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저는 당신을 찾으러 왔습니다. 하지만 제가 찾은 것은... 저 자신이었습니다."
2019년 제임스 그레이 감독의 『애드 아스트라』
브래드 피트의 차분한 나레이션과 함께 시작되는 이 우주 서사시는 표면적으로는 실종된 아버지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더 깊은 곳에 있다. 감정을 차단한 채 살아온 한 남자가 자신의 마음을 되찾는 여정. 완벽한 주인공 중심 스토리텔링이 우주라는 무한한 배경 위에서 펼쳐진다.
로이 맥브라이드(브래드 피트)는 우주 안테나 수리 작업 중 정체불명의 전력 서지로 추락 위기에 처한다. 침착하게 대응해 생환하지만, 이 사건은 30년 전 실종된 그의 아버지 클리프트 맥브라이드와 연관되어 있다. 우주사령부는 로이에게 아버지가 해왕성 근처에서 보내는 신호가 지구를 위협한다고 알린다. 로이는 화성으로 가서 아버지에게 직접 메시지를 전송하는 극비 임무를 맡는다. 화성 기지에서 로이는 아버지가 여전히 살아있으며 지구 외 생명체 탐사에 집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임무에서 배제당한 로이는 해왕성으로 향하는 우주선에 몰래 탑승한다. 30년 만에 아버지와 재회한 로이는 아버지의 광기와 외로움을 목격하고, 결국 아버지를 놓아보내고 홀로 지구로 돌아온다.
로이의 외면적 장애는 명확하다.
심박수 80을 넘지 않는 남자. 어떤 위험한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다. 우주 안테나에서 떨어져도, 달에서 해적들의 공격을 받아도, 로켓이 폭발해도 그의 심박수는 일정하다. 이것은 우주비행사로서는 최고의 자질이다. 하지만 인간으로서는 최악의 상태다.
정기적인 심리 평가. 로이는 매번 똑같은 답변을 반복한다. "모든 것이 순조롭습니다." 기계적이고 완벽한 대답. 하지만 그 완벽함이 오히려 문제를 드러낸다.
실종된 아버지. 30년 전 해왕성 탐사 임무에서 사라진 전설적인 우주비행사 클리프트 맥브라이드. 로이에게는 영웅이자 동시에 자신을 버린 아버지다.
하지만 로이의 진짜 장애는 마음속에 있다.
감정적 단절. 로이는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다. 아니, 느끼지 않으려고 한다. 감정은 약함의 증거라고 믿으며 철저히 차단했다. 나레이션을 들어보자. "나는 항상 침착했다. 위기 상황에서도 절대 동요하지 않았다. 그것이 나의 자랑이었다."
관계에서의 도피. 아내 이브(리브 타일러)와의 결혼도 파탄났다. 플래시백에서 보이는 이브의 모습은 로이에게 가까워지려 노력하는 여성이다. 하지만 로이는 그녀의 손길을 거부하고, 그녀의 말에 기계적으로 대답한다. "당신은 여기에 있지만 여기에 있지 않아요." 이브의 이 한마디가 로이의 모든 문제를 요약한다.
아버지에 대한 복합적 감정. 로이는 아버지를 동경하면서도 원망한다. 아버지를 닮고 싶어하면서도 아버지 때문에 상처받았다. 하지만 이 복잡한 감정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아버지를 찾아 지구로 데려오기. 우주사령부가 공식적으로 부여한 임무다. 아버지의 실험이 지구를 위협한다는 명목 하에.
하지만 로이에게는 더 개인적인 의미가 있다. 30년간 궁금했던 진실을 확인하는 것. 아버지가 왜 가족을 버리고 떠났는지, 정말로 죽었는지, 살아있다면 왜 연락하지 않았는지.
로이의 진짜 목표는 훨씬 깊은 곳에 있다.
차단된 감정을 되찾기. 로이는 자신이 아버지를 닮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다. 아버지처럼 감정을 차단하고, 관계를 회피하고, 일에만 몰두하는 자신의 모습을.
진정한 인간관계 회복하기. 이브와의 결혼이 실패한 이유, 동료들과 진정한 유대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 모든 것이 자신의 감정적 차단 때문임을 인정하고 바꾸고 싶어한다.
아버지와의 관계 정리하기. 아버지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용서든 체념이든 결론을 내리고 싶다.
영화 중반 로이의 나레이션이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나는 아버지를 찾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로는 나 자신을 찾고 있었던 것 같다."
