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이의 거리두기
런던에 갔을 때다. 친언니와 한달 일정으로 떠난 여행 첫날.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이라 주소 하나 들고 숙소를 찾는데 아주 애를 먹었다. 몸은 피곤하고 동서남북 어딘지도 모르겠고 정신이 반쯤 나간채로 물어물어 숙소를 찾아가다가 언니가 약간의 접촉 사고를 일으켰다. 거대한 캐리어를 끌고 헤매던 언니가 지나가던 할아버지를 툭 치면서 걸어간거다. 물론 충분히 미안한 상황이긴한데, 영국 할아버지는 그 이상으로 불같이 화를 냈다. 뭘 저렇게까지 열을 내나 싶었지만 나중에 할어버지의 심정을 이해하게 됐다.
유럽 사람들은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자기만의 공간이 있고 함부로 침범하면 안되는 거였다. 우리나라처럼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몸을 터치하면서 말을 건다거나 하는 상황은 상당히 무례한 행동이다. 그런데 언니가 생판 모르는 할아버지를 툭치고 갔으니 할아버지가 노발대발하는게 무리는 아닌가다.
사람 사이의 적당한 간격, 거리가 필요한거다
그런데 물리적인 거리만 중요한 게 아니다. 심리적인 거리를 유지하는 것도 인간관계에 너무 중요한 요소다. 그 거리는 사라마다 전부 다르다. 나와의 거리가 1cm 인 가까운 사람도 있고, 2억 광년쯤 먼 사람도 있다. 그리고 그 거리는 서로 말로 합의하진 않지만 서로 대충의 눈치로 직감한다. 너와 나의 거리를 이 정도구나.
문제는 서로의 거리 측정에 오차가 발생할 때다. 나는 1센티쯤으로 가깝다고 생각해 조언이랍시고 이런 저런 지적도 한다. 그런데 상대가 나와의 거리를 1km 쯤으로 판단했을 때 사단이 나는거다.
저 인간이 뭔데 내 인생에 저렇게 훅치고 들어오는거지?
계산 착오가 낳은 참사다. 이런 상황이 되면 둘 중 하나다. 큰 싸움이 나거나 서로 연을 끊거나.
그런데 이게 참 어려운게, 그 거리가 객관적으로 수치를 잴 수 없단 거다. 나와 상대 사이의 거리는 순전히 경험 속에서 감으로만 측정가능하다. 눈치가 약에 쓸래도 없을 만큼 둔한 사람이라면 일단은 거리를 길게 잡고 절대 선을 넘지 말자. 항상 문제는 선을 넘을 때 발생한다. 직장 상사와의 관계도. 부부 간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