, 기대와 실망이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이제 마흔을 넘기고 나서야 나는 인간관계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무리하지 않으며 내가 편한 선에서 유지하는 습성이 생겼다.


돌아보면 그 모든 인간관계의 경험들 가운데 가장 후회스러운 건 내가 나 자신을 가장 소중한 존재이자 가까운 친구로 여기지 못했다는 것이다. 남들의 시선과 평가를 지나치게 의식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사기 위해 무리하거나 나를 낮추었던 일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내가 스스로를 먼저 사랑하고 인정해 주었다면, 좀 더 건강하고 행복한 관계를 맺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아쉬움이 든다.


한 번은 회사 생활 초기에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무작정 떠안으면서까지 동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무리하게 일을 떠맡다 보니 결국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건강이 나빠졌고, 나 자신을 잃어가는 듯한 고통을 겪었다. 그런데도 결국 돌아온 것은 기대했던 인정과 칭찬이 아닌 더 큰 부담과 불필요한 책임뿐이었다. 그제야 비로소 알았다. 남들의 인정과 애정을 구하기 전에 나 자신이 먼저 나를 아끼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아이가 처음 겪는 인간관계의 작은 실패 앞에서 부모로서 당장 무언가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은 없다. 하지만 조금 더 자라서 아이가 스스로 인간관계의 깊이와 어려움을 깨닫기 시작할 때쯤이면, 반드시 이 말을 전해주고 싶다.


"네가 너 자신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너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어줘야 해."


나는 아이가 나처럼 오랜 시간 방황하지 않고 자신을 먼저 돌보는 법을 배우기를 바란다. 삶에서 맺어지는 모든 관계는 결국 자신과의 관계에서 시작된다.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그 어떤 관계도 행복과 만족을 가져다줄 수 없다. 아이가 다른 이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억지로 무리하지 않고,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딸아이의 작은 뒷모습에서 어린 시절의 나를 다시 만났다. 어쩌면 나는 아직도 서툴고 미숙한 인간관계를 반복하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스스로를 가장 친한 친구로 삼아야겠다. 그리고 아이에게도 그렇게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법을 가르쳐줄 수 있는 아빠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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