로이는 완벽해 보이지만 불완전한 인간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응원한다.
능력 있는 언더독. 로이는 우주비행사로서는 최고다. 하지만 인간으로서는 낙제점이다. 모든 것을 잘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 -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 - 을 하지 못한다.
자기 인식의 시작. 로이는 자신의 문제를 점차 깨달아간다. 완전히 무지한 상태가 아니라, 알면서도 바꾸지 못하는 상태다. 이런 자각이 있는 캐릭터를 관객은 응원한다.
보편적 상실감.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상처, 관계에서의 실패, 감정적 고립. 이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하는 보편적 문제다.
선량한 본성. 로이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착해서 자신을 보호하려고 감정을 차단한 사람이다. 이런 선량함이 관객의 연민을 자아낸다.
『애드 아스트라』의 가장 큰 특징은 로이의 나레이션이다. 브래드 피트의 차분하고 절제된 목소리가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 나는 작가지망생들에게 나레이션에 신중하라고 조언하지만 애드 아스트라 나 폭싹속았수다 의 나레이션이라면 환영이다.
"나는 항상 침착했다. 그것이 나의 장점이었다."
"감정은 업무에 방해가 된다. 나는 그것을 잘 통제한다."
"아버지는 영웅이었다. 나도 그가 되고 싶다."
초반 로이의 나레이션은 마치 보고서를 읽는 것 같다. 감정이 배제된 채, 객관적이고 분석적이다. 하지만 바로 이 기계적인 완벽함이 그의 문제를 드러낸다.
"나는 아버지를 증오한다. 동시에 사랑한다. 이 모순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브는 옳았다. 나는 여기에 있으면서 여기에 있지 않았다."
화성에 도착하면서 로이의 나레이션에 변화가 시작된다. 감정적 표현이 나타나고, 자기 성찰이 깊어진다. 특히 이브에 대한 죄책감과 그리움이 표면화된다.
특히 주목할 만한 장면은 로이가 우주선에서 유인원의 분노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이다. 그는 덤덤한 목소리로 말한다. "분노가 있습니다. 아버지에게도, 저에게도." 아버지가 자신과 어머니를 버리고 떠났다는 것에 대해 화가 난다고 고백한다.
이 순간이 중요한 이유는 로이가 처음으로 자신의 진짜 감정을 인정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평생 억눌러왔던 분노와 상처를 마침내 언어로 표현한다. 그것도 그 특유의 침착한 어조로.
"아버지, 당신은 제가 생각했던 영웅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나는 더 이상 아버지가 되려고 하지 않겠습니다. 나 자신이 되겠습니다."
아버지와의 만남 이후 로이의 나레이션은 완전히 달라진다. 따뜻하고 인간적이며, 수용과 용서의 톤이 담긴다. 기계적 완벽함 대신 인간적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성숙함이 나타난다.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이브와의 기억들은 로이의 내면적 장애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핵심 장치다.
로이가 혼자 있는 빈 집의 모습, 이브와 함께 있었지만 감정적으로 거리가 멀었던 과거의 기억들. 이브의 "You're here, but you're not here"라는 말이 로이의 모든 문제를 요약한다.
이브는 로이에게 가까워지려 노력했지만, 로이는 그 노력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감정을 차단한 채로는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영화는 이브와의 관계 파탄 과정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기보다는, 로이의 회상과 현재 상황을 통해 암시적으로 드러낸다. 빈 집, 혼자 먹는 식사,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귀환. 이 모든 것이 로이가 감정적 연결을 거부한 결과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관계의 상실이 중요한 이유는 로이의 변화를 대비시켜 보여주기 때문이다. 과거의 로이는 이브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여행을 통해 변한 로이는 마침내 그 소중함을 깨닫는다.
해왕성에서 아버지 클리프트와의 만남은 영화의 클라이맥스다.
30년 동안 로이가 그려왔던 영웅적 아버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그곳에는 광기에 사로잡힌 외로운 노인이 있을 뿐이다.
"나는 지구 외 생명체를 찾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했다. 너의 어머니도, 너도, 모든 것을."
아버지의 고백은 로이에게 충격을 준다. 아버지는 위대한 목표를 위해 희생한 영웅이 아니라, 단지 관계를 회피하고 싶었던 겁쟁이였다.
"너도 나와 같구나. 감정을 차단하고, 사람들을 밀어내고."
아버지의 이 말이 로이에게 결정적 깨달음을 준다.
