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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윤섭 Jan 13. 2019

침대형 인간이지만 괜찮아_#12

성취감 뒤에 공허함이라니

나름 한우물만 파왔다. 오직 방송분야에서만 작가로 일했다. 간절히 원하거나 의도적인건 아니다. 오히려 여러 우물 파는게 소원일 정도다. 그러다 우연한 계기로 다른 우물 하나를 팔 기회가 생겼다. 여행책을 출간하게 되면서, 방송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처음으로 글을 쓰게 된거다.


방송일 하면서 틈틈이 여행을 다녔다. (이럴 땐 참 부지런하다) 방송이 갑자기 죽어서 일주일 정도 시간이 생겼다거나, 하던 방송이 폐지돼 장기간의 여유가 생기면 어김없이 짐가방부터 쌌다. 혼자 잘도 싸돌아다니다 보니, 혼자 여행에 대한 즐거움을 전파하고 싶기도 하고 나름의 노하우가 쌓여,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었다. 그러다 여행책을 한번 써볼까하고 막연히 생각만하다 저질러본 거다.


일단 기획안과 원고 일정 분량을 작성하고 여행에세이를 만드는 출판사에 직접 메일을 보냈다. 서른 곳 넘는 출판사 가운데 놀랍게도 4-5군데에서 긍정적인 답변이 왔다. 급한 성격탓에 가장 빨리 책을 만들어준다는 출판사와 계약을 했다. ‘세상에 출판 내가 출판 계약이라니...’ 글로 정리하니 뭔가 쉽게 금방 이뤄진 것 같지만, 처음 기획안을 쓰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까지 사실 6개월이 넘게 걸렸다. 방송하면서도 수많은 글을 쓰지만 내 얘기를 담을 기회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방송 녹화를 십몇년을 했지만, 출판분야는 처음이라 말로 표현 못할만큼 설레는 경험이었다. 밟아본 적 없는 신세계에 입성하는 기분이랄까.


원고를 퇴고하기까지 막판 한달은 하루에 2시간도 채 못 잤다. 방송은 방송대로 하면서 책도 써야했기에, 좀비 같은 상태로 한달을 보냈다. (본업인 방송도 이렇게 열심히는 안한다) 방송은 수십명의 협업으로 완성된 터라 나만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없는데, 책은 오직 내가 한자한자 쓴 글로 완성되니 애착은 말로 못했다. 퇴고를 마치고 제목을 선정하고 표지를 고르는 일은 꿈만 같았다. 자식새끼 낳는 기분과 다를 바 없을 거다. 그러다 드디어 디데이. 혹시 너무 신나서 날아가버리면 어쩌나 걱정되건 그 날이 찾아왔다. 예스24에 내 책이 올라온 거다. 그런데.


거의 인생의 절정의 순간으로 기록될 줄 알았던 그날, 원래 남들도 이런가 싶을 정도로 덤덤했다. 책이 출간되면 엄청난 성취감과 환희에 가득찰 줄 알았는데, 희한하게도 덤덤했다. ‘이게 뭐지...?’ 심지어 공허하기까지 했다. 당황스럽다.


뭔가에 도전하려 노력하고 애쓰고. 그 후엔 대단한 성취감, 행복감이 느껴질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알고보면 ‘행복의 끝’은 종료시점이 아닌 과정의 순간에 있는 건 아닐까. 기획안을 쓰고 기대감에 출판사에 메일을 보내는 순간, 출판계약을 하고 표지를 고르는 모든 과정의 순간들은 사실 꿈같은 시간이었다.


기대감 - 설렘 - 성취감 - 행복 최고치 - 공허, 허탈


감정의 그래프는 서서히 수직상승하다 정점을 찍은 후 급속도로 추락했다. 저 끝에 꿀단지가 있다는 착각으로 달려갔는데 뚜껑을 열었더니 빈통만 덩그러니 남은 거다. 큰 착각을 한 거다. 그런데, 감정 곡선의 변화를 미리 알았다면 내가 느낄 행복감은 달라졌을까? 최소한 도전하는 과정에서 행복한 감정을 더 충분히 느끼진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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