자신이 아버지의 길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었다는 것을.
이브를 잃은 것도, 외로운 것도, 모든 것이 아버지와 똑같은 선택의 결과였다는 것을.
"아니에요, 아버지. 저는 당신과 다릅니다. 저는 돌아가겠습니다."
로이의 이 선언이 그의 변화를 상징한다. 아버지의 길이 아닌 자신만의 길을 선택하는 순간이다.
로이의 변화는 우주라는 물리적 여정과 완벽하게 겹쳐진다.
지구에서 출발해 달을 거쳐 화성으로 가는 과정은 로이가 점점 더 고립되어가는 과정이다. 물리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달에서는 해적들의 공격으로 동료들이 죽는다.
화성에서는 임무에서 배제당한다.
로이는 점점 혼자가 되어간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고립이 그에게 자기 성찰의 기회를 준다. 혼자가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해왕성에서 아버지와의 만남은 로이에게 진실을 보여준다. 자신이 추구해온 것이 무엇이었는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버지를 버리고 홀로 지구로 돌아가는 선택은 로이의 성숙함을 보여준다. 과거의 로이라면 아버지와 함께 남았을 것이다. 감정보다 임무를 택했을 것이다.
지구로 돌아온 로이는 완전히 달라진 사람이다. 심리 평가에서도 이전과 다른 답변을 한다.
"저는 괜찮지 않습니다. 하지만 괜찮아질 것입니다."
이 한 마디가 로이의 모든 변화를 담고 있다. 완벽한 척하지 않고,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며, 그럼에도 희망을 잃지 않는 인간적 성숙함.
마지막 장면에서 로이가 이브에게 보이는 미소띤 표정도 의미심장하다. 과거에는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이다.
감정을 인정하고, 관계를 회복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현대인의 감정적 고립. 기술이 발달하고 우주까지 갈 수 있는 시대지만, 정작 인간은 더 외로워졌다는 역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많은 남성들이 경험하는 아버지에 대한 복합적 감정. 닮고 싶으면서도 닮기 싫은, 사랑하면서도 원망하는.
일과 관계의 균형. 성취와 성공을 위해 관계를 희생하는 현대인들에 대한 경고. 로이도, 그의 아버지도 모두 이 함정에 빠졌다.
우주 탐사의 의미. 겉으로는 인류의 발전을 위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현실 도피의 수단일 수도 있다는 시각.
로이의 내면적 초목표인 '감정적 연결의 회복'이 바로 그레이 감독의 주제 의식과 일치한다. 개인의 여정이 보편적 메시지로 확장되는 완벽한 구조다.
『애드 아스트라』는 SF 장르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내향적 SF. 우주라는 거대한 배경을 사용하지만, 정작 다루는 것은 한 개인의 내면이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나 『인터스텔라』와 비슷한 접근이지만, 더욱 개인적이고 심리적이다.
조용한 액션. 화려한 액션 시퀀스도 있지만, 진짜 액션은 로이의 내면에서 일어난다. 심박수 80을 유지하던 남자가 마침내 감정을 되찾는 과정이 가장 스릴 넘치는 순간이다.
현실적 우주 여행. 『스타워즈』나 『스타트렉』 같은 판타지적 우주가 아니라, 현실적이고 과학적인 우주를 그린다. 하지만 그 현실성이 오히려 로이의 고립감을 더욱 부각시킨다.
"We're all we've got." 로이의 마지막 나레이션.
우리에게는 서로뿐이라는 것. 우주 끝까지 가서 찾은 것은 지구 외 생명체가 아니라 이 단순한 진리였다.
아버지는 30년 동안 우주에서 지구 외 생명체를 찾았지만 결국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하지만 로이는 그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서 진정한 생명을 발견한다. 인간관계 속에서, 사랑 속에서, 연결 속에서.
『애드 아스트라』는 우주 영화지만 가장 지구적인 이야기다. 별까지의 거리보다 더 멀어진 것은 바로 우리의 마음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작품이다.
브래드 피트의 차분한 나레이션 뒤에 숨겨진 것은 모든 현대인이 공감할 수 있는 외로움과 갈망이다. 그리고 그 갈망이 결국 우리를 집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로 이끈다는 희망적 메시지.
로이가 우주에서 지구로 돌아온 것처럼, 우리도 고립에서 연결로, 차단에서 소통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믿음.
그것이 바로 『애드 아스트라』가 전하는 진짜 메시지다.